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어, 가격 인하 압력 원인 ... 과잉설비도 경쟁력 악화 가져와

한때 거대 석유사들이 세계 원자재 시장을 주름잡았던 때가 있었다.이 시장의 특징은 대규모화다. 지금 거대한 원자재 시장은 서로 쪼개져 있던 데서 거대 업체들이 각각의 시장을 석권하면서 종목별로통합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2년전에는 미국 시장에만 4개의 거대 구리생산업체가 있었고 세계 3대 구리 채굴업체로 꼽히는 기업들도 중국과 구소련을 제외한 전세계 공급량의 1/3만을 담당했을 뿐이었다. 지난 8월부터 펠프닷지(Phelps Dodge)는 3억달러에 미국의 두 경쟁업체 아사코(Asarco)와 사이프러스에이맥스(Cyprus Amax)의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이것이 성공한다면 펠프닷지는 미국 시장을 지배할 수 있고 미국의 코델코(Codelco), 호주의 BHP와 함께 세계시장도 분할하게 될 것이다.거의 모든 종목의 원자재 시장에서 이런 기업간 통합움직임이 부쩍늘어나고 있다. 금속생산 기업간 합병에 투하된 자본은 96년의 1백20억달러에서 지난해 2백50억달러로 급증했다.알루미늄의 경우, 캐나다의 알칸(Alcan)은 최근 프랑스의 피시니(Pechiney)와 스위스의 알그룹(ALgroup)을 합병하기 위해 96억달러어치의 거래를 추진중이라고 발표했다. 미국의 알코아(ALcoa)도 국내의레이놀즈메탈즈(Reynolds Metals)에 대해 58억달러에 달하는 적대적합병을 추진해 성사시켰다. 알코아와 알칸은 곧 서방세계 알루미늄생산량의 4/5 정도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기초화학제품 분야에서는미국의 에어프로덕트(Air Products)와 프랑스의 에어리퀴드(Air Liquide)가 까다로운 경쟁자였던 영국의 BOC를 접수했다.◆ 가격하락세 계속돼 합병 추진이와 같은 움직임의 결과는 업계의 생산형태를 크게 바꿔놓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원자재산업은 리오틴토(Lio Tinto)같이 여러 나라에서 여러 종류의 사업을 벌이는 몇몇 거대기업들이 조각조각 분할하고 있었다. 그러나 통합을 통해 새로 탄생하는 「거인」은 특정원자재별로 각각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는 특화현상을 보일 것으로관측된다.이런 합병을 부추기는 요인중 하나는 가격하락세가 오래 지속됐기때문일 것이다. 특히 최근 4년 동안은 가격하락세가 아주 가팔랐다(도표참조). <이코노미스트 designtimesp=19014>의 메탈인덱스는 지난 95년 1월 최고를기록한 이후 명목지수로 36%나 하락했다. 여기에다 설비감소에 소극적인 업계분위기까지 더해 주주들은 엄청난 손해를 봤다.금융리서치회사인 모닝스타는 지난 10여년간 미국의 광업과 제지,화학제품 기업들에 대한 투자대비 연례배당의 전체평균은 겨우 6~8%라고 밝히고 있다. 원자재업계 주식의 전체 S&P500지수는 이와 대조적으로 17%로 차이가 계속 커지고 있으며 지난 3년 동안에는 갑절이넘게 늘어났다. 투자자들이 대부분의 원자재 주식에서 대거 물러나고 있는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원자재 회사들이 이런 움직임으로 가는 데는 고객들의 압력도 크게작용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처럼 글로벌화한 거대 바이어들의 출현은 공급자들이 비용을 더 절감하고 스스로를 세계화하도록 만드는역할을 한다.그렇지만 이런 변화는 시장을 더욱 효율적으로 변화시킨다. 물론 일찍이 향료 무역시대 이래 원자재는 세계적 규모의 사업이었다. 그러나 취약한 기업들도 보호무역주의와 정보의 부족으로 인해 보호받을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점점 찾아보기 힘들게 되고 가능성도 없어지고 있다. 중남미와 아시아의 사유화와 시장자유화, 구소련의 붕괴 이후 많은 저가 생산업체들이 세계시장으로 쏟아져 나왔다.원자재 시장의 통합이 고객에게 미칠 영향, 장기적 가격침체의 반전여부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컨설팅사 맥킨지의 데이비드 베넬로는 자원산업에서 가격책정과 통합과의 관계에 주목한다. 그는 현재대부분의 업계사정처럼 한 산업에 6개 이상의 회사가 있다면 완전한경쟁이 대세가 될 것이지만 4개나 그 이하일 경우 명백하게 담합을하지 않더라도 가격은 왜곡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용절감을 위해생산성 향상을 강요하는 치열한 경쟁이 없이는 새로 출현한 거대기업들이 별 어려움없이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예상한다.◆ 설비 감축해야 마진 늘릴수 있어하지만 이처럼 자동적으로 굴러떨어지는 횡재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살로먼스미스바니 투자은행의 마셜 어쿠프는 지난 10여년 동안의 과도한 자본투자가 원자재 산업에서 현재와 같은과잉설비를 낳았다고 믿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새로운 거대 기업들이 설비감축을 하지 않고는 마진을 늘릴 수 없다는 것이다.그러나 설비감축이 원자재산업에서는 별로 통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구식 제지공장이라도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은 펄프업계에서통용되는 말이다. 원자재처럼 자본집약적 산업의 경우 경영자들은주종목 이외에도 다른 제품을 많이 만들어 내면서 가격을 더욱 내리는 방식의 경영을 해왔다. 때문에 앤더슨컨설팅의 켄트 돌비는 기업들이 통합을 통해 얻는 비용절감분도 자칫하면 바이어들에게 빼앗길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업들도 바보는 아니다. 그들이 규모를중시하는 데도 일리가 있다. 자본집약적 산업에서는 규모의 경제가작용하는 것이 일상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비는 이런 식의 생각은 어느 한 공장이 특화된 제품을 산출해 얻을 수 있는이익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세계최대 제지회사 인터내셔널페이퍼는 생산시스템을 고정비용보다는 여러 가지 변수에다 분산시킴으로써 생산시스템에 일대 혁명을일으켰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연간 1억달러를 절감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최근의 통합 움직임에서 승자로 떠오를 몇몇 기업은 당연히 허우적거리고 있는 많은 기업들보다 우월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그들이 이익을 많이 올릴 수 있는 가격인상에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어떤 제품이 생산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판단함으로써 생산시설을 합리화하는 것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맥락에서 지금의 통합움직임은 여기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원자재 생산업체들에 결과적으로는 이익이 될 것이다.<자료 「Commodities get big」 Aug. 28th, 99 designtimesp=19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