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 공군에서 사용한 4.5t짜리 폭탄. 한 구역을 송두리째 날려버릴 위력을 지녔다고 전해짐.’흔히 영화계에서 쓰는 블록버스터(blockbuster)라는 용어는 원래 폭탄을 일컫는 말이다. 블록을 날려버릴 정도의 막강한 힘이 있다는 점을 빗대어 대규모 상업영화를 뜻하는 말이 됐다.할리우드 영화사들은 지난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까지 텔레비전이 급속히 보급되자 크게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들은 대규모 자본 투자와 신속한 회수를 원칙으로 하는 새로운 제작시스템을 앞다퉈 도입했고 이것은 소수의 영화에 집중 투자해 세계 주요도시에 동시 배급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최초의 블록버스터 영화는 75년에 제작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조스 designtimesp=24161>다. 당시 1,200만달러를 투자해 1억달러 이상의 흥행에 성공한 작품으로 북미지역에서는 이것이 블록버스터를 구분짓는 액수로 평가된다. 따라서 엄밀히 1억달러 이상 흥행에 성공한 작품을 말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거대 자본과 물량을 총동원해 상업적인 목적으로 제작된 영화를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우리나라에서 개봉되는 미국영화는 대부분 블록버스터다. 미국영화가 대규모의 물량투자를 앞세워 전세계 영화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그러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세계영화산업 잠식은 최근 국내 상황에 있어서만은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한국영화의 약진 덕분이다.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한국영화의 관객점유율은 47.2%로 나타났다. 같은 시기 미국영화의 점유율보다 3%포인트나 앞선 숫자다. 더욱이 월별 점유율로 보면 지난 7월 점유율이 45.9%로 85년 외화수입이 자유화된 이후 7월 기록으로는 최고치를 나타냈다.따라서 일부에서는 추석시즌의 한국영화 강세 전통을 들어 연말께 한국영화 괸객점유율 50% 돌파라는 ‘꿈의 기록’도 기대해 볼 만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연말께 한국영화 50% 점유율 점치기도2000년대 들어 국내 문화산업은 평균적으로 약 20%씩 성장했다. 이중 영화산업만 따로 떼어내면 99년 이후 연 평균 약 15%씩 커져왔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평균 경제성장률이 약 6%인 점을 감안할 때 경제성장률의 약 2.5배의 속도로 규모가 커진 셈이다.관객수만 놓고 봐도 지난 98년 외화를 포함한 국내 연간관객수가 5,000만명선인 데 비해 지난해 연간관객수는 1억명을 기록해 4년 만에 관객수가 2배로 늘었다.따라서 전문가들은 대체로 2000년 이후를 한국영화가 산업으로써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 시기로 해석한다.실제 이 시기는 한국영화의 제작자본 성격이 바뀌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80년대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영화의 제작자본은 제작사가 전적으로 부담하거나 지방배급사들이 판권구매비용 격으로 투자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을 뿐이었다.이것이 90년대 들어 일부 대기업이 뛰어드는 형태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인터넷, 벤처 열기가 일기 시작한 2000년 이후에는 대기업 자본과 금융자본이 본격적으로 영화에 투입되기 시작한 것이다.인력구조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도 역시 같은 시기다. 80년대 들어 영화수입이 자유화되면서 일반인들의 영화에 대한 관심도 부쩍 높아졌다. 이후 영화공부를 위해 유학길에 오르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들이 대거 학업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국내 영화는 소재나 장르 면에서 다양성을 띠기 시작했다.최근 시나리오 판권 수출이 늘고 있는 것이 이를 입증하는 예다.한국영화의 수출증가율은 99년 43%, 2000년 61%, 2001년 59% 성장한 데 이어 지난해는 34.3% 성장한 1,500만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리메이크 판권 수출의 경우 지난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조폭마누라 designtimesp=24186>가 미라맥스에 95만달러에 팔렸고, <엽기적인 그녀 designtimesp=24187>는 드림웍스에 75만달러에 팔렸다.또 <가문의 영광 designtimesp=24188> 역시 워너브라더스에 의해 다시 만들어진다.결국 2000년대 들어 제작환경과 자본, 인적구성의 영화제작 3요소가 크게 달라지면서 한국영화가 산업화의 일로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또한 카드사들이 경쟁적으로 영화관람 할인서비스를 늘리고 멀티플렉스 극장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등의 부가적인 요인도 영화산업 성장에 한몫을 담당한 것으로 분석된다.