유력 후보 5인의 장밋빛 경제 공약, 누가 돼도 ‘빚더미’ 불가피

미국 민주·공화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이 한 치 앞을 가늠하기 힘든 각축전 속에 진행되고 있다.

1차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와 2차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를 거쳐 각 당은 사우스캐롤리이나(공화)와 네바다(민주)에서 3차 경선까지 마치고 4차 경선을 앞두고 있다.
‘지르고 보는’ 미국 대선 주자들…뒷감당은 누가?
민주당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이 선두를 주고받고 있고 공화당에서는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의 대세론에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플로리다)과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이 강력하게 도전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 언론들은 양당 경선 주자가 각각 2~3명 선으로 압축되면서 이들 공약의 대차대조표를 철저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제는 허황된 포퓰리즘(대중 인기 영합주의) 공약을 철저하게 검증해 걸러내 현명한 판단에 나설 때라는 주장이다.

뉴욕타임스는 2월 22일 미 공화당 대선 후보 유력 주자인 트럼프와 루비오 의원, 크루즈 의원의 감세 공약이 예산 전문가들 사이에서 실현 가능성을 의심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공화 주자들, 재정 적자 언급 없이 감세 주장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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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 연구 단체인 세금정책연구소(TPC)와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 등의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후보가 공약에서 밝힌 세금 감면 규모는 향후 10년간 총 9조5000억~12조 달러(1경1780조~1경4880조원)에 달한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에 달하는 규모로, 역대 대통령들의 재임 중 감세 기록(GDP 대비 1.4~2.1%)을 압도한다.

트럼프 후보는 연소득 5만 달러 이하 가구에 세금을 면제해 주고 법인세 최고 세율을 38%에서 15%로 내리는 등의 ‘화끈한’ 감세안을 제시하고 있다. 트럼프 후보는 “감세를 통해 기업 투자를 늘리고 해외 이전 기업을 되돌아오게 해 세입을 늘리겠다”고 말했다.

미 재정 전문가들은 트럼프 후보의 공약은 향후 10년간 미국 부채를 15조 달러 정도 더 늘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현재 쌓여 있는 빚(19조 달러)만큼 10년 내 더 추가될 수 있다는 얘기다.

루비오 후보는 단일 법인세율(25%)을 도입하고 자본이득과 신규 투자 배당금에 대한 면세 등을 내용으로 하는 6조 달러대의 감세안을, 크루즈 후보도 10% 단일 세율의 소득 세제와 법인세 폐지 후 부가세 신설(16%)을 중점으로 하는 3조~8조 달러 규모의 감세안을 각각 내놓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대선 주자들은 감세로 투자가 일어나고 이를 통해 세입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저성장 국면과 노동력 감소 상황 속에서 이런 주장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감세는 그대로 재정 적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추가 지출 없어도 10년 후 미국 빚은 29조 달러

민주당에서는 ‘소득 불평등’ 해소를 주장하는 샌더스 후보가 향후 10년간 총 18조 달러(2경2320조원) 규모에 달하는 ‘통 큰’ 선심성 지출 공약을 내놓고 있다.

가족 중 한 사람만 보험료를 내는 ‘전 국민 건강보험제’ 도입을 포함해 ▷사회보장제(한국의 국민연금) 확대 ▷공립대 등록금 면제 ▷유급 출산휴가, 유급 병가제 도입 ▷사회 인프라 1조 달러 투자 등의 뭉텅이 돈이 들어가는 사업들이 포함돼 있다.

뉴욕타임스는 건강보험 전문가의 분석을 인용, 전 국민 건강보험만 해도 정부 지출을 연간 2조~3조 달러씩 더 늘릴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미국의 올해 1년 예산은 4조1000억 달러다.

샌더스 후보 측은 이 같은 공약 실현에 필요한 재원을 국방비 지출을 줄이고 부자 증세와 대기업 감세 중단 등을 통해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유주의 성향의 예산정책우선센터의 제러드 번시타인은 “샌더스 공약의 상당 부분은 ‘희망 사항(wishful thinking)’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세입을 늘려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주장은 연간 5.3%의 경제성장률이 계속되고 미 중앙은행(Fed)이 인플레이션 상황에 아무런 제동을 걸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 또 세입 추계는 가장 희망적으로 잡으면서 건강보험 등에 들어가는 지출 증가는 최소화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샌더스 후보가 대통령이 된 후 약속을 지키려면 ‘마술(magic)’이 필요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재정적으로 가장 ‘보수적’ 공약을 내놓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클린턴 후보는 공립대 등록금 지원, 건강보험 확대 등의 공약을 시행하기 위해 ▷버핏세(연 100만 달러 이상 고소득자에게 최소 30%의 세율 적용) ▷연 500만 달러 이상 고소득자에게는 4%의 추가 세율 부과 ▷기업 탈출세(일자리·이윤 반출 시 부과) 도입 등의 세입 확대 방안을 내놓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대선 주자들이 경쟁적으로 감세 및 지출 확대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지 결국 부채 부담 때문에 운신의 폭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미국)= 박수진 한국경제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