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실력·실적 중심 인사제도...학력 연령은 'NO'

현재 일본 경제는 「세계 제 2의 경제대국」이라는 명성이 무색할정도다. 규제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아왔던 많은 일본 기업들이세계 시장 속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으며 장기적인 불황의 영향으로실적 또한 크게 악화되고 있다. 아시아 위기 이후 외국 자본의 적극적인 공격을 받고 있는 일본의 금융기관은 힘을 잃고 있는 일본경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그러나 이 위기 속에서도 세계 시장을 휩쓸며 일본 경제의 「위력」을 유지하고 있는 산업이 있다. 바로 게임 소프트웨어 산업이다. 일본의 게임 소프트웨어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인기를 얻으며히트 상품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게임 소프트웨어 산업은어떻게 일본 전체의 경제 혼란과 위기 속에서도 발군의 경쟁력을발휘할 수 있는 것일까.이 경쟁력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일본 게임 소프트웨어 회사의 경영 방식에 있다.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나 스쿠웨어, 고나미 등일본의 대표적인 게임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일본 기업의 지금까지상식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감한 임금제도와 실력주의를채택하고 있다. 실적이 좋으면 그만큼 금전적으로 보답해주는, 철저하게 실력에 기반한 인사제도다. 이런 실력주의를 통해 우수한 게임 개발자를 확보하는 동시에 직원들의 사기를 최대한으로 이끌어내 팔리는 게임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미 일본 대부분의 게임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판매 추이에 따라 게임 개발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는 실력주의 임금제도를 운영하고 있다.지난해 축구 등의 각종 스포츠 게임을 개발해 유럽에서도 크게 히트시켰던 고나미의 경우 게임 개발자에 대해 두가지의 성과급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첫째는 「개발장려금」이고 둘째는 「고나미 아카데미상」이다. 개발장려금이란 소프트웨어 판매 개수와 개발비,개발기간 등을 고려해 장려금을 산출, 개발팀에 지급하는 성과급을말한다. 예를들어 20명으로 구성된 개발팀이 1년동안 개발한 게임이 1백만개 팔렸다면 이 개발팀은 2천만∼3천만엔 가량을 개발장려금으로 지급받게 된다.고나미 아카데미상이란 임원들로 구성된 고나미 아카데미 위원회가회사에 공헌한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팀을 선정, 상금을 지급하는일종의 사내 표창제도이다. 지금까지 지급된 상금중 최고 규모는 3천만엔이지만 제도상으로는 최고 1억엔까지 지급할 수 있다.개발장려금과 고나미 아카데미상의 상금은 게임 프로듀서나 디자이너 등의 직종과 공헌도 등에 따라 개별 직원들에게 배분된다. 이두가지 성과급을 합해 연간 약 5천만엔의 급여를 받은 직원도 여러명 된다고 회사측은 밝힌다.「파이널 판타지Ⅶ」를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스쿠웨어도 실적에 따라 과감하게 보수를 지급하는 성과급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기본적인 운영 방식은 고나미와 비슷하다. 판매 개수와 개발비, 개발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장려금을 산출, 개발팀에 지급한 뒤 개발 공헌도에 따라 개별 직원에게 배분하는 것이다. 스쿠웨어의 경우 지난해까지 개발비는 고려하지 않고 판매개수에따라서만 장려금을 산출해왔다. 1백만개 이상 팔리면 2억엔, 3백만개 이상 팔리면 9억엔을 개발팀에 지급, 팀원들에게 배분하는 방식이었다. 개발비나 개발기간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방식은판매개수만 고려하기 때문에 개발 코스트가 상승할 우려가 있었다.이 때문에 지난해 10월부터는 성과급을 계산할 때 개발비와 개발기간도 함께 반영하도록 했다.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의 임금제도도 개발에 대한 과감한 대가를 보장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게임이 잘 팔려 개발비를 회수하고 이익이 생기게 되면 이익의 수 %가 담당 개발팀에 환원된다.이 장려금은 이익이 나면 나는대로 일정 비율대로 계속 개발팀에지급되기 때문에 액수가 무한정이다. 장려금을 받을 수 있는 기간도 무기한이다. 