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474호 (2005년 01월 03일)

60년대 개발주역, 건설업 ‘큰형님’

기사입력 2006.09.04 오후 12:01

현대건설은 한국경제 부흥을 주도한 현대그룹이 한국경제 전면에 등장하게 된 토대다. 이는 경제발전 기여자와 기업을 묻는 이번 <한경비즈니스>의 설문조사에서도 잘 반영돼 있다. 현대건설은 광복 후 경제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업체를 묻는 질문에 삼성전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점수를 얻었다. 특히 현대건설의 이 같은 과거를 반영하듯 50대 이상 응답자에게서 많은 표를 얻은 게 특징이다.

현대건설은 광복 직후인 1947년 설립된 현대토건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46년에 설립된 현대자동차공업사와 현대토건이 합쳐져 현대건설이 설립된 것은 50년 1월이다. 종업원 25명에 불과한 소규모 영세건설업체였던 현대건설은 미군공사와 월천교, 고령교, 한강인도교 등 전후 재건사업을 수행하며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현대건설이 국내 건설업 순위 1위에 오른 것은 설립 10년 만인 60년으로 당시 현대건설은 자본금 1억원, 종업원 125명의 종합건설회사로 부상했다.

60년대 초 경제개발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한국경제의 목표는 공업화를 통한 자립경제 구축으로 설정됐다. 당시 현대건설은 한국 최대의 다목적 댐인 소양강댐을 비롯한 수력발전소 공사와 춘천댐, 영월화력발전소 등 산업발전 기초가 되는 공사에 참여하면서 근대화의 디딤돌 역할을 해냈다. 여기에 한국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한국건설업계, 특히 현대건설의 급성장에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현대건설은 각종 발전소와 고속도로 등 사회간접시설 건설과 포항제철소 등 국가 기간산업 건설에 앞장섰다.

이렇게 창업ㆍ정착단계를 거친 현대건설이 본격적인 성장기에 들어선 것은 해외수주에 눈을 돌리면서부터다. 65년 태국의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수주로 해외건설 진출의 포문을 연 현대건설은 이후 베트남 준설공사 등을 수행하면서 아시아권에서 세력을 뻗어가기 시작했다. 해외건설사업은 호주와 파푸아뉴기니, 인도네시아를 거쳐 70년대 후반 중동지역으로 이어졌다. 특히 76년 수주한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는 9억3,000만달러 규모였다. 현대건설은 이 공사로 매년 1,000명씩을 신규채용해야 했다. 종합적인 공사 수행능력을 필요로 하는 주베일 산업항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현대건설의 추진력과 기술은 국제적으로 인정 받았다.

80년대 들어서면서 현대건설은 시장다변화와 기술집약적 시공분야로 도약을 꾀했다. 대체에너지원인 원자력 개발에 발맞춰 70~80년대에는 고리, 월성, 영광에 차례로 원자발전소를 건설했다. 또 80년대 우리나라의 주요 이슈 중 하나는 올림픽이다. 80년대 전반기에는 88올림픽고속도로 건설공사와 호남고속도로, 부산지하철 1호선 토목공사 등에 참여해 사회간접시설을 건설하는 데 한몫 했다. 90년대에는 싱가포르 창이공항 매립공사와 파키스탄의 차스마 수력발전소, 방글라데시의 자무나 교량 등의 대형공사를 맡았다. 특히 90년대 후반 현대건설의 가장 중요한 일지 중 하나는 금강산 관광단지개발, 북한의 서해공단개발 등 대북사업을 주도한 점이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으로 대표되는 대북사업은 ‘대북사업=현대건설’이라는 등식마저 가능하게 했다.

최근 국내 건설경기는 급속도로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현대건설은 창립 57주년을 맞은 2004년을 회사의 제2도약기 발판마련의 해로 삼았다. 이를 위해 수익성과 안정성 위주의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그간 추진했던 공공공사의 경우 기술적으로 특화돼 있는 기술경쟁 우위 공사에 지속적으로 영업력을 집중해 왔다. 증시전문가들은 현대건설이 2004년 사업 정상화에 이어 2005년에는 흑자 기조로 돌아설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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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