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379호 (2003년 03월 10일)

개인투자자 당당한 ‘주인’으로 나선다

기사입력 2006.09.04 오전 11:54

“개인투자자를 무시한다고요? 요새 누가 그렇게 간 큰 소리를 합니까.”

지난 2월27일 의류업체 오브제의 이사회에서는 대주주를 제외한 소액주주들에게만 20% 배당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 회사 IR담당자 최영복 대리는 “지난해 의류시장 침체와 주식시장 약세 등으로 주가가 공모가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며 “개인투자자의 부담이 커진 것을 감안,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주가가 떨어지면 자사주를 사들이는 등 주주가치를 높이는 데 여간 신경을 쓰는 게 아니다”고 덧붙였다.

KT 역시 최근 주주중심의 경영방침을 내세우면서 “설비투자를 줄이고 보유현금의 50%를 주주에게 돌려주겠다”고 밝혀 투자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이밖에도 소액주주와 대주주에게 차등배당을 실시하는 기업이 속속 늘고 있다.

반대로 소액주주를 챙기지 않았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최근 김종창 기업은행장은 배당을 둘러싸고 ‘말을 바꿨다’는 구설수에 올랐다. 김행장은 그동안 9만여명의 소액주주들에게 올해도 예년 수준 이상의 배당을 하겠다고 거듭 강조해 왔다.

그런데 막상 주총(2월 28일)이 다가오자 “소액주주에게는 지난해(현금 10%)보다 3%포인트 낮은 7%의 현금배당을 할 것이며, 정부를 포함한 대주주에 대해서는 지난해 현금 2%보다 50% 증가한 3% 배당을 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또 SK텔레콤은 최근 기업설명회에서 대규모 투자계획을 밝혔다가 곧바로 주가가 하한가로 주저앉는 ‘쓴맛’을 보기도 했다.

이처럼 주식시장과 기업경영에 있어 개인투자자는 더 이상 실체 없는 존재가 아니다. 게다가 요즘 개인투자자들은 법적인 권리도 열심히 챙긴다. 현행법(상법)에 따르면 단 한주라도 주식이 있으면 신주발행금지, 이사회 의사록 열람 및 등사 등을 청구할 수 있다. 또 지분이 0.01% 이상 있으면 주주대표소송을 할 수 있다. 나아가 1% 이상이면 주주제안권을 행사하고 회계장부를 열람할 권리도 있다.

개인투자자들이 이러한 권리를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시민단체가 바로 ‘참여연대’다. 1996년 조직 내에 ‘경제민주화위원회’라는 이름의 활동기구를 만들고 이를 통해 ‘소액주주의 권익보호’ 운동을 끈질기게 벌여왔다. 이제 참여연대는 명실공히 개인투자자들을 떠받치는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최근 들어 참여연대의 역할과 위상은 새삼스럽게 재조명되고 있다. 재벌기업에 대한 검찰수사가 경제계의 ‘태풍’으로 등장한 와중에, 그 핵 한가운데 참여연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공’은 상당부분 검찰로 넘어간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이 모든 일은 참여연대에서 시작됐다. 끈질기게 여러 경로를 통해서 SK, 한화, 삼성 등의 부당내부거래 문제를 제기하다 통하지 않자 지난해 10월 금융감독원과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개인투자자들, 참여연대 활동서 ‘한 수 배웠다’

전격적인 압수수색에 이어 최태원 (주)SK 회장이 구속되는 등 상황이 급진전되자 참여연대는 2월24일 기자회견에서 검찰의 조사를 보는 자신들의 시각과 입장을 표명했다. 김기식 사무처장은 “검찰이 뒤늦게라도 강력한 조사에 착수한 모습을 보인 것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이를 정권초기 재벌 길들이기 도구로 변질시키거나 현대상선의 대북송금 건에 대한 국면전환용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급진전되는 상황에 참여연대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한다”며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오랫동안 지적해 온 문제에 대한 성과가 갑작스레 나타나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의 얼굴인 김상조 소장(한성대 교수)이 해외출장 중인 것만 봐도 사건이 이렇게 빨리 진행될 줄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성과는 적어도 하루아침에 나타난 것은 아니다. ‘한 번 물면 절대로 놓지 않는’ 운동방식이 이런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그런데 이들이 당당하게, 이처럼 집중적으로 재벌기업의 잘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는 무엇일까. 너무 알려져서 오히려 간과되고 있는 것처럼, 이 기업들이 이 같은 거래를 통해서 ‘소액주주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박근용 팀장은 “민원성 하소연은 물론이고 꽤 신뢰성 있는 제보에 이르기까지, 참여연대의 이름이 알려진 98년 이후부터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주주들의 상담이나 제보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면서 “감독당국에서 해줘야 할 역할까지 시민단체가 떠맡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제 참여연대뿐만 아니라 개인투자자들이 자발적으로 뭉쳐 힘을 발휘하는 일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코스닥기업 다함이텍의 소액주주 8명은 지난 2월11일 대주주와 대표이사 등 4명을 상대로 550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소액주주의 주식을 모아 지분 3.51%를 확보했다. “대주주들이 자회사의 전환사채 150억원을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고 환매해 기업가치를 떨어뜨렸다”는 주장이다.

강원랜드, 하이닉스 등의 소액주주동호회 역시 조직력을 자랑한다. 지난해 11월 강원랜드는 국내 증시 사상 처음으로 소액주주들의 요청으로 이사회를 열기도 했다.

