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기 중심의 사무자동화기기 전문업체인 ‘한국후지제록스(www.fujixerox.co.kr)’ 하면 일본 후지제록스의 한국법인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그러나 다카스기 노부야 회장을 비롯해 직원은 물론이고 이 회사 제품을 판매하는 대리점주까지 어느 누구도 한국후지제록스가 ‘한국 기업’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카스기 노부야 회장이 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전받은 기술로 한국 근로자들이 국내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 수출까지 하면 그게 바로 한국 기업이 아니겠습니까.” 즉, ‘뿌리는 일본에 있지만 열매는 한국에서 맺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이 회사는 지난 98년 합작파트너인 동화산업이 갖고 있던 50%의 지분을 일본 후지제록스가 전량 인수, 국내에 완벽하게 터를 잡았다. 그만큼 일본 후지제록스가 국내 시장에 애착이 많다는 증거다.우수 외국투자기업으로 국내 상 휩쓸어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하자면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토착 기업’임을 표방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국내 단체들로부터 나오는 평가도 어느 국내기업 못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가 회사를 맡기 시작한 지난 98년부터 지금까지 곳곳에서 주는 상을 휩쓸다시피한 것만 봐도 짐작이 간다. 최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서 주관한 ‘바른외국기업상’에서 1위 기업으로 선정된 것이나 이에 앞서 한국능률협회 등에서 뽑은 한국인재경영 우수기업에도 포함됐다. 여기에 국내 외국인 투자기업 국민경제 기여도(서울대 국제경영연구센터) 10위 업체로 뽑힌 데 이어 2001년도 복사기 부문 고객만족도(한국능률협회 선정) 1위 기업, 신노사문화 우수기업(노동부 선정) 등 올들어 받은 상만으로도 충분히 ‘우등 유학생’이라고 할 만하다.한국후지제록스가 처음 국내에 설립된 것은 지난 74년. 당시 동화산업과 일본 후지제록스가 반반씩 지분을 갖고 합작해 코리아제록스를 만든 게 모태가 됐다. 일본 후지제록스 역시 미국 제록스와 일본 후지필름의 합작회사로 77억달러의 연매출을 올리는 거대기업이다. 코리아제록스는 그후 25년 가까이 운영돼 오다가 지난 98년 IMF 경제위기 당시 자금난에 직면한 동화산업이 지분을 후지제록스에 모두 넘기면서 이듬해 한국후지제록스로 재탄생한 것이다.지분 인수와 동시에 다카스기 회장이 회사재건의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면모를 갖추게 됐다. “98년 당시 1백11억원의 적자를 보던 회사가 이듬해 24억원의 흑자를 내더니 지난해엔 59억원으로 그 폭이 더 늘었고 올해 역시 80억원은 무난하게 남길 것”이라고 다카스기 회장은 말한다. 이익의 상당 부분은 신기술과 신제품 개발에 재투자하고 있다. 연구개발(R&D) 투자가 98년 매출액 대비 3.5%에서 올해 6.6%로 확대된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2~3년새 규모도 커졌다. 현재 1천3백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인천 서구와 부평 공장에서 연간 복사기 6만대를 비롯해 레이저프린터와 팩시밀리를 각각 4만대씩 생산하고 있다. 이외에도 디지털 복합기, 프로젝터 등 첨단 제품들로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지분이 1백% 후지제록스로 넘어간 98년 국내 업계 최초로 복사기를 미국에 직수출하는 것을 비롯해 현재 전체 매출의 15% 정도를 해외 시장에서 올리고 있다. 지난해엔 디지털복사기와 프린터, 그리고 팩시밀리를 하나로 묶은 ‘디지털 복합기’를 개발해 선보이면서 히트상품으로 키워냈다.안팎에서 이 회사를 우수기업으로 뽑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다름 아닌 ‘경영투명성’이다. 경영상태를 모든 직원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한 것이다. 이는 다카스기 회장이 부임 때부터 강력하게 추진한 방침이기도 하다. 일본 와세다대학 상학부 출신인 그는 지난 66년 후지제록스에 입사한 이래 경리부장, 재무부장을 지내 ‘돈을 다루는 일’이라면 ‘똑소리’ 나게 처리하는 베테랑. 정기적으로 노사협의회를 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삼겹살 회장’이란 별명을 얻었을 정도로 틈만 나면 직원들과 소주에 삼겹살을 먹으며 터 놓고 얘기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다카스기 회장은 “외국기업에 넘어간 회사에서 흔히 일 수 있는 직원들의 반감을 사지 않기 위해 인수 후 끝까지 고용승계의 원칙을 지켰던 덕이 컸다”고 전한다. 그 결과 지난 3월엔 국내 외국인 투자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무분규 선언’과 함께 ‘무교섭 타결’을 일궈낼 수 있었다.다카스기 회장이 국내 시장을 보는 눈은 남다르다. 복사기만 해도 포화상태처럼 보이지만 아직까지 디지털 복사기는 그 보급률이 고작 10%에도 못 미친다는 것. “현재 일본은 전체 시장의 80% 정도가 디지털 복사기로 대체됐고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도 30% 수준은 됩니다.” 한국은 아직 디지털 복사기 시장만 해도 무궁무진한 셈이라는 뜻이다. 또 인터넷이 계속 발달하는 추세에 맞춰 PC와 연동될 수 있는 디지털 복합기 등 다기능의 첨단 제품 쪽으로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아날로그 복사기 시장에서 나타나듯 값싼 물량으로 덤핑을 쳐 시장을 교란하는 구태는 빨리 사라져야 합니다.” 그가 놓은 일침이다.내가 본 한국후지제록스“준법성·윤리성 등 으뜸”경실련 산하 경제정의연구소(KEJI)의 다국적기업 평가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바른외국기업상’ 수상 기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한국후지제록스를 실사하게 됐다. 다른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KEJI 다국적기업 경제 정의 지수 모형’을 토대로 준법 윤리 성과 등의 측면에서 이 회사를 조사했다.이 회사는 우선 성과 부문 중 생산성과 수익성, 수출비율, 국내종업원 고용율, 공헌도 등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윤리 부문에서 본 한국인 간부 비중, 노사관계, 공익 행사 등에서도 다른 기업들과 비교해 돋보였다. 준법 부문 역시 납세와 고용평등법 준수 등에서는 모범적이었다. 다만 공정거래법에서 약간의 문제점이 지적돼 아깝게 1위를 놓치고 말았다. 판매촉진을 위해 가격이 저렴한 타사 제품을 판매하겠다고 요구하는 대리점측과 다소 마찰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이 문제가 다 해결됐다고 한다. 아마도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려다 다소 유연성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조사에 응한 국내 진출 외국기업 중에선 가장 바람직한 기업으로 평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