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서는 SK의 변화를 ‘재벌실험’으로 표현한다. 지난 1년 사이 강도 높은 개혁을 잇달아 내놓고 있는데다 오너인 최태원 SK(주) 회장이 맨앞에 서서 직접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임직원에게 뿐만 아니라 외부강연에서도 ‘포스트 재벌’에 대해 역설한다.또한 대외활동에도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경제사절단 자격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수행해 러시아, 베트남을 다녀온 데 이어 10월14일에는 SK그룹 총수자격으로 전경련 회의에 첫 참석하기도 했다.2003년 9월 이전1998년 회장 취임식에서 최회장은 이제는 파트너십 경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또 2002년 5월 서울대 강연에서는 “회사의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기구는 이사회로 이사회가 회사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하지만 최회장의 이런 의지는 꽃을 피우지 못했다. 2003년 2월 일명 ‘SK사태’가 터지면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듯했다. 분식회계에 대한 국민들의 질타는 거셌고, 최회장은 이유야 어찌됐든 최고경영자로서 구속이라는 불명예를 감수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SK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까지 터져 나왔다.하지만 반세기 동안 한국경제의 주춧돌 역할을 해 온 SK는 그대로 물러나지 않았다. 2003년 6월 이사회를 선진적으로 대폭 개편하고 계열사들의 독립, 투명경영을 뼈대로 한 ‘기업구조 개혁방안’을 전격 발표했다. 재계에서는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였고, 제대로 정착될 경우 재벌 시스템을 바꾸는 중요한 고비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특히 SK는 재벌식 경영의 전형으로 눈총을 받아온 구조조정본부를 전격 해체했다. 대신 그 순기능만을 모아 지주회사 격인 SK(주)의 이사회 아래 투자회사 관리실을 신설했다. 아울러 그룹의 개념을 브랜드와 기업문화를 공유하는 독립기관 사이의 ‘네트워크’로 규정하고, 자체적인 경쟁력을 갖지 못하는 계열사들은 시장원리에 따라 정리한다는 원칙도 함께 내놓았다.2003년 9월~2004년 3월최고경영자로 일선에 복귀한 최회장은 ‘기업구조 개혁방안’의 전도사를 자처하며 이를 전파하는 데 적극 나섰다. 특히 그는 임원들에게 보낸 e메일을 통해 “지배구조, 사업구조, 재무구조 등 3대 구조개선사업에 전념하겠다”고 다시 한 번 개혁의 의지를 다졌다. 특히 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변화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2004년 들어 최회장의 개혁 마인드는 더욱 확고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는 임직원들과의 만남에서 주주와 이사회 안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총수나 오너의 말이 그룹의 명령이 되는 시대는 지났고, 좋은 이사회 구성에 최선을 다하겠는 의지도 드러냈다.실제로 최회장의 말처럼 SK(주)는 2월 말 사외이사 비중을 크게 높이는 등 국내 최고 수준의 지배구조를 전격 도입했다. 2월22일 이사회를 통해 ‘사외이사 비중 70% 확대, 신임이사 후보선정, 투명경영위원회 신설을 위한 정관변경’ 등을 의결했다. 여기서 사외이사 비중 70%는 당초 계획보다 2년 앞당긴 것으로 재계로부터 의미가 적잖다는 평가를 받았다.아울러 2대 주주인 소버린자산운용이 이사후보로 추천한 남대우씨를 사외이사로 추천, 눈길을 끌었다. 당시 이사회에서 최회장은 “이번 이사회는 지배구조 개선을 직접 실행하는 시금석을 마련하는 자리였다”며 “향후 지배구조 개선계획을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강조했다.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을 실천하겠다는 SK(주)의 의지는 3월 말 투명경영위원회 등 4개의 전문위원회를 신설하면서 가속도를 냈다. 주변에서 반신반의하던 사람들도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자 확신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특히 명목상의 이사회가 아니라 일하는 이사회(Working Board Of Directors)를 위한 구체적인 틀을 갖췄다는 점에서 재계에 미치는 파장은 컸다. 이와 함께 이사회 운영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한층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사실 역시 과소평가해서는 안될 것으로 지적된다.2004년 4월 이후SK(주)의 투명하고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을 통해 지배구조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SK그룹은 이후 눈을 경영이념을 새롭게 가다듬는 쪽으로 돌렸다. 지난 4월 그룹 창립 51주년 기념식을 기점으로 ‘모든 이해관계자, 즉 사회전체의 행복 극대화’에 초점을 맞췄다. 최회장을 중심으로 이윤극대화 대신에 기업의 중요한 이해관계자의 가치추구라는 새로운 이념으로 전환하자는 얘기도 나왔다.이유는 간단하다. 이해관계자의 행복 극대화가 기업경영 성공의 열쇠가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SK를 넘어 전체 사회구성원에 대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회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되는 대목이다,실제로 SK는 이후 그룹 차원에서 사회봉사에 적극 나섰다. 전임직원이 참여하는 자원봉사그룹을 만들자는 캠페인이 대대적으로 전개됐고, 최회장과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했다. 최회장 역시 사랑의 집짓기 행사에 참여하는 등 전에 없이 봉사활동 현장을 자주 찾았다.SK는 5월 들어 윤리경영에도 새롭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새로운 경영이념을 내놓은 데 이은 또 하나의 키워드로 윤리경영을 들고 나온 것이다. 특히 지주회사 격인 SK(주)에 사장 직속으로 윤리경영실을 설치하고 실장으로 사법시험 24회 출신의 김준호 전 부장검사를 영입했다.윤리경영실을 신설한 가장 큰 이유는 지배구조 개선의 가속화를 꾀한다는 차원에서다. 이사회 산하의 투명경영위원회와 감사위원회 업무를 지원하며 이사회의 경영활동을 보좌한다. 또한 전사적 윤리규범 시스템의 구축 및 이행점검과 내부감사, 투자관계사에 대한 감사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최근 추석을 앞두고 SK그룹은 윤리경영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전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추석을 맞이하여 추석선물 안 주고 안 받기 운동을 전개, 협력업체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부득이한 상황일 경우 바로 회사에 알릴 수 있도록 제도화한 점도 눈에 띈다.특히 SK텔레콤은 거래처 3,000여곳에 김신배 대표이사 명의로 ‘SK의 윤리경영에 협조해 달라’는 협조서신을 보냈다. 또 임직원들에게는 사내망을 통해 ‘윤리경영은 임직원의 비리방지 차원이 아니라 회사의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라는 점을 강조했다.또한 윤리경영 홈페이지를 만들어 거래처와 임직원 모두에게 윤리경영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윤리상담센터 운영으로 유형별 안내와 상담을 통해 거래처와의 진정한 파트너십을 이어갈 수 있게 하고 있다.SK그룹은 최근 들어 국가의 성장엔진 개발에 적극 동참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과 해외자원개발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최회장 역시 노무현 대통령과의 오찬회동에서 “에너지 안보를 위해 자원개발에 적극 나서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최회장은 뉴SK 출범 관련 CEO세미나(10월18~20일) 등을 통해 그룹경영의 원칙을 다시 한 번 강조할 예정이다. 향후 SK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고 또 어떤 개혁방안을 들고 나올지 주목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