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분규 때마다 그 험악한 현장에 몸소 들어가 말리는 임원이있었다. 띠를 두르고,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는 그런 현장에 임원 한 사람이 들어가서 말려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들어가면 욕도 먹고, 강제로 쫓겨나기도 하지만 그 임원은 추호의흔들림도 없이 그와 같은 행동을 되풀이한다. 그의 행동은 노사분규를 말리는데는 아무 효과가 없지만 인사권자인 사장에게는큰 효과가 있다. 매일 보고되는 노사분규 실황 중계에 그 임원의혁혁한 공로가 바로 보고되기 때문이다.얼마전 연 3일 동안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를 했다고 난리법석이다. 언론에서는 어쩌면 이럴 수가 있냐고 분개하고, 시민들도 이어려운 시기에 국회의원들만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면서 그들의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정말 비분강개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손으로 뽑았고 한 사람 한 사람을 뜯어보면 그야말로 배울만큼 배우고,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사람들이다. 도대체 여의도 국회의사당에는 무슨 바이러스가 있길래 멀쩡하던 사람도 그곳에만가면 저렇게 사람이 바뀌는지 의아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그들의 막 가는 행동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현역 국회의원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일까. 우선 순위 넘버원은 단연코 차기선거에서의 공천 여부이다. 무엇보다 다음 선거에서 또 다시 공천을 받을 수 있느냐가 초미의 관심사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공천을 못 받으면 그들의 꿈을 이룰 수 없는것이고 공천을 받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해야만 하는 것이그들의 현실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천권을 가진 총재에게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고 요즘 같은 혼란기는 그들에게 더 없는 찬스인 것이다.더구나 야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바람에 일을 할수 없다고대통령이 고민을 하니 그를 위해서 할수 있는 최선의 일은 법안통과인 것이다. 날치기가 됐건 새치기가 됐건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며 자신의 뜻을 앞장서서 이루어주는 사람이 예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이 국민에게 욕을 먹으면 먹을수록 차기선거에서그들의 공천은 따놓은 당상인 것이다.첫돌이 막 지난 우리 집 조카는 여간 여우가 아니다. 평소에는집사람에게도 잘 가고 아무에게나 잘 가지만 할아버지만 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아무에게도 안가고 할아버지 무릎을 고수한다.권력의 핵심이 누구인지를 알아차린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할아버지에게 부탁하면 만사형통인데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구차하게 재롱을 떨 필요가 있겠는가.말을 못하는 갓난아기도 누구에게 잘 보이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하물며 국회의원들이 이를 모를 리는 없는 것이다. 현재의 공천 시스템하에서 그들은 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들이 자신의이익은 뒤로 한 채 선거구민이나 국민만을 의식하고 행동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일이다. 그들을 보며 분개하기 보다는 잘못된 시스템하에서 인간행동의 한계를 관찰하든지, 아니면 시민들이 앞장서서 정치개혁을 위한 서명운동이라도 벌이는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다. ibshkt@i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