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영 악화로 고전하고 있는 진로와 미도파 한신코아 태화쇼핑등 4개 업체는 유통사업 위기의 원인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보여준다. 진로의 경우 21세기 유망산업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유통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사례로 꼽힌다. 미도파는 치열해진 경쟁 속에서는유통을 주력으로 해온 베테랑조차도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경고한다. 한신코아는 유통을 부업으로 생각할 때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을, 태화쇼핑은 외국업체와 대기업의 공격으로 벼랑 끝에 몰린지방 유통자본의 위기를 각각 나타낸다.아크리스백화점을 운영하는 진로종합유통의 적자는 지난해 7백37억원 규모. 진로쿠어스맥주의 3백96억원이나 진로건설의 6백66억원보다 많은 액수다. 진로가 유통에서 적자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던이유는 유통산업을 유망산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돈을 빌려다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진로는 진로도매센터를 아크리스백화점으로 재단장하는데만 3백억원을 투자했다. 평균 영업이익률을5%로 쳤을 때 6천억원어치를 팔아야 갚을 수 있는 돈을 투자한 것이다. 물론 아크리스백화점은 그 정도의 매출액을 올리지도 못했다. 결과적으로 진로는 유망산업이라는 환상에만 너무 매달려 있었던 셈이다.유통업체는 계륵인가대농은 71년에 미도파를 인수, 유통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유통사업을 하는 대기업 중에서 신세계에 이어 두 번째로 유통사업을 오래한 유통업계의 산증인이다. 사실 미도파는 모기업인 대농의 경영악화로 부실기업징후 기업이 된 것이지 미도파 자체로는 흑자 기업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미도파백화점도 그다지 사정이 좋았다고는 할수 없다. 최근 2∼3년간 백화점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매출액 신장률이 떨어진데다 최근엔 불황까지 겹쳐 꽤 고전했던게사실이다. 특히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과 함께 자리하고 있는 명동 상권에서는 이미 롯데와 신세계에 뒤졌다는 평가를 듣고 있었다. 롯데 신세계와 경쟁하기 위해 이름을 메트로미도파로 바꾸고젊은 감각의 백화점으로 재단장했지만 역부족이었다.미도파가 95년6월부터 96년6월까지 올린 매출액은 6천4백억원. 그러나 당기순이익은 31억원에 지나지 않는다. 1천원을 팔아 5원을남겼다는 얘기인데 이는 할인점의 이익률보다도 훨씬 떨어진다. 경쟁자가 늘어난데다 백화점산업 자체가 할인점의 출현으로 위기에봉착했는데도 이런 시대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셈이다.한신공영의 경우 아파트단지를 개발하면서 덤으로 단지 안에 백화점을 건설, 유통사업을 추진해온 케이스다. 일종의 부업이었던 셈이다. 한신코아백화점은 도심과 떨어진 아파트단지내에 위치하고있다는 특징을 살려 「지역밀착백화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신공영의 이런 전략은 주위에 경쟁자가 없을 때는 적중했다. 그러나 주변 상권에 대기업 유통업체들이 들어서고 할인점까지 등장하자 한신코아백화점의 경쟁력은 점점 떨어졌다. 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나 대기업 계열 유통업체에는 도저히 맞설수 없었던 것이다. 유통에 전력을 다해도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에서 유통을 너무안일하게 생각했던 셈이다.최근 넘어진 태화쇼핑은 대기업과 외국 유통업체의 지방 공략으로위기에 처한 지방 유통자본의 현재 모습을 보여준다. 태화쇼핑은82년에 설립돼 83년에 부산에 태화백화점을 설립한 부산의 대표적인 유통업체다. 태화백화점은 지난 94년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평당최고 매출액을 기록하면서 연간 2천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던부산 최고의 유통업체였다. 이 태화쇼핑이 몰락의 길에 접어들게된 것은 롯데와 현대 등 대기업 계열 유통업체들이 95년부터 잇달아 부산에 점포를 내면서부터다. 태화쇼핑은 롯데와 현대라는 공룡에 맞서기 위해 지난해 태화백화점 옆자리에 신관을 새로 건설하고 부산 북구 덕천동에 2호점 건립을 추진했다. 매장늘리기와 다점포화로 거대 유통업체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 과정에서 1천억원에 이르는 빚을 끌어다 썼다. 빚은 빚대로 얻어썼는데 지난해 매출액은 1천4백억원으로 전년의 1천8백억원보다 더 떨어졌다. 버틸 재간이 없었다.어려움에 직면하는 유통업체가 이들이 마지막은 아닐 것이다. 이제유통산업은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유통사업을 하는 많은 업체가 유통을 황금알은 커녕 먹자니 먹을게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계륵(닭의 갈비)」으로 여길 때가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