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488호 (2005년 04월 11일)

‘세계와 함께 호흡해야 희망 있다’

“정말 안타까워요. 지금 한국이 해먹을 수 있는 게 뭡니까. 중국은 따라붙고 일본은 저만치 뛰고 있어요. 지금껏 몇몇 산업만으로 그나마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을 만들었는데요. 앞으로가 문제예요. 과연 유지가 될까요. 결국 한국의 길은 3차산업에 있는 것 같아요. 가령 스위스는 우리처럼 열악한 상황에서 정밀공학 등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습니다. 이런 걸 배워야죠. 대안은 금융입니다. 금융 중에서도 증권업이 해결책이죠. 증권업이 발전해야 미래가 있습니다. 게다가 글로벌 저금리에 옆에는 중국수요까지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사회기반이나 정책 등 모두가 자본시장을 살리는 데 몰두해야죠. 그런데 현실은 못따라가니…. 참 어렵네요.”

그리고 긴 한숨이다. 참 답답했던 모양이다. 배창모 전 한국증권업협회 회장은 만나자마자 속사포처럼 소회를 밝힌다. 인터뷰 취지조차 설명하기 전이다. 사전에 준비한 질문서는 접혀지고, 그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구체적으로 뭐가 어렵냐고 되물었다. 답은 간단했다. “은행 편향적 불공정경쟁이 자본시장을 죽이고 있다”는 얘기다. “누구는 고삐를 풀어주면서, 누구는 족쇄를 채워선 곤란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얘기는 계속된다. “증권사 숫자 갖고 말들이 많은데요. 숫자가 많으면 뭣합니까. 업무영역은 잔뜩 제한시킨 채 위탁수수료만으로 먹고살라고 하면 안되죠. 이래 놓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쌓으라고 주문만 하면 저절로 생긴답니까. 은행처럼 증권사에도 기회를 줘야죠. 외국처럼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증권사가 생기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지금대로라면 증권사는 할 게 없어요. 그렇다고 은행처럼 혈세(공적자금)를 받은 적도 없잖습니까. 스스로 경쟁해서 이만치 커왔다면 자생력은 있다고 봐야죠. 은행이야말로 정부가 봐줘서 컸잖아요. 기회만 주어지면 증권사들 경쟁력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전직 증권사 CEOㆍ협회장답게 증권업계의 고민거리를 일사천리로 쏟아낸다.

그의 비전은 분명하다. ‘금융대국’ 실현을 위해 글로벌 경쟁력을 쌓도록 주문한다. 그는 “증권산업 육성으로 동북아 금융허브를 만드는 게 현실적”이라며 “이 과정에 증권사ㆍ증권맨이 주도권을 쥐는 게 효과적”이라고 전한다. 굳이 은행원을 폄하할 이유는 없지만, 향후에는 경쟁논리에 익숙한 증권사 멤버들이 제격이라고 판단한다. 은행원이 주어진 틀과 규칙을 지키는 데 익숙하다면, 증권맨은 창조적ㆍ도전적인 경쟁무대를 이미 경험했다고 봐서다. 그렇다고 증권맨 자질이 만족스러운가 하면 그건 아니다. 국제경쟁력에서는 적잖이 뒤진다는 생각이다. 배 전 회장은 “아직은 부족하다. 다만 교육만 잘 진행되면 낙관적이다. 그래도 인적자원이 훌륭하지 않으냐”고 전한다. 한발 더 나아가 인재를 잘 활용하는 리더십도 강조한다. 이건 증권업계든 정부든 모두 해당된다.

리더십 부재가 한국인의 훌륭한 DNA를 썩히고 있다고 본다. 가령 ‘유교적 기반 → 강한 정부 → 규제 편향적’ 관행의 연결고리만 끊는다면 승산은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논란이 많은 참여정부의 ‘개혁’에 대해 평가를 부탁했다. 역시 거침없다. “이건 개혁이 아니죠. 실질적 개혁을 해야죠. 과거를 부정하고 기존 질서를 깨는 게 개혁이 아닙니다. 개혁이라는 게 민주주의ㆍ시장경제를 부인하면 안되죠. 지나간 일을 갖고 푸닥거리를 하는 건 미친 짓이에요. 단체로 몰려다니며 흠집을 내봐야 좋을 게 뭐가 있습니까. 개혁이라고 떠들고 다니지만 이건 한풀이죠. 무지를 커버하기 위한 오도에 다름 아니에요. 가장 절실하게 개혁돼야 할 게 이겁니다. 안타까워요. 단군 이래 지금처럼 잘 살아본 적이 있나요. 지금 삶의 질은 최고예요. 무일푼에서 시작해 이만큼 성장한 건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가 과제예요. 훌륭한 리더십이 관건입니다.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걸 더 키워나가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소모적 개혁논쟁에 얽매이는 대신 엄청난 압력으로 한국경제를 옥죄고 있는 앞날을 내다보고 미리 준비하라는 메시지다.

