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풍요로운 삶의 질’, 혹은 ‘더 나은 일자리’, ‘선진 교육 환경’ 아니면 ‘팍팍한 한국 사회에 대한 넌더리’….

각각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과 함께 바다를 건너 낯선 타국에서 둥지를 트는 한국인들의 행렬이 지난 반세기 동안 이어졌다. ‘코리아 엑소더스’라고도 불렸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해외 이주민이 급감하더니 2012년 현재

‘이민 열풍’은 종적을 감췄다. 오히려 해외에 거주하던 한국인들이 돌아오는 ‘컴백 홈 코리아’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형성되고 있다. 한때 ‘선망의 대상’이었던 이민의 인기가 최근 사그라지는 이유를 심층 분석했다.
[사그라지는 해외 이민 열풍] 외국 생활이 부럽다고? “더 이상 선망의 대상 아냐”
이민 수속을 대행해 주는 이주공사가 밀집한 강남에는 한 주에도 여러 건의 이민 설명회가 열린다. 그리고 분기별로 호텔 세미나 룸에서 비교적 큰 규모로 설명회가 열리고 1년에 두 번 코엑스에서 이민 박람회가 개최된다. 이민 설명회가 이렇듯 많이 열리는 데는 그만큼 이민에 대한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이민 설명회를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한 이주공사 관계자는 “최근 이민 수요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며 “이러한 수요 감소를 업계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민 감소세는 외교통상부가 집계하는 해외 이주자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외교부의 해외 이주 신고자 현황에 따르면 1963년 이후 처음으로 2010년 1000명 이하로 떨어졌다. 2010년 해외 이주를 신고한 국민은 2009년 1153명보다 22% 감소한 899명에 그쳤고 2011년에는 753명으로 떨어졌다.

해외 이주 신고자 통계를 처음 작성한 1962년 386명이던 해외 이민은 1970년(1만6268명) 처음으로 이민자 1만 명 시대를 맞았다. 그리고 1976년 이민자는 4만6533명으로 정점에 달했다. 한때 4만 명 이상이던 해외 이주 신고자가 이제 1000명도 채 되지 않는 것이다. 기존 필수였던 해외 이주 신고가 2005년부터 선택적으로 된 영향도 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감소세는 극명하다.
[사그라지는 해외 이민 열풍] 외국 생활이 부럽다고? “더 이상 선망의 대상 아냐”
한 해 이민자 약 2만 명 남짓

보다 정확한 이민자 수를 파악하기 위해 정부는 국내에서의 해외 이주 신고와 함께 재외공관에서 이뤄지는 현지 이주 신고자를 합해 통계를 내고 있다. 이에 따르면 2011년 기준 한 해 해외 이주민은 2만2628명이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1만4004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캐나다(2315명)·호주(1556명)·뉴질랜드(780명)·라틴아메리카(509명)·기타(3464명)였다.

이런 이민 감소의 원인은 국내외적인 환경 변화에 기인한다. 우선 국내 상황으로 한국의 경제력 위상이 높아졌고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진입한 데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로 보는 해석이 있다. 이는 “선진국일수록 해외 이민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는 외교부 관계자의 말과 맥을 같이한다.
[사그라지는 해외 이민 열풍] 외국 생활이 부럽다고? “더 이상 선망의 대상 아냐”
유형별 이민 동향을 통한 이민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해석을 방증한다. 가난하고 궁핍했던 1960년대엔 국제결혼과 연고 이주에 따른 이민이 대다수였다. 산업화가 본격화되던 1970년대엔 취업 이주가 급격히 늘었다. 중동·유럽 등 세계 각지로 건설근로자·광부·간호사들이 파견되면서 취업 이주는 1973년 1만899명으로 1만 명을 첫 돌파했다.

