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제 488호 (2005년 04월 11일)

경쟁 대신 ‘새 시장 개척’에 승부 걸었죠

기사입력 2006.09.04 오후 12:01

외환위기로 금융권의 기업에 대한 자금회수가 본격화되던 1997년 말 매출 1,870억원에 차입금이 무려 1,186억원에 달하던 기업이 있었다. 차입금 가운데 1년 이내의 단기차입금이 1,035억원이나 된데다 장사마저 잘 안돼 58억원의 경상적자를 기록했으니 당시 상황으로는 도저히 살아날 수 없는 회사였다. 이듬해에는 구조조정 속에서 매출이 1,200억원 가량으로 줄어들고 경상적자가 300억원으로 늘어나는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5년 후 이 회사는 매출 2,000억원에 경상이익 200억원을 기록하며 알짜 기업으로 다시 태어났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건축자재업체인 (주)벽산의 이야기다. 벽산에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 답은 바로 가치혁신에 있다. 최근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각광받고 있는 가치혁신은 ‘성공하려면 경쟁자와 싸워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경쟁이 무의미한 새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한경비즈니스>와 <한국경제신문>은 ‘한경가치혁신 포럼’을 통해 가치혁신 확산에 나서고 있다.

김재우 벽산 사장은 지난 3월29일 한국경제신문사 다산홀에서 열린 제1회 한경가치혁신 포럼을 통해 벽산의 성공스토리를 공개했다.

“세상은 큰 것이 이기던 시절에서 빠른 것이 이기는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그 변화에 맞춰 우리도 남과는 다른 길을 택해야 했죠. 경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더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지난 98년 초 김사장이 취임했을 당시에 벽산은 환율급등에 따른 수입자재 가격상승과 환차손으로 경영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회사 현황을 파악한 김사장이 내린 지시는 판매목표를 낮추고, 경쟁사와 시장점유율 싸움을 중단하라는 것. 당시 거래처 4,000개 가운데 400 곳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거래처가 많으니 관리비용과 인력이 지나치게 비대했죠. 가치사슬이 와해되고 업종구분이 없어지는 추세인 만큼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을 많이 내주는 우량고객 확보라고 생각을 했죠.

‘종합건축자재기업’이라는 회사 비전도 손봐야 했다. “종합이란 말은 사실상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는 것이 김사장의 생각이다. 분석결과 전체 매출의 3분의 1에 달하는 제품군이 수익이 낮거나 회사 역량만 지나치게 소진한다는 것을 알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매출원가율이 100%가 넘는 핑크월, 미장보드, 패션보드사업과 별도 영업인력이 필요한 PPC파이프 사업, 현금흐름에 문제를 일으키는 시공사업 등이 이때 정리됐다.

특히 회사의 최대 수익원이던 석고보드공장을 매각한 일은 회사 안팎에서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삶의 터전을 팔려고 한다는 직원들의 불만도 대단했다. 하지만 프랑스 라파즈에 석고보드공장을 매각해 모두 7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하는 한편 석고보드 판매권은 벽산이 계속 갖기로 함으로써 매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99년부터 흑자로 돌아설 수 있었다.

김사장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2000년부터 가치창조경영(VCMㆍValue Creation Management)이라는 경영이념을 만든다. 이런 이념에 따라 고객을 새롭게 보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주고객인 전문건설회사 외에 건축주와 설계사, 건물 입주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비용감소가 중요한 건설업체와 달리 새로운 고객들은 안전과 품질에 더욱 관심을 갖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욕구에 맞춰 자체 연구소를 만들어 쾌적하고 안전한 주거공간을 만드는 노하우와 서비스를 건축자재에 결합한 패키지를 개발해 설계사무소와 정부, 대기업 같은 거대 건축주를 상대로 영업활동을 전개했다. 결국 설계사무소와 건축주가 시공사에 벽산 자재를 사용하라는 압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벽산은 2008년에는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패키지 상품으로 달성할 계획이다. 하지만 김사장의 가치혁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을 태세다.

“정말 중요한 것은 개개인 스스로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는 ‘혁신을 혁신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나도 참 잘하는 건데’라고 만족하면 혁신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성공이라는 ‘단맛’을 본 것이 끊임없는 혁신에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점을 늘 되새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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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