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인식표 통해 정보 자동추적 … 불법복제·저작권 문제 등 유통시장 지각변동 불가피

DOI의 내용은 간단하다. 디지털 콘텐츠에 바코드를 붙이자는 것이다. 전자출판, 영상, 음반 등 인터넷을 통해 유료로 다운로드를 받을 수 있는 모든 콘텐츠에 해당된다. 이렇게 되면 문화산업에 관련된 생산자, 유통업자 그리고 소비자에 이르는 전과정을 투명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그러려면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DOI는 콘텐츠 유료화의 전 단계면서 지금까지 개별적으로 움직였던 디지털 유통 체계를 통합하는데 보다 큰 의미가 있다.◆ DOI 도입 배경'디지털 콘텐츠 식별자’란 뜻의 DOI는 바코드나 저작권 표시인 ISBN과 같은 역할을 한다. 콘텐츠를 누가 언제 개발했으며 판권의 소유자는 누구인지, 가격은 얼마인지 하는 정보들을 담고 있다.DOI는 지난 94년 미국 출판협의회에서 저작권 보호를 목적으로 처음 제안됐다. 어떤 콘텐츠라도 인터넷으로 손쉽게 다운받을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출판, 음반, 영상물 등의 저작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그 뒤 97년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미국의 국립정보기술원인 CNRI(The Cor-poration for National Research Initiatives, www.cnri.reston.va.us)가 DOI란 개념을 실제 응용한 시스템을 선보여 개념으로만 머물러 있던 DOI의 활용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당시 출판업계의 고민은 URL체계에선 콘텐츠의 주소를 정확히 찾을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연간 생성된 홈페이지 주소중 3분의 1이 바뀌는데도 URL 체계에선 바뀐 주소를 찾아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던 것이다. 종종 홈페이지를 검색하다보면 “이 페이지는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URL 체계의 한계 때문이다.그래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URN (Uniform Resource Name)이라는 개념이다. 이는 찾고자 하는 업체 이름만 대면 전화번호가 바뀌어도 문제없이 찾아주는 114 서비스와 같은 시스템.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콘텐츠마다 인식표를 달고 변동상황을 수시로 체크하는 서버가 구축돼 있어야 한다.CNRI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선보인 DOI 체계는 URN이란 개념을 실제로 구현해 냈다는 측면에서 화제가 됐다. 이후 국제 DOI 재단(IDF)이 설립되었고, URL체제를 대신하는 새로운 체계를 표준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이보다는 한발 늦었지만 유럽에서는 메타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연구했다. 메타데이터란 콘텐츠를 누가 어떻게 언제 얼마를 주고 구입했는지,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정보를 관리하는 데이터다.인덱스(INDECS)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작업은 유럽연합의 INFO2000의 단위사업으로 진행됐다. DOI가 콘텐츠에 인식표를 붙이는 것이라면 INDECS는 유통 데이터를 관리하는 셈이다.국내에서도 이런 변화의 움직임을 따라가고 있다. 지난 4월 정보통신부가 올해 11억원을 들여 DOI 체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현재 정통부가 DOI의 시범 실시기관으로 지정한 데이터베이스진흥센터와 문화관광부 산하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가 DOI 표준화안을 공동으로 마련하고 있다.이들의 역할은 우선 디지털 콘텐츠 유통기관의 번호를 어떻게 부여할 것인지, 콘텐츠에 바코드를 붙이는 표준안은 무엇인지, 한글 인터넷 주소를 어떻게 도입할 것인지 정하는데 있다. 진흥센터 연구개발팀 정상원 연구원은 “예정대로라면 오는 7월초 표준화 초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어떤 과정을 통해 적용되나DOI체계가 도입되면 저작자, 유통업자, 등록대행자, 소비자들간의 관계는 어떻게 변하는 것일까.(그림1 참조) 우선 전자출판물의 원저작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저작자는 자신이 쓴 책을 판매하고 싶어한다. 그러려면 판권을 콘텐츠를 유통시키는 쇼핑몰에 넘겨야 한다.쇼핑몰은 등록대행자(출협과 진흥센터)로부터 유통 사업자 번호를 부여받아야 한다.(그림2 참조) 도메인을 등록하는 것과 같다. 쇼핑몰은 번호를 받은 대가로 등록대행자에게 일정액의 수수료를 건낸다.저작자에게 판권을 넘겨받은 쇼핑몰은 전자출판물에 고유 번호를 붙인다. 그 뒤 자사 인터넷 쇼핑몰에 게시한 뒤 다운로드를 받기 원하는 소비자에게 대금을 받고 넘긴다. 소비자는 전자화폐나 신용카드 등을 통해 다운로드의 대가를 지불하고, 다시 쇼핑몰은 저작자에게 저작료를 지급한다.쇼핑몰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콘텐츠를 유통하면서 메타데이터를 관리해야 한다. 메타데이터는 일종의 영수증 발급으로 이해하면 된다.신용카드로 대금을 결제했을 때 영수증이 3개가 발급되는 것처럼 메타데이터도 마찬가지다. 하나는 다운로드를 받은 카드 소지자에게, 다른 하나는 쇼핑몰 보관용으로 마지막 한 장은 세금계산서용으로 발급되는 것이다.유통시장의 투명성을 유도하고, 콘텐츠의 유통경로를 환히 추적할 수 있는데서 앞으로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유통체계가 설립된다. 지금까지는 주먹구구식으로 유지됐던 유통시장이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셈이다.