경제성장이 본궤도를 탄 1980년대 중반부터는 투자(사업) 이주가 급증했다. 1980~1990년대를 걸쳐 국내에서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이들만이 미국 등 선진국으로 이민갈 수 있는 자격이 있었고 그래서 이민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1990년대 한국 경제가 선진국 문턱을 향해 도약하던 시절에는 투자·취업·연고·국제결혼 이민이 대등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균형 잡힌 해외 이주 실태를 나타냈다. 그러다 한국의 품격이 격상되고 이미지가 제고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반적으로 해외 이민이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해외 이민이 감소하면서 최근 다시 유형별 균형은 깨졌다. 국제이주개발공사의 원상희 이사는 “최근 이민 유형은 양극화를 보이고 있다”며 “중상위층의 투자 이민과 서민들의 비숙련공 취업 이민으로 크게 나눌 수 있고 중간은 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투자 이민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늘고 있고 의사·법인사업자·전문직 등 중상위층의 수요는 꾸준하다. 재력을 갖추고 있고 자녀를 해외로 유학 보낸 40~ 50대가 투자 이민의 주요 수요층이다. 미국은 투자 이민을 위해서는 약 6억 원(50만 달러) 이상 현금 투자하거나 현지에서 사업체를 직접 운영하며 10명 이상을 고용하는 투자 이민의 요건 등을 맞춰야 한다.

이들은 현지 시장성을 보고 업체를 설립하기도 하지만 유학 중인 자녀의 학비 부담을 덜기 위해 영주권을 신청하는 사례도 많다. 한편 직접 사업체 설립 외에도 이주 국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도입한 리저널센터(Regional Center) 등 투자 프로그램을 통해 영주권을 취득하는 사례가 최근 늘고 있다.

반면 비숙련공 취업 이민은 학력·경력·나이·재력 등 자격을 크게 따지지 않는다. 흔히 ‘닭 공장’으로 알려진 대규모 생산 시설에서 1년간 근무한 후 영주권을 취득하는 것이다. 이런 시설에서는 경기와 상관없이 꾸준히 노동 인력을 필요로 하므로 이를 통해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 영주권을 받고 있다. 원 이사는 “비숙련 취업 이민은 초등학생 정도의 자녀를 둔 서민층 30~40대가 많다”고 설명했다. 영주권을 취득한 후에는 미국 회사에 취업하든지 자영업을 하든지 신분상의 제약이 없어진다. 미국 경기가 최근 침체되면서 미국 기업들이 해외 인력 채용을 닫고 취업 비자(H1B) 스폰서에 나서지 않으면서 미국 내 기업을 통한 고용 이민의 기회가 크게 줄어든 상태다.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이민 이주박람회에 몰린 이민 희망자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net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이민 이주박람회에 몰린 이민 희망자들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net
이민에 대한 대외 환경, 의식의 변화

이민자 수는 국내 상황 외에도 수민국(이민을 받는 나라)의 이민 정책에 의해서도 많은 부분 결정된다. 2008년 말 미국발 국제 금융 위기와 최근 유럽발 국가 부채 위기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는 각국의 이민 문호를 닫게 하거나 보수적으로 돌아서게 했다. 불경기 속에서 자국민 취업 보호를 위해 외국 인력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내수 활성화를 위해 자본을 들고 오는 투자 이민만은 그래도 허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철저히 고용 이민을 추구하는데 미국 내 기업들은 취업 비자나 영주권 스폰서로 나서지 않고 있고 설령 외국인 고용을 하려고 해도 노동부의 승인도 받기 어려운 상태로 알려져 있다. 캐나다는 2011년 7월 이후 연방 투자 이민의 문호가 아예 닫혔고 퀘벡 투자 이민만 신청할 수 있는 상황이다.

호주·뉴질랜드와 같은 국가에 이민을 가기 위해서는 미국과 달리 일정 자격을 심사받아야 한다. 영어능력·나이·학력·자산 등으로 평가되는데 이런 자격 기준을 상향 조정함으로써 이민자 수를 통제하고 있다. 호주는 미용사 등 숙련공의 자격 기준을 토익 800점 이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는 실질적으로 이 분야에 종사하는 이민을 받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요리와 간호 등의 교육과정이 영주권 취득 자격에서 빠진 것도 호주 정부의 이민자를 줄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인들의 이민에 대한 인식 변화도 이민자 감소에 주효했다. 과거 선진국으로의 이민은 ‘인생의 업그레이드’이자 ‘자녀에게 영어뿐만 아니라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는 방법’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가정을 파괴하면서까지 기러기 이민(자녀와 엄마만 해외 이주)에 나섰고 비난을 받으면서도 원정 출산을 감행하던 것이 이민을 동경하던 한국인의 모습이었다. 국내 대학 교수가 미국에서 영주권을 받기 위해 닭 공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도한 시사 프로그램은 전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하지만 마냥 풍요로울 것으로 알고 있던 이민 생활은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을 통해 한인 이민자들의 겪는 차별과 역경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해외 여행이 활성화되면서 외국에서 마켓·델리가게·주류판매점·세탁소 등을 운영하며 밤낮 없고 휴일도 없이 일하는 한인들의 모습을 접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개미처럼 일한 덕분에 현지에서 성공한 한인들도 많지만 한국에서의 삶보다 더 나은지는 의문이다.

