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세계 도약 발판 … 벤처문화 조성 앞장

한국벤처기업협회가 창립 5년만에 기수를 바꿨다. 벤처기업협회는 지난 95년 창립 이후 벤처기업특별법제정, 스톡옵션제 도입, 코스닥시장 활성화, 벤처기업전국대회, 기술거래소 설립 등 벤처기업을 위한 발전적인 정책 수립에 크게 기여했다. 이 토대를 바탕으로 상당수 벤처기업은 성장단계에 진입하기 위한 몸풀기가 한창이다. 그러나 사회 일각에서는 벤처기업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아울러 벤처기업협회가 폐쇄적 운영으로 일관했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벤처기업의 사회적 역할이 요구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신임 장흥순회장을 만나 벤처기업협회 운영과 벤처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들어 보았다.▶ 벤처기업의 역할이 중요한 때라고 생각됩니다. 2대 회장에 취임하면서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조했는데 구체적인 추진방안은 있는지요.대기업과 벤처기업, 벤처기업과 벤처기업간의 협조체제를 만드는데 협회가 최선을 다해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지난 95년 벤처기업협회가 설립된 이후 5년 동안은 벤처기업 붐 조성을 위한 시기였습니다.이제 벤처기업도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봅니다. 기술력을 가진 벤처기업들이 5년, 10년 후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으려면 지금이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대기업이 지닌 글로벌 네트워크와 벤처기업의 R&D 능력을 적절히 조화시킬 수 있는 전략적 제휴가 필요합니다.지금까지는 벤처기업이 자본력이 취약해 전략적 제휴나 글로벌 네트워킹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코스닥 시장이 활성화되고 벤처기업의 자본 규모가 커지면서 제휴모델이 가능해졌습니다. 대기업이 벤처에 투자하고 외국 기업과 전략적 제휴로 글로벌화하는게 가능해졌습니다.▶ 최근 일부 벤처기업 가운데 기술개발보다 코스닥 등록을 통한 재테크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정부에서도 소위 무늬만 벤처인 업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습니다.한때 벤처기업에 모든 희망과 장래가 달려 있다고 부르짖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코스닥 시장이 활성화되자 과열을 넘어서 벤처 거품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코스닥 기업 가운데 거래소 시장의 국내 대표적인 기업보다 주식자산가치가 추월하는 기업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국민들 사이에서 과연 이것이 현실이냐 거품이냐를 놓고 논란이 빚어지고 있습니다.그러나 지금의 코스닥 시장의 현상은 투자자의 요구가 있고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므로 버블을 걱정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실체가 알려지면서 부실한 곳은 자연히 도태될 것이고 유망한 회사는 더욱 발전할 것입니다. 버블론은 시장 판단에 맡겨야지 인위적으로 버블이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벤처기업들의 공익재단 설립이 한창입니다. 이를 놓고 벤처신재벌론과 바람직한 부의 사회 환원이라는 시각도 있는데요.벤처기업이 재벌이 되고 싶어서 된 곳은 없습니다. 또 벤처기업중에 재벌이라고 생각하는 회사도 없을 것입니다. 벤처재벌이나 재벌 논쟁도 시대적인 변화입니다. 벤처 1세대는 기술개발에 모든 것을 투자했습니다. 그들이 해왔던 기업 운영을 들여다 보면 눈물겹고 처절한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사회가 변화하면서 부가 생긴 것입니다. 시대가 바뀌어 벤처 재벌이라는 얘기도 듣게 된 것입니다.공익재단 설립은 후배를 양성하고 궁극적으로 회사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장기적인 플랜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얼마전 KAIST 출신 벤처기업가들이 모교에 1백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학교에 도움을 주는 한편, 우수한 인재를 뽑는다는 차원에서 회사에도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실험실에서 완벽했던 연구가 벤처 창업에서 실패한 사례가 많습니다.실험실 창업운동 모델도 이제 변해야 합니다. 실험실 기술을 가지고 회사를 설립해 경영과 마케팅까지 책임지기보다 그 기술을 판매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는 4월에 출범하는 기술거래소가 이 역할을 맡을 것입니다. 우수한 기술을 팔고 사는 것입니다. 경영에 자신이 없다면 우수한 기술은 판매하는 것입니다. 실험실에서는 기술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입니다.▶ IMF 당시 모든 기업이 프로젝트를 중단했습니다. 그러나 장회장께서는 오히려 반도체 신규장비 사업에 투자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했습니다.IMF는 기업가 입장에서 보면 시장이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기업마다 인원을 줄이고 비용 축소에 안간힘을 썼습니다.저희도 살아남기 위해 비용은 줄였지만 R&D 투자는 오히려 늘렸습니다. 그러면서 IMF를 벗어났을 때를 대비했습니다. 오히려 여기서 살아남아야 성공한 기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IMF때 수세적인 경영을 한 대기업보다 그 틈을 이용해 공격적인 경영을 했던 상당수 벤처기업들이 더욱 각광을 받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봅니다. 우리가 IMF와 같은 위기를 다시 맞지 않기 위해서는 연구 개발 투자를 강화해 핵심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최근 대기업에서 벤처기업으로, 벤처기업에서 벤처기업으로 인력 이동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우수 인력 확보에 남다른 방안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대기업에서 벤처기업으로 전직하는 현상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봅니다. 인터넷 경쟁시대에는 작은 것이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스피드와 유연성 인센티브면에서 개인이 우선시되고 있습니다. 개개인이 회사의 부속품이 아니라 보람과 성취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저는 평소 올바른 기업 문화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자본이 부족했던 창업 초기에도 직원 자질 향상을 위해 해외 연수프로그램 참가, 전문기관 위탁교육 등을 체계적으로 실시했습니다. 개인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주고 책임과 권한을 부여해야 조직 전체가 살아가는 길입니다.세계가 글로벌화되면서 선진 기술은 물론 문화가 동시에 전파되는 마당에 제대로 된 기업문화를 갖추지 못한다면 기업은 기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IT분야 업체에 철학과 학생들의 인기가 매우 높다고 합니다. 기업 가치관 문제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벤처 창업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충분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벤처 기업가가 아니더라도 새시대에 리더가 되기 위한 준비는 필요합니다. 지금 벤처기업 가운데 인터넷 시대라고 너도나도 준비없이 창업대열에 뛰어들고 있습니다.지금은 하나의 기술보다 복합적인 기술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하드웨어 기술뿐 아니라 마케팅, 경영 기술도 필요합니다. 이런 기술들을 네트워킹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준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rofile in Mirror우리 속담에 작은 고추가 맵다는 표현은 장흥순회장을 두고 한 말이다. 교수직에 남을 것인가를 고민하다 기술 하나만 믿고 `88년 창업 대열에 뛰어들었다. 초정밀 기술이라는 CNC(컴퓨터수치제어장비) 분야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이 기술은 일본의 화낙이 세계 최고였다. 주변에서 무모한 짓 말라는 충고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장회장의 도전의식에 불을 당겼다. ‘화낙 타도’가 그의 목표였다. 회사 이름도 ‘터보(Truly Unceasingly Research Boys) 테크’ 즉 ‘끊임없이 참된 연구를 하는 젊은이들’로 지었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91년 천신만고 끝에 일본에 수출한 4백대가 전량 클레임을 당했다. A/S로 자본금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오늘의 터보테크가 있기까지 소중한 자산이 됐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의 오기와 뚝심이 아니면 이 분야는 영원히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없는 기술 종속국이 됐을 것이라는게 주위의 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