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내려오는 말 중에 ‘짚신값(草鞋錢)을 갚으라’는 법언이 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짚신을 없앴으면 그만한 깨달음을 내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도 남에게 얻어들은 지식이나 그럴듯한 말포장이 아닌 몸소 겪어 체득한 깨달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공주를 키워주는 회사는 없다>는 27년간 기자생활을 거쳐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주요 언론사의 논설위원에 오른 박성희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의 ‘처세론’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처세술 서적처럼 ‘성공을 약속하는 주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로빈슨 크루소의 ‘생존법’에 가깝다. ‘이 책은 우선 살아남고 그 다음에 성공으로 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목적’인 것이다.좋은 대학 나와서 목에 힘주는 직장을 다닌 사람에게 배울 수 있는 ‘생존법’이 얼마나 되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정말 그럴까. 74개의 조언은 하나같이 분하고 억울하고 눈물나는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들이다. ‘세상에 수시로 무너지고 걷어차이면서도 다시 일어나 걷는 동안 느끼고 깨달은 사실’을 한올 한올 엮어 완성한 ‘짚신’인 것이다.짚신의 올은 정갈하다. 누구나 머리를 끄덕일 만한 이야기다. 예컨대 ‘남의 약점을 들추지 마라’나 ‘습관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는 도움말이 그렇다. 하지만 세상은 예측하지 못한 일과 사건으로 점철된 곳. 비껴가야 할 때도 있고 멈춰서야 할 적도 있다. 저자는 ‘명분이 아닌 현실을, 살아있는 지혜’를 일러주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대략 이런 이야기도 있다. 너무 똑똑한 사람보다는 다소 허술하고 어설픈 사람이 먼저 성공할 수도 있으니 조금은 틈을 보이란 것. 주위사람의 거짓말도 적당히 넘어가고 누구나 때로는 교활하다는 것도 인정하고 적당히 아부도 하라고 권한다. 도저히 ‘체질’에 맞지 않아 따라하지 못하겠다는 독자는 이런 글귀를 되새겨보는 것이 좋다.‘이상에 매달리는 건 젊은이의 특권이다. 그러나 실제 대상에 관한 냉정하고 평범한 상식과 돈과 힘에 관한 감각 없이 이상만 앞세우면 현실이라는 전장에서 패배하고 만다… 내 생각, 내 행동, 내 지침이 아무리 옳아도 상황이 좋지 않으면 목소리를 죽이고 몸을 낮춘 다음 때를 기다리는 게 현명하다.’제목만 보면 이 책은 여성을 위한 조언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성별을 떠나 공주나 왕자로 태어나지 못한, 혼자 힘으로 살아남아 꿈을 펼치고자 하는 모든 ‘후배’들을 위한 책이다. 브레히트는 살아남은 자신을 미워했다지만 어쨌든 살아남고 볼 일인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