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379호 (2003년 03월 10일)

“이제는 ‘Yes’ ‘No’ 분명히 하겠다”

기사입력 2006.09.04 오전 11:54

전통적으로, 국내 주식시장에서 기관투자가는 ‘이래저래 힘이 하나도 없는 허수아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간접투자 시장의 규모가 워낙 작아, 주식시장은 외국인이 좌지우지하고 기관은 맥을 못춘다는 의미에서 힘이 없었다.

또 주주로서의 권리를 행사 못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역시 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적어도 두 번째 의미 ‘약체’에서는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가 올해 주총시즌의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고 있다.

투자신탁, 투신운용, 증권투자회사(뮤추얼펀드), 은행신탁, 보험, 증권 등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지난해 9월 증권투자업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사실상 의무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강제했기 때문이다.

개정된 시행령에 따르면 투신 등 기관투자가가 펀드별로 10억원 이상 또는 운용금액의 5% 이상 주식을 보유한 기업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고, 그 결과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주총 5일 전까지 주총 안건에 대한 찬반의사를 증권거래소에 공시하며,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그 사유를 밝혀야 한다.

이와 관련, 현재 가장 첨예하게 대두되고 있는 문제는 3월14일로 예정된 포스코 유상부 회장의 연임건이다. 지난 2월18일 포스코 이사후보추천위원회는 유상부 회장을 이사후보로 추천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포스코 이사회는 유상부 회장의 이사선임안을 포함하는 주총안건을 확정했다. 그러나 포스코의 주식 2.34%를 보유하고 있는 김종창 기업은행장이 유회장 연임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입장을 밝혔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의 <이슈 보고서 designtimesp=23543>에 따르면 포스코의 지분구성은 포항공대 등 유회장 우호지분이 7.16% 이상이고, 정부의 직간접적인 영향력 아래 있는 지분은 14.86%, 외국인 투자지분은 58.37%인 것으로 분석됐다. (2002년 1월31일 현재)

정부는 포스코의 회장직이 폐지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바 있고, 이에 따라 정부가 대주주인 기업은행 및 공적자금이 투입된 한국투자신탁, 대한투자신탁 등이 재선임 반대의사를 비치고 있다.

결국 재선임 여부는 외국인 지분의 선택과, 명시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은 기관투자가들의 의사에 달려 있는 상황이다. 주총에서 사상 유례없는 표대결이 펼쳐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기관, 적극적으로 나서기엔 제약 많아

또한 기관들이 주가하락으로 떨어진 펀드수익률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해당기업들에 고배당 압력을 가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투신과 도이치투신은 대우조선해양의 무배당 정책에 반대입장을 표명했다가 2월27일 주총에서 좌절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열린 하이닉스 주총에서도 한국투신과 삼성투신 등이 21대1 감자안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다.

기관투자가들이 보유주식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향후 기업들은 기관투자가의 동의 없이는 M&A나 영업양도 같은 중요한 일에 대해 일방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경영성과가 나빴을 때는 기관투자가가 경영에 개입하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될 수도 있고, 대주주 지분율이 낮은 기업은 항상 M&A 위협에 노출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의결권 행사가 걸음마 단계인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일이 곧 현실화되리라고 보는 전문가는 적다. 더구나 기관투자가들이 투자자(수익증권, 뮤추얼펀드 등의 가입자)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리라 보기에는 현실적인 제약도 많다. 대한투신운용 전략팀 이준규 차장은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우리가 반드시 의결권을 행사해야 하는 기업의 수는 40여개”라며 “현실적으로 모든 기업의 주총 안건에 대해 자세히 검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차장은 “대개의 경우 주총에 역량을 쏟기보다 평소에 질문지를 보내 대답을 요구하는 일이 더 많다”면서 “해당기업들은 질문지를 받는 것만으로도 간접적인 압력을 느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투신사의 관계자들 역시 대부분 “표대결에서 이긴다는 것보다는 주총 안건에 반대의사를 밝히기만 해도 기업에 압력이 되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정도로 해석했다.

돋보기 기관 의존권 행사 ‘빅 이슈’

‘큰손’ 국민연금, 언제 목소리 내나?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의결권 행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기관 중의 기관, 큰손 중에서도 큰손이다. 2003년 국민연금의 주식투자규모는 4조원이다. 분기별로 1조원, 매달 3,000억원 이상을 집행한다는 계획이 서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의 주식투자잔액은 5조원을 넘어섰다.

앞으로 시가총액 대비 투자비중이 5% 선에 이르게 될 전망이다. 더구나 국민연금은 모든 주식종목에 고르게 투자하기보다 제한된 우량종목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때문에 이들 기업에 대한 주주로서의 영향력은 절대 투자금액보다 훨씬 클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프 참조)

국민연금 기금운용연구센터는 의결권 행사와 관련, 지난해 말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에 연구용역을 줬다. CGCG측은 센터에 이미 연구 보고서를 제출한 상태. 이 보고서는 대략 의결권 행사가 필요한가에 대한 논의와 행사체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외국의 사례 검토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이 머지않아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한 정황이다.

그러나 보고결과가 얼마나, 어떻게 반영될지는 위원회와 국회의결을 거쳐야 하는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구조상 도무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게 용역 수행자들의 평이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의결권 행사에 나설 경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관치’의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기금은 운용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자산운용방식을 결정한다. 그런데 이 운영위원회 위원 가운데 과반수가 정부 부처 장ㆍ차관 및 산하 기관장들이다. 또한 국민연금은 국회와 감사원의 제약을 받고 있다. 영향력이 큰 만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입장이나 방향에 대해 내비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조국준 기금운용본부장은 “의결권 행사에 관해서는 모든 게 확정된 후에만 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본부 김선오 차장 역시 “일단 곧 다가올 올해 주총에서는 10명의 팀장으로 구성된 투자위원회에서 사안별로 결정할 것”이며 “보편적인 의결권 행사의 원칙이나 방법론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한편 국민연금은 지난 2001년 3월 삼성전자 주총에서 참여연대 등 소액주주가 추천한 사외이사를 지지하는 의결권을 행사한 사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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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