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任天堂). 일본의 고도 교토(京都)의 히가시야마구 후쿠이네라는 한적하고 조그만 마을에 자리잡고 있는 회사다. 비록 회사의외관은 중소기업규모지만 「IBM의 컴퓨터기술과 디즈니의 마음을배합했다」는 게임기와 소프트웨어로 세계 게임마니아들의 마음을사로잡아 오락기시장의 맹주로 군림하고 있다. 그러나 「게임산업의 황제」 닌텐도의 원래 생산품목은 화투와 트럼프. 비록 오락기수제조라는 면에서 궤를 같이하고 있지만 수작업에 의존하는 화투에서 첨단 게임산업의 황제로 오른 닌텐도의 역사는 앞선 상품의개발에 대한 투자와 시대흐름에 대한 정확한 예측·판단이 원동력이었다.닌텐도의 역사는 1889년 야마우치 현사장의 증조부인 야마우치 후사지로가 교토에서 문을 연 화투공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야마우치가(家)는 화투제조에 이어 1907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플라스틱소재의 트럼프를 제조, 담배가게에서 화투와 트럼프를 판매하는 전국판매제로 트럼프를 단순간에 일본의 대중오락기구로 만들었다. 일찍이 일본 오락기구제조업에 진출한 닌텐도는 1949년 현 야마우치 사장의 부친인 야마우치 세키료가 일찍 세상을 뜨면서 일대 변화의전기를 맞는다. 22살이란 약관의 나이에 야마우치 3세가 다니던 와세다대학 전문부 법률학과를 중퇴하고 사장의 자리에 올라 가업을이은 것이다. 젊은 야마우치 사장은 어린이용 디즈니트럼프를 히트시키는 한편 63년에는 「야마우치 닌텐도」라는 회사명을 「닌텐도」로 바꾸고 카드 외에 실내게임용 제품생산에 본격적으로 발벗고나선다.70년 광선총시리즈, 73년 레이저 클레이사격, 75년 비디오게임시스템, 78년 마이컴을 이용한 업무용 TV게임기, 80년 카드형 게임기인「게임&워치」 등을 차례로 개발한다. 비록 일부 제품은 시장에서실패하기도 했지만 닌텐도는 게임개발에 관한 한 독보적인 자리를굳힌다.◆ 한때 후발업체에 밀려, 64비트 게임기로 반격이러한 축적된 개발력을 바탕으로 닌텐도는 81년 「동키 콩」이라는 비디오게임을 개발, 미국시장에서 빅히트를 치면서 초고속성장의 발판을 마련한다. 그후 83년에 가정용 비디오게임기기 「패미콤」, 89년 휴대용 액정디스플레이게임기인 「게임보이」, 90년 16비트급의 게임기인 「슈퍼 패미콤」 등 신제품을 잇달아 성공시키면서 게임업계에서 「부동의 황제」로 자리를 굳건히 다졌다.닌텐도의 이런 성공에 대해 일본내에서는 과감한 설비투자 축소,원가절감 최우선, 다각화를 배제한 단품생산고집 등이 비결이라고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이 닌텐도의 발목을 잡는 덫으로 작용하기도 해 90년대 들어 닌텐도는 라이벌인 세가와 신생업체인 소니에 밀려 고전을 면치못하기도 한다.70∼80%를 자랑하던 닌텐도의 시장점유율이 33%로 떨어진 반면 세가와 소니의 시장점유율이 32%로 급성장하는 등 새턴(세가)과 플레이스테이션(소니)이라는 32비트게임기를 앞세운 라이벌업체들의 반격이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닌텐도의 저력은 지난해에 이뤄진 64비트 게임기의 발매로 나타났다. 약 20조7천2백억원정도(95년기준)인 게임기시장을 놓고 32비트 게임기에 의해 벼랑 끝으로 몰렸던 닌텐도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세가와 소니에 비해 32비트게임기에서는 밀렸지만 아예 추격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64비트 게임기를 개발한 것이다. 「인생의 한치 앞이 암흑, 운은 하늘(天)에맡기고(任)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닌텐도의 회사명처럼다시 정상의 자리를 확고히 다지는 명예회복을 기다리고 있다.화투에서 시작해 첨단 전자게임산업의 맹주자리까지 오른 닌텐도.오락기구제조라는 외길고집으로 세계정상에 올랐지만 닌텐도의 오늘을 만들어준 화투도 계속 제조, 야마우치사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93년 12월 9일)에서 『지금도 화투를 전체매출의 약1%정도를 만들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