이런 개인투자자들의 움직임에 대해 코스닥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 주주동호회 등이 이익집단으로 뭉쳐서 자신들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반하는 사항이 공시되면 즉시 협박전화를 걸어오는 등 지나친 행동을 한다”면서 부작용을 지적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기간의 혼란은 있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주주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로 증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를 움직이는 사람들

변호사·회계사 등 전문가 집단이 ‘핵’

‘소액주주운동을 중심으로 재벌개혁운동을 벌인다’가 모토인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고작 10여명 남짓. 조직구성도 독특하다. 경제개혁센터 상근간사는 3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과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전문가들이 ‘실행위원’이라는 이름으로 느슨하게 결합돼 있다.

초기 소액주주운동을 주도하면서 참여연대의 ‘얼굴’이 되기도 했던 이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 하지만 96년 ‘경제민주화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발, 2001년 ‘경제개혁센터’로 이름이 바뀌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참여연대 경제 분야를 움직이는 사람들 안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일종의 세대교체가 조금씩 진행 중인 것이다.

96년부터 2000년까지는 장교수가 경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이때 주도적으로 참여한 인물들이 소위 ‘젊은 전문가그룹’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 김준기 연세대 교수, 김진욱 김석연 김주영 변호사가 부위원장을 맡았다. 상근직으로는 이승희 김은영 박근용 간사가 실무를 담당했다. 여기에 회계사, 사법연수원생, 대학생 자원봉사자 등이 함께 일하는 구조다.

김석연 변호사는 97년 제일은행 경영진을 상대로 한보그룹 부실책임을 묻는 집단 주주대표소송을 진행했다. 이찬진 변호사는 97년 말 제일은행의 같은해 3월 주총결의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최영태 회계사도 97~98년에 이들과 함께 활약상이 두드러졌다. 김주영 변호사는 SK텔레콤의 부당내부거래에 대해, 김진욱 변호사는 삼성전자의 CB 발행에 대한 소송을 진행했다.

이들은 2주에 한 번씩 정기모임을 갖고, 그밖에 수시로 전략회의를 하면서 사건별로 팀장을 정해 유연하게 일한다. 99년의 경우에 삼성전자는 김석연, 현대중공업은 고태관, 대우전자는 이찬진, SK텔레콤은 김주영 변호사가 각각 팀장을 나눠 맡았다. 한편 정규 상근간사로는 이승희 간사가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과 활동력으로 무장, 소액주주운동의 간판 격으로 명성을 날렸다.

지금은 이전의 주역들이 여전히 주도적인 역할을 맡고 있으면서도 대외적으로는 한 발 물러난 상태다. 김상조 교수가 소장이 되고, 장하성 교수는 운영위원장이 됐다. 그사이 한국개발연구원(KDI) 정책대학원 김우찬 교수 등이 합류했고, 사법연수원 시절 자원봉사자로 합류했던 김선웅 변호사 등 젊은 세대가 이제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상근간사는 박근용 팀장, 이수정 유범현 간사(왼쪽 사진) 등이다.

활동양상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초기에는 주요 역량이 주주총회에 집중됐다. “장교수가 SK텔레콤과 삼성전자 중 어느 쪽 주총에 갈 건지 알려달라”는 관계자들의 재촉에 “마지막까지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고 대꾸하던 게 98년까지의 모습이었다. 그만큼 장교수의 주총장에서의 활약은 상징적이었다. 그러나 김선웅 변호사는 “주총 위주의 운동이 소모적이라는 내부의 부정적 의견도 적잖았다”면서 “무게중심이 주총보다 정책 입안에 대한 영향력 행사, 소송 등으로 옮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인력충원은 자발적인 참여자와 공채를 통해 선발하는 상근간사들로 이뤄진다. 참여연대 활동이 한창 주목받았던 2000년께는 낮은 임금과 과중한 업무에도 불구, 간사 공채경쟁률이 50대1에 이를 만큼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한동안 인기가 있더니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는 게 박근용 팀장의 설명이다. 김선웅 변호사는 “새로 공급되는 전문인력 풀이 넓지 않은 데 대해 고민이 적잖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돋보기 대기업들의 반응

‘납작 엎드려서 추이 지켜보겠다’

‘납작 엎드려라.’

요즘 참여연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대기업들의 분위기다. 재계 관계자는 “참여연대의 입지가 예년과 다른데다 검찰도 과거와 달리 재계 수사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만큼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귀띔했다. 이미 2월24일 두산그룹이 대주주 일가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무상소각하기로 한 데 이어 이틀 뒤 동부그룹이 아남반도체 인수과정의 의혹해소 차원에서 ‘아남반도체 장내매각 계획’을 내놓는 등 서둘러 ‘몸 낮추기’에 나섰다.

그렇지만 기업 관계자들은 비공개를 전제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는다. 참여연대와 소송 중인 그룹 관계자들은 “당연히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아야 하지만 정확한 검증 없이 함부로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적잖은 것 같다”며 “해당기업이 얼마나 큰 타격을 받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재계는 대놓고 반발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사정 카드’ 못지않게 현정부가 강력하게 추진 중인 증권집단소송제, 상속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등 재벌개혁 정책이 기업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상속ㆍ증여 완전포괄주의 경우 ‘조세법률주의에 위배되는데다 조세권 남용의 문제가 있다’면서 현행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 또 증권집단소송제의 경우 투명경영에 오히려 저해되는 만큼 기존 제도를 보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금융계열사 분리 청구제의 경우 법 적용 타당성과 재산권 침해 등에 문제점이 있다며 제도도입에 반대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권오준 기자 jun@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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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