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474호 (2005년 01월 03일)

“올바른 정책, 기업가정신이 기적 일군 겁니다”

기사입력 2006.09.04 오후 12:01

대담 = 양승득 편집장

“과거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은 강력한 리더십과 올바른 정책, 국민적 합의가 바탕이 됐다고 봅니다. 여기에 뛰어난 기업가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겠죠.”

김만제 전 부총리는 오늘날 한국경제의 성장 원동력으로 이 같은 요소들을 주저 없이 꼽았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60년대 초 장면 정권이 들어섰을 때 슬로건이 ‘못 살겠다 갈아보자’였습니다. 5ㆍ16군사혁명이 성공한 것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대한 국민적인 동의가 어느 정도는 있었다고 봅니다. 결국 어떻게든 잘살아보자는 의지가 충만했던 거죠.”

이 같은 분위기에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기업인들을 만나 경제를 어떻게 일으킬지를 의논한 결과, 수출을 진작시켜 국내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소득을 높이는 일본식 모델을 따르자는 결론을 얻었다는 것이다.

김 전 부총리는 최근의 경제위기와 관련해서는 단기적인 요인보다 구조적인 원인이 더 크다고 진단과 함께 정부와 국민이 인내심을 갖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는 처방을 내렸다.

“선진국들도 기술발전에 따라 일부 산업은 쇠퇴하고 새로운 산업이 그 뒤를 있는 구조변화의 과정을 빠짐없이 거쳤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중국의 급부상과 급격한 세계화의 진전만 없었더라면 좀더 시간을 갖고 이에 대응할 수 있었을 텐데 ‘차이나 쇼크’ 때문에 산업 양극화와 내수경기 침체 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가 재정적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총수요를 늘림으로써 전통산업의 붕괴에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리더십을 언급했는데요.

1960~70년대에는 경제개발을 위해 획기적인 정책이 많았습니다. 이런 정책을 대통령이 앞장서 지원하고 기업이 적극 수용한 것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KDI(한국개발연구원)에 있을 때 박 전 대통령을 만나면 “저축률이 도대체 무슨 뜻이야?” 하는 식의 질문을 많이 던지곤 했지요. “다 아시면서 왜 물으십니까?”라고 답하면 “내가 무슨 경제를 알겠어? 눈치로 전문가들이 하자니까 하는 거지. 내가 경제공부를 했나, 알 턱이 없잖아”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만큼 자신을 낮추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안목과 자세를 갖추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기업인들의 역할은 어떻게 평가합니까.

이병철, 정주영, 박태준 등 뛰어난 기업가들이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 분들이 기반을 닦은 덕에 오늘날 전자, 철강, 조선, 자동차산업으로 우리가 먹고살지 않습니까? 요즘 기업가에 대한 평가가 별로 높지 않지만 기업가와 기업가정신, 그들의 능력을 인정하는 풍토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무나 잡아서 특혜를 준다고 오늘날의 전자, 자동차산업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기억에 남는 경제개발 정책이 있다면.

주식회사 일본은 정부와 은행재벌이 3위 일체가 됐듯이 사실 우리도 비슷한 모형을 따랐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은행 민영화를 취소하고 은행을 무기 삼아 기업에 금융적인 뒷받침을 해줌으로써 정부와 기업간에 파트너 역할이 형성돼 주식회사 한국을 만든 것입니다.

당시의 가장 성공적인 정책은 60년대 말의 고금리 정책이 아닐까 합니다. 은행 저축을 늘려서 투자재원을 마련한다는 목적으로 기업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연 35%에 이르는 엄청난 고금리 정책을 썼지요. 기업 형편을 감안해 대출금리는 25%로 낮췄기 때문에 역마진이 발생하는 상황이라 박 전 대통령 자신도 상당히 주저했지만 결국 이를 통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던 일이라 외국에서도 무척 놀랐던 정책이지요.

현재의 경제상황을 어떻게 진단합니까.

2003년 여름 대만에 갔더니 우리하고 상황이 비슷하더군요. 대만도 반도체, 컴퓨터 등 IT업종 중심의 수출은 호조세인 반면에 완구, 자전거 등 전통산업이 완전히 붕괴되는 바람에 산업의 양극화와 내수침체가 심각했습니다. 이는 모두 중국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전자, 자동차, 조선, IT 등이 수출을 주도하고, 나머지 산업은 경쟁력이 없는 우리도 같은 처지인 셈이죠. 시간을 갖고서 경쟁력 없는 산업은 도태시키고, 새로운 기업을 일으켜야 하며, 혁신을 통해서 주력산업의 부가가치를 올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천수이벤 대만 총통은 대만 전체를 R&D 기지화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데 우리도 비슷하게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구조적인 요인 이외에 다른 요인이 있다면.