그 게임이 이익을 내는한 그 게임을 개발한 직원은이익의 일정 비율을 계속 받을 수 있다. 물론 회사에 계속 다니고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붙는다.『게임 제작자의 재능이나 감성이 소비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기간은 어쩌면 한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게임 제작자의재능이 최대한으로 빛을 발하는 그 「시기」에 최대한으로 대우를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사장이나 부사장보다도 더 많은연봉을 받는 제작자가 적지 않고 곧 연봉 1억엔을 받는 직원도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의 사토 부사장)실적에 따라 보수를 주는 임금제도는 엄격한 실력주의가 확립돼 있지 않으면 제대로 실행될 수가 없다. 이에따라 많은 게임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능력과 실적에 기반한 연봉제를 속속 도입하고 있는추세다.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는 개발·제작 부문에 연봉제를 도입, 전직원에 대해 1년단위로 계약을 갱신하고 있다. 연봉은 능력과 실적으로 결정되며 연령이나 경력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스쿠웨어도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연봉의 90%가 실력이나 실적으로 결정되는 능력급이고 나머지 10%만이 생활급이다.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제도상 그 다음해에는 연봉이 10분의 1로 깎일 수도 있다. 고나미의 경우도 입사 4년째부터는 개발·제작부문의 전직원이 연봉제를 적용받게 된다.◆ 연공서열은 완전 부정고나미는 95년부터 개발팀별로 분사화를 추진, 현재는 고나미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도쿄와 고나미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오사카 등으로 10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게 됐다. 각 개발팀을 개별 회사로 분리한 이유는 분사를 하면 개발팀과 각 개인별 능력 및 회사에 대한공헌도가 좀더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분사 이후 이익을 내는 회사와 이익을 내지 못하는 회사의 직원 사이에는 승급이나 상여 등에서 큰 격차가 생기게 됐다.이런 식의 실력주의는 인력을 채용할 때도 적용되고 있다. 게임 소프트웨어 업체 중에는 독특한 채용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회사가 적지 않다. 스쿠웨어도 그 중의 하나다. 스쿠웨어의 경우 즉시 현업에투입할 수 있는 경력 사원을 수시로 채용하는 동시에 연수생을 모집, 서로간의 경쟁을 통해 소수의 우수한 인재를 걸러내 정직원으로 등용하고 있다.스쿠웨어의 연수생 제도는 다음과 같다. 우선 매월초 잡지의 구인광고를 통해 연수생을 모집한다. 연수생의 신분은 아르바이트로 시간당 1천엔을 받게 된다. 여기에 응모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그래픽작품이나 게임 기획서 등을 제출해야 하는데 매월 5백명 정도가 응모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스쿠웨어의 현장 제작자들은 응모작품을보고 다른 사람이 쉽게 흉내낼 수 없는 독창적인 감성이나 고도의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선별, 이들을 면접한 후 채용 여부를 결정한다. 채용 인원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매월 평균 10여명 정도가 연수생으로 선발된다고 한다.스쿠웨어는 최신 기자재와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연수생들을 교육시키는데 연수생들로서는 이 과정이 즐겁지만은 않다. 2주동안 평가를 받아야 하고 과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가차없이 쫓겨나기 때문이다.현장 제작자들은 연수생들의 동향을 살펴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만한 연수생을 선발, 「개발 아르바이트」로 활용한다. 이렇게 선발된 아르바이트생은 게임 개발 및 제작팀에서 업무를 도와주게 되고 이 과정에서 특히 우수한 인재만이 정직원으로등용된다.연수생으로 출발해 정직원으로 발탁된 직원은 현재 약 50명 정도다. 정직원이 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경쟁률을 통과해야 하는가는정해져 있지 않지만 응모자 1만명 중에서 정직원이 되는 사람은 1명이 채 안된다고 한다.