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분유·세제광고에 남성등장 ‘부쩍’ … 제작업계 “호소력 있고 차별화 메리트”

남양유업 '임페리얼 드림' 광고.여성용 위생용품 광고에 여성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한 남자가 자기 여자친구 얘기를 들려줄 뿐이다. 아기 유아식 광고에선 흔하게 등장하는 엄마대신 아기를 안아 재우는 아빠가 있다. 직접 설거지를 하며 주방세제의 우수함을 광고하는 것도 남자다. 고급 대형 냉장고 시장은 여성모델들이 고품격에 걸맞는 우아한 분위기를 뽐내는 장이기도 했지만 최근엔 잘생긴 남자가 이들의 경쟁자로 나섰다.이처럼 당연히 여성이 모델로 나서야 할 것 같은 여성 전용품이나 그동안 관행적으로 여성모델이 맡아오던 가정용품 광고에 남자들이 대거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얼핏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여성용품 및 가정용품 광고의 남성모델 기용은 일단 광고 차별화라는 점에서 눈에 띈다.이와 함께 일부 광고는 크게 보면 성에 대한 고정관념 즉 ‘성역할’ 파괴라는 사회학적 의의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설거지를 하고 아기를 돌보는 남자들이 광고로나마 많이 눈에 띈다는 것은 그만큼 그런 모습이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변해갈 가능성이 크다는 뜻에서다.우선 가장 최근에 나온 대우전자의 ‘클라쎄(Klasse)’ 광고를 보자. 대우는 현재 삼성전자 지펠과 LG전자의 디오스가 양분하고 있는 고급 냉장고 시장에 클라쎄를 출시하면서 두 제품과의 차별화에 가장 신경을 썼다. 물론 품질의 차별화가 보다 중요하겠지만 1차적으로 제품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선 소비자들의 눈에 띄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광고 차별화가 급선무였다. 고급냉장고 광고는 그 동안 삼성 지펠의 이영애, LG 디오스의 심은하 등 여성 빅모델의 우아함을 겨루는 경연장이기도 했다.그래서 대우전자가 선택한 카드는 장동건. 따스한 햇살이 스며드는 밝은 거실, 부드러운 바람결에 쉬폰 커튼이 날리고 창가에 멋진 포즈로 기대선 남자가 있다. 대박을 터뜨린 영화 <친구 designtimesp=21202>로 인기 상종가를 달리고 있는 장동건을 ‘냉장고 옆에 선 연인(戀人)’으로 연출한 것이다. “그가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는 광고 멘트처럼 뭇 여성들의 연인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장동건의 이미지는 곧 클라쎄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장동건이 많은 여성들의 연인이듯 클라쎄 또한 여성들의 연인이 되고자 한다는….이 광고를 제작한 코래드 측은 “ 멋진 냉장고를 장만하고픈 여자들의 욕구를 멋진 남자를 소유하려는 마음과 비슷하다는 메시지로 전달하기 위해 장동건을 캐스팅 했다”고 밝혔다. 여기에다 비슷한 이미지의 여배우 기용으로 아류광고를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틀을 깨는 파격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는 것이 코래드측 설명이다.이래저래 고급냉장고 시장은 고품격 소비자들을 사이에 두고 쟁탈전이 더욱 뜨거워지게 됐다.대한펄프의 ‘매직스’는 ‘부드러움’을 컨셉으로 하는 여성 위생용품. 대부분의 여성 위생용품 광고에서 젊고 발랄한 여성들이 깨끗함과 흡수력 등 그 효능을 설명하는 데 비해 매직스 광고에선 남자 탤런트 고수가 자신의 여자친구 얘기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장동건·고수 등 인기배우 기용 젊은여성 공략왈가닥 같은 연인이 한 달에 한 번은 꼭 부드러워지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고수. 마침내 찾아낸 비밀은 바로 ‘매직스’. 매직스의 부드러움 때문에 연인 역시 부드러워진다는 것이다. 광고 속에 고수의 연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빈 의자만 고수 옆에 놓아둠으로써 누구든 고수의 연인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부드러워지는 매직스의 마법으로.광고제작사인 LG애드 측은 “탤런트 고수의 부드러운 이미지가 제품의 주 소비층인 젊은 여성들에게 호감을 주는 데다 광고의 컨셉과도 잘 어울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아기 우유나 유아식 광고도 갓 엄마가 된 여성탤런트나 신세대 주부들이 판을 치는 곳. 엄마가 이유식을 고르는 모습을 통해 아기를 돌보는 것은 당연히 엄마여야 함을 은연중에 주지시켜 왔다고나 할까.여기에 반기를 든 것은 남양유업의 ‘임페리얼 드림’ 광고다. 넓은 호수가 보이는 전망좋은 거실. 아침 햇살이 퍼지고 있는 가운데 엄마는 쇼파에 앉아 있고 출근 복장을 한 아빠가 아기를 안고 거실을 거닌다. 아빠 품에 안긴 아기는 반쯤 잠에 취해있으면서도 아빠의 옷깃을 매만진다. 아빠와 떨어지기 싫다는 듯이. 이런 아기를 들여다보는 아빠의 환한 미소. 출근 시간의 다급함도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는 행복을 앗아가지는 못한다.남양유업은 “이 광고가 언뜻 평화롭고 평범한 일상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킴으로써 유아식 광고의 전형을 깨면서도 이국적이고 고급스런 거실 풍경과 세련된 색채로 프리미엄급 유아식 이미지를 잘 살렸다”고 평가했다. 임페리얼 드림은 프리미엄급 유아식 시장점유율 1위를 고수하는 최고급 유아식으로 알려져 있다.남양유업 관계자는 특히 “이 광고를 TV에 선보인지 한 달도 못돼 아버지 역할을 한 남자모델이 누구인지 묻는 소비자 전화가 빗발쳤을 정도로 소비자 반응이 뜨겁다”고 말했다. 아버지 역할을 한 남자모델은 영화 <물고기자리 designtimesp=21226>의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최우제씨.파스퇴르 유업의 광고에서도 남자모델이 활약한다. 창 사이로 조각달이 떠 있고 아기 침대에서 아기가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다. 그 위에 나타난 남자천사는 엄마대신 아기를 지켜주는 수호천사 또는 이미 세상을 등진 아기의 아버지를 연상시키며 남자의 아기사랑을 강조하고 있다.주방세제는 남자모델들이 비교적 일찍부터 각축을 벌이던 분야. 애경이 ‘순샘’ 광고에서 1주일에 한 번씩 아내를 도와 설거지를 하는 자상한 남편역할로 탤런트 차승원을 등장시키더니 최근에는 개그맨 남희석을 집들이 후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설거지를 재미있게 하는 신세대 남편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밖에도 이홍렬이 LG생활건강의 ‘자연퐁 싹’을 통해 설거지 실력을 뽐냈고 이경규는 한국피앤지의 ‘조이’ 모델로 나오기도 했다.남성모델을 위주로 한 이들 세제광고는 우선 맞벌이가 보편화되면서 가사분담의 중요성이 커지고 이 중 설거지만큼은 남편이 해주는 가정이 많아지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 세제가 모두 기존 주방세제에 비해 성분이 강화된 세제들인 만큼 여성모델보다 설거지에 서툰(?) 남자들을 내세우는 것이 강한 세정력을 부각시키는 데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한편 기존에 남성의 영역으로 치부돼 왔던 타이어 광고에 여성이 등장하는 등 광고에서의 성역할 파괴는 실생활에서의 성역할 파괴에 못지 않게 가속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