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경기 자체도 치열하지만 월드컵의 공식 후원업체로 참여하기 위한 막후 경쟁도 뜨겁다. 월드컵의 공식 후원업체로 참여하기 위해 한 기업이 내야하는 후원금은 2천만달러(1백60억원). 그러나 그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의 광고효과를 얻을 수 있다. 94년 미국월드컵을 관람한 관중은 3백50만명. 세계 1백85개국의 3백12억명이 TV를 통해 월드컵을 지켜봤다. 월드컵 경기장에 광고 하나를 거는 것만으로도 그 기업은 세계적인 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이 엄청난 광고효과를 판매하는 기업이 ISL(International Sports&Leisure Marketing Agency)이다. ISL은 월드컵 뿐만 아니라 올림픽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각종 스포츠 행사에 관여, 스폰서십을판매하는 스포츠계의 「큰 손」이다. 88년 서울올림픽과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94년 미국월드컵에서 광고사업권을 행사했으며 올해열리는 아틀랜타올림픽에서도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번 아틀랜타올림픽 광고권 판매를 통해 ISL이 올린 매출액은10억달러(약 8천억원)에 달한다.월드컵 대회에서 광고 판매가 시작된 것은 78년 아르헨티나 대회때부터였다. 당시 월드컵 광고 판매권은 영국 BBC 방송의 캐스터였던피터 퍼트릭 나리가 설립한 웨스트나리라는 회사에 있었다. 아돌프다스러 당시 아디다스 회장의 주선으로 이뤄진 일이었다. 다스러회장은 FIFA(국제축구연맹)와 깊은 관계를 맺으며 FIFA의 각종 행사에 관여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웨스트나리를 끌어들인 것이다. 다스러회장과 웨스트나리의 관계는 그러나 82년에 끝난다. 다스러회장이 조직력과 자금력, 스폰서 유치 능력을 갖춘 좀 더 큰 회사를 원했기 때문이다. 웨스트나리 이후에 다스러회장이 선택한 회사는 일본 최대의 광고회사인 덴츠다. 한창 주가를 올리며 돈을 벌어들이고 있던 일본 기업들을 스폰서로 끌어들이기 위한 포석이었다.◆ 스폰서 세분화, 스폰서십 판매로 거액 챙겨ISL은 다스러회장과 덴츠가 82년에 손잡고 세운 회사다. 다스러회장이 59%, 덴츠가 49%를 투자했다. 다국적 기업을 국제 스포츠 경기의 후원사로 끌여들여 세계적인 스포츠연맹에 자금을 조달한다는취지를 내세웠다. ISL은 특유의 사업능력을 발휘, 단기간에 FIFA는물론 IOC(국제올림픽위원회) IAAF(국제 아마추어선수 연맹)UEFA(유럽축구위원회) FIBA(국제농구연맹) 등 세계적인 스포츠연맹을 고객으로 포섭했다. ISL의 본부는 스위스의 루셈에 있으며 도쿄런던 파리 등 세계 8개 도시에 지사를 두고 있다.ISL은 86년 멕시코월드컵때부터 월드컵의 대행사로 활동했으며98년 프랑스월드컵까지 FIFA와 계약이 체결돼 있다. ISL의 영업방식은 독특하다. 조성될 후원금을 미리 예상, FIFA에 수백만달러의돈을 주고 광고대행 계약을 체결한다. 광고사업권을 미리 사들이는것이다. FIFA는 후원사를 모으기도 전에 큰 돈을 받는 꼴이기 때문에 이 방식을 환영하고 있다. ISL의 몫은 영업하기에 따라 달라진다. 어마어마한 금액을 벌어들일 수도 있지만 예상외로 광고 판매가 잘 되지 않으면 손해볼 위험도 있다. 한마디로 월드컵은 ISL에있어 도박성 짙은 사업인 셈이다. ISL은 94년 월드컵때 FIFA의 스폰서십 인지도 향상을 위해 4백만~5백만달러를 쏟아부었다. 또 스폰서 참여 프로그램을 공식 스폰서, 공식 파트너, 공식 상품 및 서비스회사, 공식 상품화권자 등으로 세분화했다. 후원금을 더 많이벌어들이기 위한 투자였다.공식 스폰서는 대회기간 동안 경기장 펜스에 광고를 부착할 수 있는 기업이다. 94년 월드컵의 공식 스폰서는 코카콜라 후지필름 캐논 필립스 등 11개사였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7개사, 일본이 3개사, 네덜란드가 1개사였으나 펜스보드 숫자로는 일본 업체가37.5%로 가장 많았다. 참가 대금은 총 22개 보드 중 4면을 사용할경우에는 약 1백60억원, 2면만 쓸 경우에는 96억원이었다.공식 스폰서는 펜스보드 광고 외에도 여러 가지 권리를 누린다. 대회 로고와 마크를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관련 제품을 대회장내에서 판매할 수 있다. 입장권과 포스터 등 대회 관련 인쇄물에광고를 찍을 수 있고 경기장에는 자사 서비스룸이 마련된다. 월드컵 입장권도 다수 얻는다. 오랫동안 월드컵의 공식 스폰서로 활동하고 있는 코카콜라는 대회 기간 동안 우수 고객을 초청, 경기를관람시키고 경기장내 서비스룸에 초대하고 있다. 