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경제 나침반 기업, 인터넷 물결타고 라우터시장 평정 … 지난해 223억 달러 매출

미국 새너제이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시스코시스템즈는 인터넷경제를 대표하는 간판기업이다. 시스코는 90년대 중반, 자고 일어나면 건물이 하나씩 늘어나 실리콘밸리의 부동산 경기를 주도한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나갔다.상장후 8년간 150배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한 시스코는 치솟는 주가, 끝없는 인수합병, 식을 줄 모르는 인터넷 열기로 디지털세대와 투자가를 순식간에 매료시켰다. 2000년에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시가총액 기준으로 미국내 1위 기업으로 등극하기도 했다.이 때문에 시스코 경쟁사는 시스코 외에 없을 정도라는 업계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지금은 인력감원 등 구조조정이라는 시련을 겪고 있지만 여전히 실리콘밸리를 주도하고 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성장의 견인차는 CEO 존 체임버스시스코는 84년 학내 컴퓨터를 연결하려는 레너드 보사크와 샌디 러너 부부 등 5명의 스탠포드대 연구원이 창업한 벤처. 이 회사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존 체임버스가 사령탑에 오른 지난 94년부터이다. 당시 12억달러에 불과하던 시스코 매출액은 이후 분기마다 60∼70%씩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연간 성장률로 환산하면 매년 200∼400%씩 매출액이 증가한 것을 의미한다.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명에서 이름을 따온 시스코의 주력 제품은 인터넷 혈맥을 연결하고 디지털정보를 전달하는 라우터와 스위치, 이더넷, 무선랜, 스토리지 등 인터넷 핵심장비. 서버컴퓨터가 인터넷의 두뇌라면 시스코 장비는 데이터만을 전달하는 디지털우체국과 디지털차량을 결합한 존재이다. 디지털정보를 적재적소에 빛의 속도로 송수신한다.최고경영자도 2등석 사용시스코의 눈부신 성공 배경에는 극도의 자기 절제와 철저한 고객지향 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정교한 마케팅 기법도 무시할 수 없다. 한마디로 최고의 기업이지만 일하기 쉽지 않은 까다로운 직장이다.예컨대 최고경영자가 비행기 좌석 중에서 가장 싼 이코노클라스를 타고 다닌다. 시가총액 200억달러가 넘는 세계 최고의 기업의 사령탑임에도 불구하고 사원과 마찬가지로 2등석비행기를 이용한다. 체임버스 회장은 이에 대해 “비용 절감을 통한 수익은 물론 주주들에게 보다 많은 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즉답했다.홍성원 전 시스코코리아 회장도 “전 직장에서 퍼스트클라스(1등석)를 이용하다 시스코에 부임한 후 2등석을 이용하게 됐을 때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주주를 위한 것이다. 시스코 직원은 시스코의 주주이기도 하다. 주주 직원들은 얇은 복지정책보다 기업가치 상승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이라며 시스코의 정책에 동감을 표시했다.시스코는 스톡옵션 중 41%는 간부급이 아닌 일반 평직원에게 제공한다. 시스코 전 직원은 모두 스톡옵션의 혜택을 받고 있다.이밖에 시스코의 스페이스(space)정책도 특이하다. 직급과 상관없이 13명 이상을 거느린 매니저만이 자기만의 방을 운영한다. 이는 팀을 운영하는 매니저만이 별도의 커뮤니케이션공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그렇지 못한 직원들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칸막이 책상에 근무할 수 밖에 없다. 명령계통상 13명으로부터 보고를 받지 않는 관리자에게는 직급에 상관없이 방이 주어지지 않는다.대신 책상에 근무하는 직원은 전망과 채광이 좋은 창가에 자리를 만들어 준다. 반면 매니저들의 방은 전망이 없다. 빌딩 한 가운데 문을 달고 방을 만들어준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매니저의 방은 가운데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같은 정책은 한국도 예외가 없다. 