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9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는 처음으로 시민 100여명이 모여 ‘국민연금 결사반대’의 구호를 외치며 국민연금 반대 촛불집회를 열었다. 5월 초 국민연금의 문제점을 지적한 ‘국민연금의 8가지 비밀’이라는 글이 인터넷을 통해 일파만파 퍼지면서 한달 만에 연금 폐지 집회로까지 이어진 것이다.시민단체와 네티즌들의 안티(Anti) 국민연금 운동의 파괴력은 예상외로 컸다.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관리공단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허둥댈 정도였다.‘국민연금의 비밀 바로알기’라는 12페이지에 걸친 반박자료까지 내놓는 한편 네티즌들이 제기한 국민연금의 일부 문제점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등 진화에 안간힘을 다했다. 자칫하면 국민연금 납부 거부 등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때문이다.그러나 한번 타오른 불길은 쉽사리 잡히지 않을 태세다. 5월에 이어 6월에도 한국납세자연맹, 국민연금반대운동본부 같은 시민단체와 인터넷 포털사이트 카페에는 국민연금에 대한 비난의 글이 빗발치고 있다. 조직적인 움직임도 더욱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다.이런 가운데 양측의 치고받는 공방전도 뜨겁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은 안티 국민연금의 주장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조목조목 따지고 나섰다. 반면 안티 세력은 ‘오해’가 아닌 ‘진실’이라며 공단 주장을 일축하며 여론을 이끌고 있다. 과연 무엇이 ‘오해’이고 ‘진실’일까.부인이 죽으면 연금은?네티즌과 정부 사이에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맞벌이 부부의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다. 이럴 경우 배우자가 연금을 이어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 네티즌들의 주장이다. 이는 안티 국민연금운동에 불을 댕긴 한 네티즌의 ‘국민연금의 8가지 비밀’ 중 첫 번째로 다룬 문제이기도 하다. 네티즌들은 ‘배우자가 낸 연금은 국민연금에서 꿀~꺽 합니다. 원금도 못 받죠. 분명 회사 다니면서 국민연금을 같이 냈는데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국민연금의 교묘한 수급권 제한’이라고 거세게 몰아붙인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오해가 아닌 사실이다. 함께 국민연금을 수령하던 배우자, 예를 들어 남편이 사망했을 경우 부인이 유족연금을 받을 수가 없다.국민연금은 크게 노령연금, 유족연금, 장애연금으로 나뉜다. 노령연금을 동시에 받던 부부 중의 한쪽이 먼저 사망했을 때 유족연금은 나오지만 자신의 노령연금과 배우자의 유족연금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공단은 국민연금이 공공복지의 성격을 지닌 사회보험이라는 점을 들어 차분하게 설명한다. ‘사회보험의 일반적 원칙은 한 사람에게 연금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해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누리는 데 있다’며 ‘두 가지 연금을 동시에 받는다면 당사자는 좋겠지만 다른 가입자들이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두 번째로 뜨거운 쟁점은 유족연금의 제한규정에 관한 것이다. 가령 남편이 사망했을 경우 부인이 유족연금을 받는다. 하지만 혹시 부인이 장사를 하거나 직장을 다니면 받지 못한다. ‘결국 연금을 받으려면 부인이 아무런 소득이 없어야 한다’는 이상한 일이 생긴다는 것이 안티 네티즌들의 주장이다.이것은 오해다. 남편이 사망하면 부인은 조건 없이 5년간 유족연금을 받는다. 이후 소득이 있으면 50세까지 지급이 정지되고, 소득이 있더라도 18세 미만의 자녀가 있으면 연금을 계속 받는다는 것. 50세가 넘으면 지급을 재개한다. 이러한 수급조건은 남편이 사망하더라도 자녀가 없을 경우 60세가 넘어야 유족연금을 지급하는 다른 나라에 비해 관대하다는 것이 공단의 주장이다.납부액에 관한 논쟁도 뜨겁다. 연봉 2,000만원인 A씨와 6,000만원인 B씨의 연금 납부액은 거의 두 배 차이가 난다. 그러나 6,000만원과 10억원인 사람의 납부액은 똑같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불합리하다는 얘기다.실제로 현 연금제도는 월 360만원의 상한소득세를 두고 있다. 고소득자에 대한 연금 혜택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라고 공단은 주장한다. 일례로 월 소득 5,000만원인 사람의 노령연금액이 현행 제도 아래서는 75만원이지만, 상한소득세를 없애면 771만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이럴 경우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일반 금융상품보다 높기 때문에 고소득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가게 된다는 설명이다. 다만 월 상한소득액은 420만원으로 상향조정할 예정이다.국민연금이 채무도 아닌데 차압을 하는 것은 헌법위반이라는 지적도 서민들의 공분을 사는 대목이다.국민연금에서 돈을 빌린 것도 아닌데, 차압딱지를 붙이고 주거래은행 통장을 압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 공단의 주장은 다르다. 납부능력이 있는데도 고의로 회피하는 장기, 고액미납자 등에 한해 강제징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4년 3월 현재 보험료를 체납한 지역가입자는 18만3,000명으로 전체의 1.8%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공단 관계자의 설명이다.불신해소가 관건수익률을 지나치게 과장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특히 공단이 연금은 ‘노(老)테크’의 일환이라고 홍보해 온 것은 문제라는 주장. 국민연금이 가입이 의무화돼 있는 사회보장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금융상품처럼 재테크를 강조하는 홍보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정부가 지금껏 국민연금이 민영보험보다 몇 배 더 유리한 투자수단이라고 선전했지만 어차피 보험료율을 높이거나 연금지급액을 낮추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는 과정에서 국민들이 이를 납득할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다.그러나 공단은 향후 이득을 보는 정도는 다소 감소하겠지만 여전히 유리한 노테크 수단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보험료율을 올리더라도 2010년 이후부터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조정하기 때문에 가입자의 부담이 급격히 느는 일은 없다는 설명이다.여기다가 사보험은 일차적인 목적이 이윤을 남기는 것으로 국민연금에 비해 혜택이 적다는 것. 또 사보험은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한 관리운영비가 많이 들어가나 국민연금은 그렇지 않을뿐더러 국가가 법으로 지급을 약속했기 때문에 100% 안전하다는 설명이다.20~30년 후에는 화폐 가치가 떨어져 연금이 생활에 별 도움이 안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분명한 오해다. 연금액을 최초로 결정할 때는 전체 가입자의 소득상승률로 실질가치를 유지하고 연금을 받기 시작한 이후로는 물가상승률에 따라 인상 지급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년 후의 예상연금액이 매월 60만원이라고 하면 실제 연금을 받을 때는 전체 가입자의 소득이 상승한 만큼을 반영해 계산하기 때문에 예상연금액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받게 되는 것이다.이밖에 후세대에게 지나치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만만찮다. 이는 공단도 인정하는 점이다. 소득대체율을 낮추고 연금 수급 연령을 2013년부터 2033년까지 단계적으로 상향조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보험의 성격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이해를 구한다.오해는 풀리기 마련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불신의 뿌리가 워낙 깊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설명해도 믿지 못한다면 어쩔 것인가. 따라서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정부와 공단의 선결과제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