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된 여성들의 어릴 적 추억의 중심에는 십중팔구 소꿉장난과 인형놀이가 자리잡고 있다. 파란 눈, 노랑머리의 각종 인형과 손가락만한 크기의 앙증맞은 주방도구 장난감은 10여년 전만 해도 여자 어린이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소중한 물건이었다.일본 완구회사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이 같은 분위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출산율 감소로 장난감을 갖고 놀 어린이들의 절대수가 줄고 있는데다 사회환경의 변화로 어린이들의 탈(脫)장난감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전자오락의 보급, 어린이들 속으로까지 깊숙이 파고든 휴대전화 문화, 그리고 넘쳐나는 패션정보는 어린이들이 인형과 장난감에 쏟았던 관심과 애정을 소리 없이 앗아가고 있다는 게 완구업체들의 말 못할 걱정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완구시장 관계자들은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여자 어린이들의 탈장난감 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는 한편 그에 따른 매출 공백을 메워줄 효자상품으로 어린이용 화장품을 꼽고 있다.토이저러스 등의 완구유통 전문업체와 장난감메이커 다카라 등이 선두주자로 시장개척에 나서고 있는 어린이용 화장품의 특징은 그저 갖고 놀라고만 만들어진 상품이 아니라는 데 있다.소꿉장난의 연장선에서 개발된 것이 아니라 메이크업, 아이섀도 등 성인들의 화장을 흉내내거나 분위기를 즐기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제법 기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상 연령을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 사이의 ‘로 틴’(Low-Teen)으로 높이는 한편 가격부담을 낮춰 이들이 자신의 의지로 상품을 선택하게 한 특징을 갖고 있다.지난 99년 가을부터 일부 점포에 어린이 화장품 코너를 설치했던 토이저러스는 성과가 당초 기대를 크게 웃돌자 지난해부터 아예 전 점포로 코너를 확대했다. 자사의 오리지널 상품판매로도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으며, 성탄절 특수 때는 수천개 준비해 놓았던 어린이 화장품세트가 열흘도 안돼 다 팔려 나가는 재미를 맛봤다.시장 전문가들은 그러나 어린이 화장품 수요에 불을 붙인 최대 주인공이야말로 단연 다카라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장난감 수준의 어린이 화장품을 지난 93년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이 회사는 지난해 9월 연령층을 한 단계 높인 상품을 투입했다.‘스위트 밤비니’라는 브랜드명이 붙은 이 화장품의 가장 큰 특징은 소꿉장난 수준이 아니라는 데 있다. 가격은 개당 300엔(약 3,000원)에 불과하지만 메이크업과 립스틱, 아이섀도 등 각 제품이 성인용 못지않은 품질과 기능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54종이 나와 있는 스위트 밤비니는 지난 3월까지의 반년 동안 목표를 크게 웃도는 55만개가 팔려나가며 효자상품의 자리를 굳혔다.이 회사 마케팅부의 마루야마 후미카즈 주임은 “10대 초반의 로 틴 여자 어린이들에게는 여고생과 다른 나름대로의 독특한 감성이 있다”며 “이를 감안한 것이 성공비결이 됐다”고 밝혔다. 스위트 밤비니는 제품 디자인과 외관에 귀여운 동물, 무지개 등의 그림을 넣어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취향으로 만들었다.어린이 화장품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장난감메이커는 다카라뿐만이 아니다. 다카라의 숙적인 반다이 역시 판로 개척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반다이는 지난 3월부터 로 틴 연령의 어린이들을 겨냥한 ‘헬로키티 주얼드롭’을 신상품으로 내놓고 있다.연약한 피부에 주는 영향을 고려해 수용성 원료를 사용한 것이 큰 특징이지만 어린이들이 특히 좋아하는 헬로키티 캐릭터를 앞세워 친근감을 높이려 한 판매전략도 돋보인다. 다카라는 또 백화점의 어린이옷 매장 등에 파고들면서 상호보완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다카라의 한 관계자는 “장난감 매장보다 어린이옷 매장은 화장품 매출에 4~5배의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며 “화장품을 유망 수익사업으로 집중 육성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