대회기간 동안 각경기장에 설치된 자판대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도 무시못한다. 코카콜라는 94년 월드컵때 경기장에서만 약 1백40만캔의 코카콜라를판매했다. 공식 파트너는 현금이 아니라 상품이나 서비스로 대회를 지원하는회사다. 94년 월드컵때는 모두 8개의 공식파트너가 활동했다. 이중 선마이크로시스템즈는 컴퓨터 하드웨어와 통신서비스를 제공했고 아디다스는 운동용품을, 쉐라톤은 호텔을, 스프린트는 중장거리전화서비스를 제공했다. 공식 파트너는 공식 스폰서보다 작고 나쁜위치기는 하지만 경기장에 한면씩의 광고면을 할애받는다. 펜스광고 외에 공식파트너가 누리는 혜택은 공식스폰서와 거의 같다.◆ 일, 덴츠·ISL통해 FIFA와 친밀해져공식 상품 및 서비스회사라는 것도 있다. 펜스 광고를 하지 못하고인쇄물 광고에서도 제한을 받는 등 공식스폰서나 파트너에 비해 받는 혜택이 적다. 그래도 공식상품 및 서비스회사들은 자사 광고에월드컵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영광으로 받아들인다.공식 상품화권자는 대회의 로고와 캐릭터 등을 상품화하는 머천다이징 권리를 부여받는 회사를 말한다. 94년 월드컵에서는 타임워너가 대회 로고가 박힌 각종 기념품을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으며 공식 메달 제작은 시카고 프로세싱이 맡았다. 이외에도 ISL은공식 포스터, 공식 출판사 등을 지정해주고 일정 금액의 로열티를받는다.큰 돈을 받고 사업을 벌이는 만큼 후원업체들을 보호하기 위한ISL의 노력도 남다르다. 일명 「깨끗한 경기장(Clean Stadium)」이라는 보호 프로그램까지 만들어 놓고 있다. 「깨끗한 경기장」이란경기장 내에 공식 스폰서 기업의 광고를 제외하고 모든 상업적인문구를 없애는 것이다. 예를들어 경기장에 있는 시계가 오메가 제품인데 오메가가 공식 스폰서가 아니라면 경기가 끝날 때까지 오메가 마크를 가려야 한다.엄청난 이권이 걸려있는 스폰서십인 만큼 후원기업으로 참여하는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돈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일단 어느정도 세계적인 기업이라고 인정받아야 한다. 월드컵의 후원기업에 걸맞는 명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또 월드컵에 대한 그기업의 실적과 기여도도 평가받는다. ISL이 월드컵을 통해 큰 돈을챙기기는 하지만 어쨌든 월드컵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축구를 보급하는데 앞장선다는 명분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이전에 공식스폰서를 했던 기업이 계속 참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월드컵 스폰서의 또다른 특징은 일본 기업이 많다는 것이다.덴츠가 ISL의 주주사라는게 작용하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ISL의 한국 업무제휴선인 서울스포츠기획의 서병길 사장은『2002년 월드컵이 국내에서 열린다 해도 국내 기업이 월드컵 스폰서로 참여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추측한다. 덴츠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2002년 월드컵 개최지 선정을 앞두고 ISL은 우리나라에 부담스러운존재다. 일각에서는 아벨란제 FIFA회장이 친일파가 된 것은 ISL이아벨란제를 지지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서병길사장은 이에대해 『너무 과장된 얘기고 ISL에서 일본의 위치는 상징적인 것』이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덴츠와 ISL을 통해 일본 기업이 FIFA와친밀해졌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못한다. 일본 기업은 ISL이 월드컵대행을 시작한 86년 멕시코대회때부터 계속 스폰서로 참여해왔지만국내 기업은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다.이제 「비즈니스」를 빼놓고 세계 규모의 스포츠 행사를 논할 수는없다. 3년 연속으로 월드컵 본선에 출전했다는 사실만 중요한 것이아니라는 말이다. 국내 기업이 스폰서십을 통해 FIFA에 「금전」적으로 어느 정도 공헌해왔는지에 대해서도 세계 축구 관계자들은 관심을 쏟고 있다. 지금이라도 세계적인 스포츠마케팅에 눈을 돌려「꿩도 먹고 알도 먹는」(광고도 하고 스포츠 보급에 앞장선다는명분도 얻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