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승리 연설도 화합과 일자리 강조…‘갈등적 공약’ 변화 가능성 주목

[한경비즈니스=워싱턴(미국)=박수진 한국경제 특파원]도널드 트럼프 미국 45대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 후 1주일 만에 이전과 180도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봤던 ‘막말 대마왕’ 트럼프 당선인이 맞나 하는 애기까지 나온다.

당선 후 국민들을 향해 화합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한편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백악관 주요 포스트에 워싱턴 주류 정치인을 기용하고 있다. 대선 때 내놓았던 갈등적 공약의 변화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첫 일성 “화합과 일자리 창출”

트럼프 당선인은 11월 9일 새벽(현지 시간) 당선이 확정된 후 가진 승리 연설에서 “앞으로 분열된 미국을 화합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 대해 “클린턴 후보가 여태까지 국가를 위해 훌륭하게 일한 데 대해 경의를 표한다”며 “이제는 위대한 미국을 만들기 위해 화합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이런 달라진 모습은 이후 이어지는 인선을 통해 구체화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11월 1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홈페이지(www.greatagain.gov)를 통해 ‘정권의 두뇌’에 해당하는 백악관 지도부 인선 내용을 발표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백악관 비서실장 인선 문제를 놓고 상당히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리스트에는 ‘당 주류’쪽 인사로 분류되는 라인스 프리버스 공화당전국위원회(RNC) 위원장과 ‘아웃사이더’이면서 강경 개혁파로 분류되는 스티브 배넌 대선캠프 최고경영자(CEO), ‘맏사위’ 제러드 쿠슈너가 올라 있었다.

모두 대선 승리에 공을 세운 주류 인사 그룹과 강경 보수 그룹, 가족 그룹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백악관 비서실장에 프리버스를, 백악관 수석전략가 및 선임고문에 배넌을 각각 기용했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 언론들은 “프리버스 비서실장 카드는 미 공화당 주류에 보내는 화해와 단합의 메시지”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집권 100일 구상 등 각종 공약을 추진하려면 상·하의원을 장악한 공화당 주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선 공약의 핵심인 일자리 창출(1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프로젝트), 대대적 감세, 보호무역주의 정책 등은 공화당 지도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동력을 얻을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프리버스 비서실장 카드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리버스 비서실장 내정자는 2011년 공화당 선거를 관장하는 전국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해 왔다. 또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 막역한 사이다.

둘은 같은 위스콘신 주 출신으로 고향에서 감세·지출감축·부채축소를 키워드로 하는 ‘재정 보수주의(fiscal conservatism)’ 운동을 주도하며 정치적으로 성장했다. 프리버스 비서실장 내정자는 공화당 경선과 대선 본선 고비 때마다 트럼프 당선인을 지지하는 발언으로 공화당 주류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렸다.

◆ 백악관 온건·개혁파 ‘투톱 체제’

트럼프 당선인은 프리버스 비서실장 내정자를 전면에 내세워 공화당 주류와 국민들에게 화합의 메시지를 보내는 한편 백악관에 수석전략가라는 새로운 직책을 만들어 대선 1등 공신으로 꼽히는 스티브 배넌을 앉혔다.

배넌 수석전략가 내정자는 지난 8월 트럼프 당선인이 인종주의 발언 등으로 지지율이 급락하며 위기에 몰렸을 때 ‘구원투수’로 캠프에 합류, 대선을 승리로 이끈 주인공이다.

극우 보수 성향의 인터넷 매체인 브레이트바트의 창립자인 그는 극단적 인종주의와 이민 규제 및 통상·외교정책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 일으켜 왔다. 그는 캠프 수장이 된 후 ‘트럼프를 더 트럼프답게’ 만드는 선거 전략으로 저소득 백인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일상 업무를 프리버스 비서실장 내정자에게 맡기지만 앞으로 워싱턴 개혁 등 국정 운영의 큰 방향은 배넌 수석전략가 내정자와 상의하겠다는 의지를 백악관 인선을 통해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스티브와 프리버스는 백악관에서 ‘똑같은 (힘을 가진)’ 파트너로 일하게 될 것“이라고 명기했다.

앞서 11월 11일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전까지 정권 인수에 필요한 인수인계 작업과 인선, 공약 정리 등의 작업을 진행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정시 발족시켰다. 트럼프 당선인은 예비 인수위 위원장을 맡았던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를 부위원장에 앉히고 ‘공화당 주류’ 인사로 분류되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인을 위원장에 임명했다.

인수위는 내년 1월 20일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 15개 장관직 조각과 정부 4100여 개 고위직 인선을 모두 마쳐야 한다.

펜스 위원장에게 정권 인수 작업의 지휘봉이 넘어간 것은 그가 워싱턴 D.C. 정치권에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고 당내 기반이 탄탄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당선인은 보좌진에게 펜스 위원장의 ‘워싱턴 경험과 네트워크’가 정권 인수를 원활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요지로 말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인수위는 펜스 위원장과 6명의 부위원장, 16명의 집행위원, 실무 위원 약 200명으로 구성됐다.

부위원장에는 크리스티 부위원장과 공화당 경선 주자였던 벤 카슨,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국방장관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마이클 플린 전 국가정보국(DIA) 국장,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제프 세션스 상원의원이 포함됐다.

깅리치 전 하원의장,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세션스 상원의원 등은 모두 공화당 주류 인사들이다.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