내수를 진작시키지 못한 이유는 여러가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이 가계부채입니다. 우리 정부는 IMF 외환위기 이후 미국 권고에 따라 금융혁신을 단행하고 은행이 선진국형인 소비자금융을 하도록 유도했죠. 덕분에 가계대출이 지난해 무려 500조원에 달했습니다. 가계 형편을 살펴보면 부동산 억제정책으로 집값이 떨어져 자산가치는 줄고 부채는 늘었습니다. 결국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뒤늦게 가하면서 악순환이 벌어진 것입니다. 과거 경제불황이 기업불황이었던 데 비해 사상 최초로 가계불황이 닥친 것입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기를 했다는 겁니까.

처음부터 출발이 잘못됐죠. IMF 위기 이후 수요부족으로 아파트 건설이 연 40만호에서 20만호 수준까지 떨어져 공급부족 현상이 나타났죠. 여기에 은행이 주택금융을 제공하면서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었죠. 그냥 내버려뒀으면 시장기능에 의해 저절로 수그러들었을 텐데 정부가 타이밍을 놓친 정책으로 상황을 악화시킨 겁니다. 선진국에서는 거의 사라진 구시대적 제도인 보유세를 들고 나온 것도 시장의 혼란만 가중시켰을 뿐입니다.

현 정부에는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현 정부에 포진해 있는 이른바 노무현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은 기업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으며 기업을 개혁의 대상으로만 봅니다. 이들에게는 기본적으로 경제성장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1인당 국민소득이 1만3,000 달러 수준이면 된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죠. 경제정의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장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경제에 관해서 단편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 막연해서 무엇을 믿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다만 뉴딜정책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찬성하지 않지만 재정적자를 통해 수요를 진작하겠다는 방향은 옳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합니까.

경제성장률을 5% 이상 유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장률이 3% 이하면 일자리 창출 효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기업이 투자를 해서 일자리를 늘리도록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금리를 인하해도 기업이 돈을 빌려 쓰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져 있기 때문에 금융정책은 무기력해졌습니다. 연금을 빌려서 뉴딜을 하겠다는 것도 연금부실화는 차후 문제이기 때문에 일단 위기만 모면하자는 속임수입니다.

정부가 상당기간 적자재정을 감수하면서 전통산업이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대통령에게 조언을 한다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사실 국민의 고통을 이해하고 이에 동참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무슨 요술방망이를 든 것도 아니고 문제를 솔직히 털어놓고 국민의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첨단산업을 확대하고 전통산업은 정리해야겠다. 실업자가 생기겠지만 정부지출을 늘려서라도 해결할 테니 인내를 가져달라’ 이런 식의 단순한 논리를 세워야 합니다.

기술혁신, 2만달러시대 운운하면서 당장 경제가 크게 나아질 수 있는 것처럼 말만 요란해서는 안되죠. 국민들에게 구조조정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리고, 현재 우리의 경쟁력에 대해서 정확한 평가를 내려야 합니다.

대기업에 대한 개혁논의는 어떻게 보십니까.

참 어려운 문제죠. 기본적으로 유교문화의 전통이 강한 국가에서는 민주주의나 자본주의에 상충하는 요소가 많다고 봅니다. 우리 문화에는 가부장적 권위와 혈연ㆍ지연을 따지는 족벌주의 전통이 강합니다. 자본주의에 따른 기업공개라는 것 자체가 이런 전통과는 어울리지 않죠. 재벌에 대해서도 이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지배구조를 바꾸고 경영투명성을 높이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개혁에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으면 합니다.

약력: 1934년 경북 선산 출생. 53년 경북고 졸업. 58년 미 덴버대 경제학과 졸업. 59년 미주리주립대 경제학 석사. 64년 미주리주립대 경제학 박사. 70년 서강대 부교수. 71년 한국개발연구원 초대원장. 75년 금통위 위원. 81년 국토경제연구원 원장. 82년 서강대 교수. 82년 한미은행 초대은행장. 83년 금통위 위원장. 83년 재무부 장관. 86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91년 삼성생명보험 회장. 94년 포항제철 회장. 95년 전경련 부회장. 97년 고려대 석좌교수. 2000년 한나라당 국회의원. 2004년 IBC포럼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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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