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3일.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는 일본 혼다자동차의 아시아전용차 「시티」의 신차발표회가 있었다. 혼다 가와모토사장은 『시티는 아시아 전용차로서 태국을 비롯해 향후 도래할 아시아의 모터라이제이션에 크게 공헌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가와모토사장의표정은 자신만만했고 개발담당자도 세부적인 데이터를 보여주면서경쟁차와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일본 국내에서야 그렇지만 미국에서 도요타와 어깨를 나란히한 혼다가 「아시아의 혼다 구축」을 선언하는 자리였다.이를 전후해서 도요타는 올해말까지 터셀을 베이스로 한 아시아 전용차를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 미쓰비시자동차와 닛산의 새로운모델 개발 및 생산 계획과 이스즈의 생산거점 확대 계획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아시아 전략차를 내세운 일본 자동차업계의 「아시아시장 굳히기 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아시아 전략차는 동남아 현지 도로사정이나 기후를 설계에 적극 반영시키면서도 원가를 절감해 가격을 대폭 내린 철저한 「현지밀착형 저가차량」이다. 과거 상용차를 베이스로 지역 밀착형 차량을개발해왔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승용차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승용차로는 첫 아시아 전용차인 혼다 시티의 경우 우선 차체가 기본모델인 시빅에 비해 20cm 가량 높다. 빈번한 물난리에 전기계통부품이나 머플러가 침수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이 모델은 또 뒷좌석의 창문 개폐기가 수동식이다. 동남아 운전자들은 1년 내내 에어컨을 사용하는 탓에 창문을 여닫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혼다 시티 물난리등 대비 차체 20cm 높여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싸다는 것이다. 뒷좌석 창문 개폐기를수동식으로 만든 것도 철저한 원가절감에서 비롯된 아이디어다. 시티의 개발 컨셉트를 잡기 위해 20여명의 개발진들이 태국에 상주하면서 가능한한 싸게, 그러나 현지실정에 꼭 들어맞는 차를 개발한덕분이다. 제조원가 절감이 아시아 전용차의 최대 목표다.혼다는 이런 노력 끝에 시티의 가격을 한국산 동급 승용차보다 싸게 내놓을 수 있게 됐다. 시티의 태국내 판매가격은 39만8천∼44만8천바트. 우리 돈으로 약 1천2백만원에서 1천3백만원 정도다. 엑셀이나 액센트와 거의 같은 수준이지만 고급모델은 오히려 액센트보다 싸다. 시티가 나오면서 한국산 자동차가 태국시장에서 맥을 추지못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현대자동차가 동남아시장의 전초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지난 93년 확보한 태국 현지조립공장은 시티를만드는 연산 6만대 규모의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한 지난해 11월부터 가동이 중단됐을 정도다.혼다는 이 차의 생산 및 판매를 태국에 국한시킨 것이 아니다. 올연말까지 말레이시아 대만 인도네이사 필리핀 파키스탄에서 이 차가 본격적으로 생산되며 내년에는 인도에서도 시티를 생산하게 된다. 시티의 7개국 생산규모는 97년 4만∼5만대에 불과하지만 99년에는 10만대를 넘긴다는게 혼다의 목표다. 중국에서도 시티의 주요부품을 생산하기 시작해 궁극적으로는 완성차를 조립할 작정이다.도요타도 내년 시판 예정으로 현재 1,500cc급 아시아 전용차를 개발중이다. 이 회사는 내년초 태국에서 생산을 시작한 뒤 98년에는인도네시아 필리핀으로 라인을 전개한다는 구상이다.AFC(Affordable Family Car)로 이름이 붙여진 이 차의 플랫폼은 터셀과 공용화하지만 시티와 마찬가지로 현지실정에 맞는 독자적인사양을 채택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3개국에서 2000년에는8만대이상 생산해내겠다는 계획이다.닛산은 구형 서니를 베이스로 한 AD리조트라는 소형상용차를 93년투입했지만 99년부터는 혼다 도요타의 아시아 전용차에 대응하기위한 모델을 투입한다. 98년 풀 모델 체인지가 예정돼 있는 신형서니를 기본으로 한 이 차는 태국 대만 인도네시아 등 5개국에서연간 7만∼8만대를 생산키로 했다.◆ 아시아전용차 조립형에서 현지생산형으로한편 상용차를 아시아 전용차의 베이스로 설정하고 있는 업체로는미쓰비시자동차 이스즈 다이하쓰 스즈키가 있다. 미쓰비시자동차는모델을 추가하고 이스즈나 다이하쓰는 생산거점수를 확대하는 형태로 동남아시장을 도모한다는 구상이다. 미쓰비시는 델리카 베이스의 새로운 아시아 전용차를 97년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에서 생산판매할 예정이다. 2000년 3개국에서의 생산량은 약 5만4천대.인도네시아에서 다목적 밴 팬더를 집중적으로 생산해온 이스즈는최근 대만의 합작공장과 필리핀의 새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했다.지금은 이 세곳의 공장을 합쳐 생산량이 3만5천대에 불과하지만2000년에는 9만대 수준까지 늘어나게 된다.다이하쓰는 지금까지 인도네시아에서만 생산하던 지브라를 말레이시아에서 생산해 루사라는 이름의 국민차로 내놓았다. 게다가 97년부터는 중국에 연간 2만대 규모의 위탁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며 3개국에서의 생산량을 2000년 10만대 규모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설정해놓고 있다.일본 메이커들이 값싼 아시아 전용차로 「시장 지키기」에 나설 수있는 것은 철저한 부품의 현지조달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 특히 부품의 현지조달에는 계열외 구매는 물론 경쟁업체간 부품 상호교환 등의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특히 승용차를 베이스로 한 시티나 AFC는 당초부터 부품의 현지조달률을 70% 이상으로 높인다는 목표가 설정돼 있었다. 현지의 부품을 사용하면 일본에서 생산된 부품을 사용하는 것보다 원가가 적게먹히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일본은 동남아시장에 일찍 진출해부품업체들도 상당수 동반진출해 있다. 아세안국가들이 역내에서생산된 자동차부품에 대해서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BBC제도를 적용하고 있는 것도 그런 면에서 일본 메이커들을 더욱 유리하게 만들고 있다.뿐만 아니다. 일본은 최근들어 동남아 현지 자동차산업에 대한 지원을 부쩍 늘리고 있다. 지난7월 설립된 아세안자동차연맹(AAF)이대표적인 경우다. AAF는 아세안국가 7개국과 이들 나라에 지배적인영향력을 가진 일본 자동차업계가 회원으로 돼 있다. 여기에 한국은 빠져 있다.일본은 이 연맹 창립총회에서 아세안국가의 자동차산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연맹에는 앞으로 아세안에 가입할 예정인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도 옵서버 자격으로참여해 일본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이같은 일본의 지원정책은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국민차사업을 한국의 기아자동차에 빼앗기면서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도요타는 지난8월 동남아 각국의 자동차산업을 육성하고 부품수출거점을 육성하며, 대일 자동차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부품구매를 늘려나가는 것을 골자로 하는 현지 공헌정책을 발표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국민차 사업자 선정에서 일본업체들을 내 몰며 『우리는 단순히 드라이버를 돌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던데 받은충격을 깨끗이 씻겠다는 각오다.따라서 일본은 더 이상 동남아 자동차산업을 조립형이 아닌 현지생산형으로 바꿔나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일본이 한국이나 미국유럽에 밀려나지 않기 위한 새로운 전략이다. 그 전략의 첫 단추를아시아 전용차라는 새로운 개념의 자동차로 끼우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