물론 정직원이 되는데 학력이나 연령 등은 전혀 상관없다. 절대적이고 유일한 기준은 팔리는 게임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실력뿐이다. 이 재능이 없다면 박사 학위를 갖고 있든 일류대학을 졸업했든 정직원이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스쿠웨어의 채용 방식은 미국 프로야구의 선수 선발 방식과 비슷한점이 많다. 미국의 메이저리그 팀들은 일본이나 한국 프로야구의 2군에 해당하는 3A의 유망한 선수들을 봄 합숙훈련 때 다수 참여시킨다. 합숙훈련 기간동안 이 3A 선수들을 서로 경쟁시키면서 체로거르듯 좋은 선수들을 골라내 최종적으로 몇 명을 메이저리그 선수로 발탁하는 것이다.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직원들의 사기를 최대한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경영과 조직이었다. 이제는 외부 제작자들의 사기를 최대한으로이끌어내는 게임 소프트웨어 업체의 경영 방식을 살펴보자.닌텐도와 리쿠르트가 공동으로 출자, 설립한 게임 제작 매니지먼트사인 마리가루매니지먼트(도쿄 시부야 위치). 마리가루매니지먼트는익명의 투자가들로부터 자금을 모아 이 자금으로 외부의 게임 제작자에게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도록 지원한다. 소프트웨어의 목표가정해지면 마리가루는 닌텐도 등 통신판매를 담당하는 게임 회사와초기에 찍어낼 제품 개수 등에 대해 교섭을 벌인다. 개발한 게임이잘 팔려 이익이 나면 투자가들에게 배당한다.이 투자기금의 어떤 부분이 외부 게임 제작자들의 사기를 북돋워주는 것일까. 착안할 수 있는 부분은 두가지다. 첫째는 개발된 게임소프트웨어의 저작권이 제작자에게 귀속된다는 것이다. 보통 게임기 제조업체나 대형 게임 소프트웨어 업체가 지원한 자금으로 중소업체가 게임을 개발하면 이 게임의 저작권은 자금을 대준 기업에속하게 된다. 마리가루는 업계의 이런 상식을 깬 것이다. 마리가루와 거래하는 제작자는 게임이 팔리는만큼 돈을 받을 수 있을 뿐만아니라 게임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인물)를 상품화하는 등 관련 사업에서 발생하는 2차적인 수입도 자신의 몫으로 챙길 수 있다.또 다른 특징은 마리가루의 업무 처리방식이다. 마리가루는 소프트웨어의 판매에서부터 금전적인 거래 문제까지 개발과 관련없는 모든 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다. 제작자는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게임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다.이런 조직과 프로세스를 통해 제작자들이 재능과 사기를 최대한으로 발휘해서 개발한 게임이 히트하면 닌텐도 등 통신판매를 담당하는 게임 회사의 매출액이 올라가게 된다. 이 뿐이 아니다. 이후에는투자가로부터 더욱 많은 자금을 모을 수 있게돼 게임 회사 자체적으로는 재무상의 리스크를 부담하지 않고도 게임 소프트웨어를 통신판매할 수 있게 된다.현재 마리가루는 6개의 제작팀과 계약을 맺고 있다. 계약을 맺은제작팀에는 과거에 히트작을 냈던 유명한 제작자도 있지만 도쿄대학의 학생과 졸업생 등으로 구성된, 게임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아직 실적도 없는 제작팀도 속해 있다.마리가루가 투자가로부터 모은 자금은 20억엔이 넘는다. 투자가에게 배당할 목표 이자는 연리 20%로 잡고 있다. 연리 20%가 가능하다면 투자한 돈이 5년안에 2.5배가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리스크가 있긴 하지만 게임이 하나라도 크게 히트한다면 연리 20%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마리가루측은 설명한다.실제로 마리가루의 이런 조직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인기를 얻고있는 투자 형태와 아주 비슷하다. 벤처 캐피털이 장래성 있는 기술을 가진 기업에 투자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여기에다 경리나 영업등의 전문가를 파견, 아이디어를 가진 기술자들이 경리업무 등에시간과 노력을 소요하지 않도록 한다는 특징을 가미했다.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게임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전형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경영전략은 우수한 인재를 서로 경쟁시키고 성과를올린 직원에게는 금전적으로 보답하는 적극적인 자본주의 방식이다. 즉 시장의 원리에 충실한 임금 및 인사제도를 통해 팔리는 상품을 만드는 경영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니케이비즈니스 최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