직급이 높은 직원일수록 근무하기 힘든 환경이다. 예컨대 김윤 시스코코리아 사장도 다른 매니저와 동일한 3평이 안되는 조그만 방에서 근무한다.온라인교육·파트너정책, 벤치마크 대상시스코 교육은 온라인에서 이루어진다. 기업윤리 강좌를 포함 마케팅 협상능력, 매니저 관리 능력이 기본적인 교육은 인터넷에서 이루어지고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동영상 강좌는 물론 평가와 과제물 제출도 가능하다. 이동과 업무로 바쁜 인력들의 업무능력 향상과 수익창출을 동시에 잡는 교육전략이다. 이같은 교육시스템을 배우려 수많은 국내 기관, 기업, 심지어 공무원들도 실리콘밸리 본사를 방문한다.한편 정교한 마케팅과 전략적 인수합병도 시스코 성장에 한몫하고 있다.시스코코리아는 직접 라우터나 스위치 장비를 판매하지 않고 채널(일종의 대리점)을 통해 판매한다. 골드파트너 실버파트너라는 마케팅 정책을 구사하며 파트너들이 시스코 제품을 팔도록 하고 있다. 매출, 24시간 지원체제, 자격증 보유 여부 등을 판단해 공급가 할인 등 다양한 마케팅 혜택을 준다. 시스코코리아는 이같은 파트너 정책으로 국내 고가의 네트워크 장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시스코는 경쟁사 인수에도 적극적이다. 시스코는 지난 10년 동안 204억 달러를 들여 55개 기업을 인수했다. 경쟁이 될 법한 기업은 초기에 인수합병해 세력확장도 하고 기술도 확보한다.체임버스 회장은 “기업을 인수합병하면 단숨에 기술과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인터넷은 속도의 경쟁이다. 기술개발을 위해 시간과 자금을 투자하기 보다는 관련업체를 신속하게 인수하는 것도 전략”이라고 설명했다.시스코는 인수합병전략으로 엔지니어 확보와 새로운 시장 개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모두 성공하고 있는 드문 케이스이다.Interview 김윤 사장“고객이 성공해야 시스코 가치도 상승”“시스코가 국내에 진출한지 8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시스코가 있었기에 인터넷의 폭발적인 발전이 가능했다고 자부합니다”김윤 시스코코리아 사장의 집무실은 3평이 채 되지 않는다. 한국HP 전무 시절에는 집무실 문조차 없었다. 오피스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김 대표의 성격도 있지만 항상 뛰어다니는 다국적기업의 세일즈를 실감케 한다.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한 김사장은 “시스코코리아는 내외형 모두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이에 힘입어 시스코 코리아는 지난 해 8월 독립된 지역으로 승격했다.”고 한국지사의 위상을 설명했다.그는 “시스코가 이렇게 급성장 할 수 있었던 것은 고객을 성공시켜야만 시스코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시스코의 경영이념에 따라 회사의 규모를 키우고 지원 프로그램들을 운영해 온 것 때문”이라고 분석했다.그러나 성장 일변도의 시스코에도 암초는 있다.“올해에도 유무선장비 업체들의 경기회복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에 이어 통신사업자들의 설비투자 규모는 감소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포화상태에 진입한 가입자망 투자는 무선랜(근거리통신망) 등 특정분야를 제외하고는 감소할 것”이라며 “앞으로 무선랜과 부상하고 있는 가상사설망(VPN), 음성-데이터통합시스템 시장, 스토리지 및 재난복구시스템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김사장은 한국HP 재직 16년간 뛰어난 세일즈와 협상력으로 10차례 이상 성취상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부산고 출신 IT동문회 회장도 맡고 있는 김사장은 “어떠한 기업이든 훌륭한 제품 뒤에는 훌륭한 마케팅이 뒤따라야 한다. 기술력이 뛰어난 국내 벤처들에 있어서 종종 지적되는 것이 마케팅 및 비즈니스의 취약성”이라며 “반드시 효과적인 비즈니스 전략과 마케팅을 병행해야 한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