20대에 미국에 건너가 현지에서 직장을 갖고 영주권도 신청했던 정현민(35) 씨는 이민 생활의 고초를 토로한다. “미국에서 소수민족, 이민 1세대로 미국 회사에 취직하는 등 주류에 편입하기는 쉽지 않아요. 거기서 태어나 자란 한인 2세라면 모를까. 그리고 렌트비, 영주권 변호사비 등 신분 유지를 위한 비용 때문에 언제나 경제적으로 팍팍했어요.”

정 씨는 3년 전 한국에 귀국해 대기업에 취직했고 결혼도 앞두고 있다. 그는 “지금 한국에서의 삶에 만족한다”며 “정말 좋은 일자리가 있어 미국에 다시 간다면 모를까 특별히 다시 돌아가 살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알고 지내던 유학생 출신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에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남아 은퇴 이민도 한때 붐

현재 40대 초반만 해도 1980~1990년대 한국의 경제적 부흥의 수혜를 본 어학연수·배낭여행 1세대다. 그들은 어느 정도 영어도 가능하고 외국 생활의 장단점도 파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막연하게 외국 생활을 동경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이민 가서 가족이 얻고 잃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민이 주는 효용에 대해 비용 편익을 따져봐도 인센티브를 찾기가 쉽지 않다. 현지에 친척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떠나는 ‘묻지 마 이민’은 이제 많이 사라졌다.

한편 2000년대 이후 중국 및 동남아시아로 이주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국가에서는 영주권이나 이민제도의 개념이 없다. 합법적으로 거주하기 위해 노동 허가나 비자를 연장하는 것으로 이민의 범주에 포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비즈니스를 위해 가는 생계형 이주가 대부분으로 사업의 변경 여부에 따라 귀국할 수도 있다.

또한 한때 필리핀·태국·베트남 등으로 떠나는 은퇴 이민 붐이 일기도 했다. 이들 국가에서는 외국인들의 유치를 목적으로 일정한 재정 능력만 증명하면 여유 있고 안정된 노후를 보낼 수 있다고 알려졌었다. 해외 부동산에 대한 투자 제한이 대폭 완화되면서 현지 부동산 투자로 일정 수익이 가능하다고 이민을 부추겼다. 이와 함께 한 달에 200만 원의 생활비만으로 골프를 즐기고 가정부를 두는 등 ‘귀족처럼’ 생활할 수 있다는 것도 은퇴 이민의 매력이었다. 우리에 앞서 2000년대 초 일본에서도 동남아 은퇴 이민 붐이 분 적이 있다. 하지만 사전 답사 등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아 돈도 잃고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다시 돌아온 이들도 적지 않았다.

현재 한국인들의 가슴 한쪽에는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나는, 이민을 꿈꾸고 있는 게 사실이다. 복지정책·자연환경·일자리·교육환경 등이 한국보다 우위에 있는 나라에서 양질의 생활수준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어·문화·기후·물가·치안 등 모든 환경이 우리나라와 다른 만큼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한국에서 보다 몇 배의 치열한 생존경쟁을 각오해야 한다. 최근 해외 이민 감소가 이러한 점을 직시한 결과일 수 있다. 국제이주개발공사의 원상희 이사는 “국내 이민 수요를 장기적으로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수요층은 일정 규모를 지속하고 있기 때문에 이민자는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그라지는 해외 이민 열풍] 외국 생활이 부럽다고? “더 이상 선망의 대상 아냐”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