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직 배가 고프다.” 최근 공격적인 M&A(기업인수 및 합병)로 본격적인 몸집 불리기에 나선 녹십자가 향후에도 기업 인수 의사를 거듭 비쳐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녹십자는 지난 2001년 3월 지주회사로 전환한 뒤 같은해 12월 상아제약(현 녹십자상아)을 320억원을 들여 인수, 본격적인 M&A에 나섰다.이어 다음해인 2002년 5월 DNA칩과 인공심장 등을 개발하는 바이오벤처기업인 바이오메드랩과 12월 산삼과 홍삼의 특정성분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바이오사포젠을 잇달아 인수하며 M&A시장의 거물로 등장했다.올해 들어서는 더욱 공격적이다. 지난 6월 대신생명(현 녹십자생명)을 인수한 데 이어 8월 경남제약마저 사들였다. 그런데도 “아직 배가 고프다”며 매물로 나온 기업들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녹십자 관계자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망한 바이오벤처기업과 제약사를 인수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겠다는 방침은 변함이 없다”며 “포트폴리오에 적합한 기업이 매물로 나오면 뛰어들 것”임을 분명히 했다.이런 녹십자의 공격적인 M&A 시도에 △녹십자의 기업인수가 향후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지 또 △M&A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은 어떻게 확보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재계의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녹십자가 이처럼 공격적인 M&A에 나선 배경과 전략은 뭘까. 일각에서는 “업계에서 2~3위를 달리는 녹십자가 1위 탈환을 노린 것”이라고 해석한다. 또 다른 혹자는 ‘머니게임’으로 혹평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녹십자는 “‘토털 헬스케어 컴퍼니’(Total Health-care Company)라는 기업비전의 실현 과정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토털 헬스케어 컴퍼니’란 무엇인가. 쉽게 설명하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건강관리에 필요한 모든 정보와 다양한 서비스를 적기에 제공하는 것.녹십자가 새롭게 비전을 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다국적 제약사들이 속속 들어오는 상황에서 제약업 하나로는 버틸 수가 없다는 현실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렇지만 덩치가 작은 제약회사가 ‘토털 헬스케어 컴퍼니’를 실현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규모나 기술, 네트워크 등 기반을 갖추지 못한 점을 M&A를 통해 극복하려는 것이다.따라서 M&A의 기본방향은 부족한 점은 보완하고, 없는 분야는 인수한다는 전략이다. 가령 대신생명을 인수했을 때 업계에서 ‘제약사가 무슨 생보사를 인수하느냐’는 비아냥도 들었지만, ‘평생 건강관리’를 위해서는 보험서비스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또 상아제약과 경남제약 인수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각각 시장 1위 품목을 보유한 회사 인수를 통해 덩치를 키우고 향후 바이오투자를 위한 현금도 충분히 확보하겠다는 의도이다. M&A의 지휘자인 조응준 사장은 “변화하는 환경에서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따라서 제약사 인수에 여전히 적극성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비록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최근 영진약품공업 인수제안서를 제출한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제약사 인수는 물론 유망한 바이오 벤처기업에 대한 인수도 당분간 브레이크를 밟지 않을 작정이다. 녹십자 관계자는 “20여개 바이오기업에 지분투자를 해놓고 있으며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외국기업의 인수 또는 전략적 제휴에도 적극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녹십자는 M&A 대상을 국내 기업으로 한정해놓지 않았다. 우수한 외국기업이 있다면 돈을 아끼지 않을 작정이다. 조사장이 1년에 절반 가까이를 해외출장으로 보내는 것도 이런 이유가 한몫 하고 있다.일단 주무대는 미국이다. 지난해 12월 1,500만달러를 투자해 미국 뉴욕에서 설립한 현지법인이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녹십자 관계자는 “미국 현지법인에서 유망 바이오벤처와 제약사 등의 인수를 강력히 추진할 것”이라고 귀띔했다.한편 ‘토털 헬스케어 컴퍼니’의 개념도를 보면 향후 M&A의 밑거름이 그려진다. 녹십자측은 “국내외 민간보험사, 바이오벤처 및 제약사, 의료기회사, 국내외 의료기관(병의원ㆍ약국)과 강력한 네트워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중 보험사, 제약사, 벤처기업 등은 현재 M&A가 진행 중이다. 여기에다 병의원ㆍ약국 등과의 강력한 네트워크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도 향후 M&A 추이에 관심이 모아지는 대목이다.그렇다면 녹십자의 자금동원력은 어느 정도일까. 그간 대신생명 등 5개 회사를 인수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총 895억원이다. 이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모두 자체 자금으로 충당했다”고 밝혔다.실질적으로 녹십자의 자금동원 능력은 업계에서 막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단 2002년 말 현재 현금 및 현금등가물 330여억원을 비롯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1,100여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다 계열사들이 동원할 수 있는 현금까지 합하면 금액은 더욱 많아진다. 연간 평균 100여억원의 순이익도 내고 있다.더불어 외자유치도 중요한 자금 동원 루트다. 가령 지난해 5월 녹십자백신의 지분 80%를 독일 라인바이오텍에 넘기면서 약 1억달러(1,200억원)의 현금을 조달했다. 필요하다면 녹십자백신처럼 전략적 제휴를 통해 외자도 유치하고, 기술도 받아들일 수 있는 파이낸싱 기법을 통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한다는 계획이다.하지만 녹십자가 걸어야 할 길은 아직 멀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녹십자생명, 녹십자상아 등 다소 부실한 인수기업을 정상화시켜야 함은 물론 헬스케어 시장이 태동기에 불과한 국내 사정상 장기레이스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돋보기 최고경영자 3인은오너-전문경영인 ‘찰떡궁합’ 과시녹십자의 최고경영진은 허영섭 회장(62), 허일섭 부회장(49), 조응준 사장(49) 등 삼각편대로 구성됐다.오너인 허회장과 허부회장은 경영의 큰그림을 그리는 등 비전제시에 주력하고 있고, 조사장은 전문경영인으로 현장경영을 총괄하고 있다.3인은 서울대 동문으로 해외유학파다. 특히 허부회장과 조사장은 동갑으로 미국 휴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지난 91년 조사장이 녹십자로 옮겨온 뒤 보조를 맞춰오고 있다.허회장은 허채경 고 한일시멘트 명예회장의 둘째아들로 독일 아헨공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은 테크노 CEO로 통한다. 지난 70년 공무부장으로 입사한 이래 녹십자를 업계 선두권으로 끌어올린 주인공이다. 철두철미하고 합리적인 스타일의 소유자로 원칙을 중시하는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허회장의 막내동생인 허부회장은 한일시멘트공업에서 상무로 재직하다가 91년 녹십자 전무로 자리를 옮겨 97년 대표이사 사장에 이어 지난해 부회장에 올랐다. 조사장은 한화그룹 종합기획실과 삼성그룹 비서실 경영기획팀 부장을 거쳐 91년부터 녹십자에서 일했다. 지난 2000년부터 (주)녹십자, 녹십자상아, 미국 현지법인 대표이사 사장을 맡고 있으며 올해 인수한 녹십자생명의 회장직도 겸임하고 있다. 신규사업 진출과 M&A에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며 허회장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다.이들 3인의 ‘찰떡궁합’이 (주)녹십자와 16개 계열사의 고공비행을 이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