이 체계가 도입되면 콘텐츠를 유통하고 생산했던 업체들로선 이용자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이점이 생긴다. 통신업체에 직업 컨설팅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캔비미디어 서광원 사장은 “지금까진 누가 얼마나 우리가 제공한 정보를 봤는지 체계적으로 집계할 수 없었다. 그러나 DOI체계가 도입되고 디지털 콘텐츠가 유료화된다면 좀더 마케팅 타깃을 정확하게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콘텐츠 업체들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지난 3월 미국과 한국에선 디지털 유통시장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사건이 터져 나왔다. 우선 미국에서 미국음반협회와 MP3닷컴간에 벌어진 소송건. 미국음반협회는 MP3닷컴이 수만장의 CD를 구입해 인터넷을 통해 이용자들에게 서비스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 행위라며 소송을 진행했다.결국 1심에서 법원은 음반협회의 손을 들어 주었다. 이 때문에 50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MP3닷컴은 서비스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다음은 한국. 도메인 등록 컨설팅 업체인 후이즈는 자사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을 무단으로 복사해 홈페이지에 옮긴 혐의로 (주)인터넷프라자시티를 고소했다. 지난 6월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는 인터넷프라자시티를 벌금 1백만원에 약식 기소해 저작권법 위반임을 명확히 밝혔다.이같은 사건은 앞으로 디지털 유료화가 진행되면 더욱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DOI 표준안을 서두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디지털 콘텐츠 유통이 시작되면서 영향을 많이 받을 것으로 보이는 오프라인 매장의 변화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물리적 유통단계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대형 매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대형 데이터베이스 처리장치가 필요하다.따라서 대용량의 DB를 갖출 수 있는 대기업 중심이나 브랜드 이름이 확고한 몇 개 유통조직을 제외하고는 상당수의 서점, 총판 조직들은 다른 살길을 모색하지 않는 한 생존하기 힘들어진다.또 대형 업체들간 저작자의 판권을 입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고, 음반유통사는 음원을 확보하기 위해, 그리고 영상 유통은 또 영상 판권을 얻기 위해 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국 자본의 논리에 따라 대형 유통조직이 독식하는 경우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출판계에선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 전국 1백여개 출판사들이 연합, 북토피아라는 전자출판 유통조직을 출범시켰다. 음반업계나 영상제작업체들은 각자 유통조직을 갖고 움직이는 형편이다.★ 인터뷰 / 엔피아시스템즈 사장 함경수“전자상거래 판이 바뀐다”DOI 체계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 DOI 재단에 가입돼 있는 국내 업체와 기관은 3곳. 국내 등록기관을 대행할 대한출판문화협회와 데이터베이스진흥센터 그리고 일반 업체로는 엔피아시스템즈가 유일하다. 정보검색엔진 솔루션 사업에 주력했던 엔피아는 지난해부터 DOI와 INDECS 솔루션 전문 업체로 한창 탈바꿈을 하고 있는 곳이다. 엔피아 함경수 사장을 만나 DOI 체계를 어떻게 산업화시킬 것인지 들어봤다.▶ DOI와 INDECS 솔루션 개발에 관심을 갖는 배경은.미국과 유럽의 디지털 산업을 보면서 전자상거래의 판이 바뀔 것으로 확신했다. 국내에선 전자상거래의 인증이나 보안의 문제에만 매달렸지만 유통구조가 바뀌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외국에선 이미 수년 전부터 URL을 대체할 DOI와 INDECS 체계의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엔피아의 구체적인 준비상황은.지난 13일 TG벤처에서 30억원의 자본을 유치했다. 이 자금을 가지고 오는 2001년까지 DOI 분야에 투자할 계획이다. 최근 국제 DOI 재단에 연간 4천만원의 회비를 내고 제너럴 멤버로 가입한 것도 이 분야를 중점적으로 키울 생각에서다.▶ DOI체계가 도입되면 어떤 응용 사업분야가 생길 수 있나.우선 한글로 문서를 찾는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한글검색은 이미 국내 모 업체가 시작했지만 새로운 DOI 체계에서 한글검색 기능은 아니다. 한글 이름만 기입해도 홈페이지의 주소를 정확하게 찾아갈 수 있는 서비스 업체가 생길 것이다.또 DOI 체계를 이용해 출판업계, 저작권 단체와 제휴, 논문이나 전문서적의 열람을 원하는 이용자에게 서비스할 수 있고, 웹상의 문장이나 단어 중에서 설명이 필요한 경우, 인용된 원문에 직접 접속해 열람할 수 있는 서비스도 할 수 있다.▶ 올해 목표는.우선 국제 DOI 재단의 테크니컬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지난 3월엔 유럽 INDECS 워크숍에서 테크니컬 멤버로 초청을 받아 국내 DOI 기술에 대해 발표했다. 7월엔 재단 초청으로 국내 DOI 활용 가능성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용어설명 : DOI란'디지털 콘텐츠 식별자’란 뜻의 DOI(Digital Object Identifier)는 모든 책에 부여되는 ISBN번호 체계처럼 인터넷으로 유통되는 모든 디지털 콘텐츠에 부여되는 일종의 바코드다. 콘텐츠 소유자와 제공자 그리고 데이터에 관한 각종 정보가 입력돼 콘텐츠의 주소나 위치가 바뀌어도 쉽게 찾을 수 있고, 유통경로가 자동 추적돼 불법복제를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