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방지 정부정책으로 ‘희색’… 중국시장에도 진출

공동주택의 층간소음을 방지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4월22일부터 시행된다. 이에 따르면 조용한 아파트 생활을 위해 아래층에서 위층의 충격음을 측정했을 때 50dB(데시벨)을 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건설사들은 앞으로 공동주택을 지을 때 층간소음을 줄이기 위한 설계 및 시공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김유일 유일엔시스 사장(57)은 이러한 정부정책 덕에 요즘 한창 꽃망울을 터뜨린 봄꽃처럼 환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가 24년 동안 소음ㆍ진동방지분야에만 매달려온 결실을 맺을 때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김사장은 소음ㆍ진동방지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김사장은 지난해 말 신제품으로 내놓은 층간소음방지재 ‘네오코잠’(Neo Cojam)이 공동주택의 층간소음방지에 최적의 제품이라며 홍보에 매진하고 있다. 이 제품은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들어 환경에 유해하지 않고 단열 효과까지 있어 일반 방음ㆍ단열재를 쓸 때보다 바닥 두께를 더욱 얇게 시공할 수 있다.“2년 동안 10억원 넘게 들여 개발에 성공했죠.”유일엔시스를 국내 최고의 소음ㆍ진동방지 전문업체로 키운 김사장. 그는 서울에서 양계장을 하는 집에서 태어났지만 6ㆍ25전쟁 중 부친의 납북으로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어머니는 식모살이 등 남의 집일을 하며 남매의 뒷바라지를 하셨어요.”1968년에 5년제였던 경기고등전문학교(서울산업대 전신)를 졸업한 후 롯데제과에 입사하면서 사회 첫발을 내디뎠다. 롯데제과는 일본의 롯데가 67년 한국시장에 진출하면서 설립한 회사로 김사장은 초창기 멤버나 다름없었다. 기획실에서 일을 시작한 김사장은 전공인 기계공학을 살려 공장건설 현장에서 거의 보냈다. “첫 현장은 영등포 공장이었죠. 햇볕이 내리쬐는 현장에서 애송이 기술자로 일했어요.” 이후 회사가 반도호텔을 인수하는 등 사업을 확장하면서 소공동 롯데호텔 신축현장에서 전기ㆍ기계설비 담당자로 일했다. 이때 창업을 결심했다. “당시 호텔 신축을 하면서 소음ㆍ진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국내에는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없었죠. 일본 기술자들이 하는 것을 보고 국산화만 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김사장은 80년 4월 서울 을지로에 10평 남짓한 사무실을 얻어 직원 2명을 두고 창업을 했다. 공장도 없이 카탈로그만 만들어 일감을 찾아다녔다. 그러면서 김사장은 밤을 새워 가며 건설현장에서 곁눈으로 배운 지식으로 설계했다. “6개월 만에 진동방지재 설계도면을 완성했어요. 영등포 일대 공작기계업체를 찾아다니며 시제품을 만들었죠. 계속되는 시행착오로 자금이 바닥나 정말 힘들었어요.” 하지만 김사장의 열정을 하늘이 알았는지 3개월 만에 시제품을 만드는데 성공했고, 우연찮게 과천 정부종합청사 현장에 납품하는 기회를 잡아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리고 영등포에 60평 규모의 공장을 임대해 생산을 시작했다. 과천 정부종합청사 현장에는 연간 1억원 정도의 물량을 납품했다. 김사장은 낮에는 시공현장에서, 밤에는 공장에서 살다시피 하며 공사를 마무리했다. 이후 63빌딩, 힐튼호텔 등에 잇따라 적용되는 등 국내 건설현장에서 진동ㆍ소음방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사세도 확장됐다. 85년 중반 부천에 200평 규모의 공장을 임대해 늘렸고 1년 후에는 김포에 100평 규모의 자체 공장을 마련했다.그러나 성장과정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초창기 홍릉 KAIST에서 공조시스템의 소음 해결 요청을 받고 자신 있게 달려들었다가 고생만 하고 두손 들고 나왔다는 것. 먼지를 뒤집어쓰며 4개월 동안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미국업체가 설계한 대로 놔두고 말았다. 김사장은 “이때 완벽이라는 극한설계는 없다. 다만 최소화를 위한 가능성만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회고했다.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국내 건설경기가 활황세를 탔다. 그러면서 대형건물에 소음ㆍ진동방지 시스템 적용이 급물살을 탔고 물량을 소화하느라 89년 1월 인천 남동공단에 1,000평 규모의 공장으로 확대 이전했다. 공장을 짓고 설비를 증설하는 데 모두 4억여원을 투입했다. 90년 들어 일본기업과 기술제휴하면서 또 한번 도약기회를 잡았다.방진재로 사용하는 코르크와 고무, 스프링 등을 대신할 에어스프링을 이때 개발한 것. 게다가 금호타이어의 협력업체로 지정돼 담양에 1,000평 규모의 제2공장을 짓고 에어스프링을 생산해 납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철도용 방진재를 개발해 철도청에 납품하면서 이 분야의 기술을 선도했어도 대기업이 뛰어든데다 납품조건이 까다로워지면서 포기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김사장의 연구개발은 계속됐다. 95년에는 건축물의 층간소음을 방지하는 층간방음재를 내놓았다. “이 제품을 대우건설에 납품, 아파트 시공에 적용하면서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그래서 12억원을 들여 김해에 1,700평 규모의 공장도 지었죠.”그러나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손실을 입기도 했다. 건설회사들의 부도로 6억여원의 손해를 입었다. 매출이 줄면서 급여를 동결하고, 직원수도 줄였다. 그러던 중 김사장에게 행운이 따랐다. 방진방음재 원료인 천연고무 가격이 50~70% 떨어진 것. “천연고무를 들여오던 인도네시아가 환란을 맞으면서 현지 통화가치가 하락해 천연고무 수입가격이 떨어졌어요. 게다가 납품업체에서도 납품가를 5~10% 올려 주었습니다.”김사장은 외부환경 덕에 1년 만에 회사를 정상적으로 경영할 수 있었고, 오히려 성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후 김사장은 중국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2001년 12만달러를 투자해 퇴비를 생산하는 유일녹색유한공사를 설립했다. 김사장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지만 연 20만달러 상당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특히 지난 2002년 5월에는 김해공장과 남동공장을 정리하고 60억원을 들여 경기도 화성에 부지 8,000평, 건평 2,000평 규모의 최신 생산공장을 갖췄다. 이곳에는 진동시험동과 층간방음시험동을 설치해 각종 기자재를 실험하고 있다. 중소기업으로는 적지 않은 20억원을 투입했을 정도이니 김사장의 방음ㆍ방진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김사장은 올해 180억원의 매출 달성을 자신하고 있다. 김사장은 요즘 한창 개발 중인 상용차용 에어스프링 테스트를 위해 실험실로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031-354-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