지난해 대형작 잇단 참패로 위기 맞아그러나 탄탄대로를 달릴 것으로 보이던 한국영화산업은 지난해 큰 위기를 맞았다.99년 <쉬리 designtimesp=24203> 이후 대박영화가 등장하면서 영화계에는 대박을 노린, 소위 ‘묻지마 투자’가 나타났다.자금이 넘쳐나기 시작하면서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표방하는 대형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하지만 이들 대형작이 잇단 흥행참패를 맛보면서 대표적인 대형 프로젝트인 <성냥팔이소녀의 재림 designtimesp=24206>, <예스터데이 designtimesp=24207>, <아유레디 designtimesp=24208> 이 세 작품을 두고 ‘3대 재앙’이라는 냉소 섞인 말까지 나돌았다.특히 이들 영화의 참패를 통해 투자사들은 국내 영화에 투자할 경우 수익구조 면에서 상당한 위험부담을 짊어지게 된다는 뼈저린 교훈을 얻었다.이는 국내 영화산업 발전의 한계로 작용하는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제작자와 투자사가 위험부담을 동등하게 분담하지 못하고 투자사가 전적으로 떠안는 경우가 많다는 현실적인 한계를 경험한 것이다.제작 및 투자사인 쇼박스의 김우택 대표는 “영화는 수익배분구조가 일반 산업과는 큰 차이가 있다”며 “그래도 최근에는 투자사가 전적으로 불리했던 과거와 달리 제작사도 위험부담을 공유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또한 배급망의 안정화 문제도 함께 제기된 부분이다.콘텐츠가 다양해졌다 하더라도 실제로 저예산 독립영화의 경우 배급ㆍ홍보비용(P&A비용) 면에서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멀티플렉스 극장의 급증에도 불구하고 배급망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장기적인 기획 없이 대박을 노린 대형작들이 시도되는 사례가 생기는 것이다.수익구조ㆍ배급망 개선이 안정화 전제조건결국 최근 3~4년 사이에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한 한국영화산업은 ‘안정화’까지 바라기는 아직은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또 멀티플렉스 극장의 과잉공급 현상이 나타나는 등 빠른 성장세를 보여온 하드웨어의 성장이 오히려 내적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걱정어린 의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해 영화계에서 공연계로 옮아갔던 대규모 자본이 올 들어 공연산업 포화로 다시 영화계로 돌아오고 있는 점이다. 최근 극장가에서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바람난 가족 designtimesp=24227>의 경우 개봉 전 3차에 걸친 인터넷펀드를 공모했는데 3차 공모의 경우 단 3분 만에 10억원의 펀드가 마감되는 기현상까지 보여줬다.더욱이 영화산업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티켓발매나 극장 내 음식점 등의 부대서비스 같은 파생산업이 만들어내는 부가적인 경제효과가 상당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따라서 영화계에서는 모처럼 찾아온 영화산업의 부흥을 장기적인 성장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즉 ‘빛 좋은 개살구’가 되지 않도록 인프라 구축에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수익구조, 배급망을 개선하는 등의 노력으로 투자증대를 유도해야 한다는 평가다. 또한 정책적인 면에서는 최근 한국영화 관객점유율 상승으로 자연스럽게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스크린쿼터제가 지켜진다는 전제하에 한국영화산업의 발전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고정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국내 영화산업의 약진은 관객들이 비슷한 형식으로 쏟아져나오는 할리우드 영화에 식상한 데서 오는 효과도 상당부분 있다”며 “영화가 인기를 끌면 극장산업도 함께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형적인 성장에만 기울여온 지금의 노력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미국영화 점유율을 앞섰다는 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4.5t 규모의 폭탄’을 뜻하는 블록버스터가 국내 영화에도 자연스럽게 적용될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1999년 이후 역대 흥행작(서울관객 기준)1999년 쉬리244만8,339명제작비:31억원제작사:강제규필름2000년 공동경비구역JSA 250만1,533명제작비:45억원제작사:명필름2001년 친구257만9,950명제작비:25억원제작사:씨네라인22002년 가문의 영광160만4,219명제작비:38억원제작사:태원엔터테인먼트2003년 살인의 추억185만1,500명제작비:45억원제작사:싸이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