흥분도 가라앉힐 겸 질문을 돌렸다. 배 전 회장은 40여년의 현업시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외환위기 당시를 꼽는다. 가장 아팠던 경험이자 동시에 가장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는 외환위기 후폭풍이 한창이던 1998년 2월에 증권업협회장으로 뽑혔다. 가정주부를 중심으로 거국적인 ‘금 모으기 운동’이 벌어졌을 즈음이다. 말 그대로 비상사태였다. 증시가 무너진 건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취임 얼마 후 그는 미국 월가에 출장을 갔다. 한국경제의 부활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응대는 차가웠다. 하루에 5~6군데를 방문하는 강행군을 거듭했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파김치가 된 체력은 버틸 수 있었지만, 한국경제에 대한 ‘No’라는 답변은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게 현실이었다. 당시 월가와 신용평가사는 한국경제를 ‘치유불가능’으로 보는 게 대세였다. 누구도 그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돌아올 수는 없었다. 그들의 생각을 돌리자면 뭐든 해야 했다. 적극적인 의견개진과 함께 강한 문제제기와 반박을 반복했다. 그가 ‘리먼브라더스’를 방문했을 때 얘기를 들어보자. “부사장을 포함해 6명의 애널리스트와 합석했죠. 동정과 함께 한국은 끝났다는 투의 서두를 꺼내더군요. 구조조정을 해도 희망이 없다는 말까지 나왔어요. 남의 나라여서인지 뭉클한 애국심과 자존심까지 생기더군요. 물러설 데가 없다는 오기도 발동했고요. 그래서 그랬죠. 미국도 어려울 때 IMF(국제통화기금)에서 돈 꾸지 않았느냐. 미국 국민은 그때 뭐했냐. 한국은 지금 주부들까지 나서 금을 모으는 등 최선을 다한다.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저력을 갖춘 국민이다. 또 어떻게 동남아와 비교하느냐. 한국은 세계시장에서 인정한 ‘No.1’ 회사가 수두룩하다. 포스코, 현대차,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등 당신들도 잘 알지 않느냐. 동남아에 이런 회사가 있냐. 우리는 일본과 경쟁 중이다. 단지 일시적 유동성 위기가 발생한 것뿐이다. 이게 과장돼 국가부도니 하는 거다. 금방 회복하고 다시 도약할 것이다.” 그의 얘기를 듣자니 당시의 생생한 현장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한국인 DNA는 위기에 특히 강해’

배 전 회장은 인터뷰 중에 ‘중국’변수를 자주 입에 올렸다. IMF 위기의 불씨가 됐던 과잉설비를 해소할 수 있었던 것도 중국변수 덕이라고 평가한다. 한국의 수출주력품 대부분이 ‘세계의 블랙홀’ 중국행이었다는 사실까지 덧붙인다. 가령 석유화학은 당시 망한다고 했지만, 지금껏 풀가동 중이다. 중국수요가 있었던 결과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그는 “인천-상하이는 2시간 거리다. 웬만한 중국도시보다 더 가깝다. 필요하면 얼마든지 수출입이 가능하다. 특히 제조업은 중국 때문에 전전긍긍하는데 금융은 비교적 자유롭다. 준비만 잘하면 승산이 있다”고 전한다. 중국 호재를 적극 활용하자는 얘기다. 걸림돌보다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게 기본전제다.

자본시장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인물이 있다면 소개해 줄 것을 청했다. 유감스럽게도 답은 ‘글쎄요’로 끝이다. 곰곰이 떠올리나 싶더니 “금융시장에는 그다지 빼어난 인물이 없네요”로 말을 닫는다. 이유가 더 궁금해졌다. “한국 금융산업은 큰 영웅을 배출할 만한 환경이 아니죠. 정부의 우산 아래 있었으니 인물이 있다 해도 클 수가 없었어요. 당장 은행장만 해도 관이 임명했잖아요. 대신 굳이 얘기하면 고 이병철ㆍ정주영 회장이 발군의 인물인 건 분명한 것 같아요.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짝이 잘 맞았었죠.”

배 전 회장은 특히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벤처산업의 대부라고 밝힌다. 울산 변두리 사진 한 장으로 영국에서 차관을 끌어오고 조선소를 만든 건 그의 벤처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존경심의 발로다. 유럽의 거대한 선박가문조차 두손을 들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거듭 ‘뿌듯한 성과’라고 칭찬한다. 그는 “우리는 과거 정명예회장이 그랬던 것처럼 훌륭한 DNA를 갖고 있다”며 “새로운 도전에 겁먹지 말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훈수를 둔다.

구체적인 비전으로 배 전 회장은 “세계와 더불어 숨쉴 것”을 제안했다. 한국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한계까지 덧붙인다. “과거 모델로는 연명할 수 없어요. 제도, 시스템을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야 합니다. 무역의존도를 보면 단적으로 알잖아요. 마인드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은데 더 이상 곤란해요. 경쟁 제한적 요소로 꼽히는 민족주의와 과도한 배타심, 집단이기주의를 버리고 규제도 풀어야 합니다. 장벽을 쳐놓고 잘 살아보자는 건 어불성설이에요. 가령 스크린쿼터는 말이 안되죠. 겁먹지 말고 과감히 맞서는 게 길게 봐서 좋아요. 성장모델도 상품에서 지식으로 바뀌어야 하고요.” 위축된 마인드를 버리는 대신 적극적이고 긍정적 자세로 난관을 극복하자는 주문이다.

배 전 회장은 생각과 달리 열린 마인드의 소유자였다. 그가 ‘글로벌’을 얘기할 때는 유학파 못지않은 지적수준과 당위론을 제시했다. 근황을 얘기하던 중 현업으로의 복귀여부를 묻자 단호하게 ‘No’라고 말한다. 후배들에게 자칫 짐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약력 : 1939년 경북 성주 출생. 58년 용산고 졸업. 64년 서울대 상학과 졸업. 86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65년 한국산업은행 입행. 76년 마산방직 상무. 78년 대유증권 상무. 80년 대유증권 사장. 86년 한국증권전산 비상근이사. 88년 한국증권업협회 비상근부회장ㆍ증권거래소 비상근이사. 94년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 95년 한국증권금융 비상근이사. 98년 한국증권업협회 회장. 2001년 한국증권업협회 고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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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