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488호 (2005년 04월 11일)

소수정예로 세계 정상 ‘줄달음질’

기사입력 2006.09.04 오후 12:01

국내 로봇산업의 연구환경은 그다지 좋지 않다. 연구비는 넉넉지 않고 전문인력도 부족한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이공계 기피 현상이 벌어지면서 우수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나마 대학에서 로봇을 전공한 인력들도 환경이 어려운 로봇 연구보다는 정보통신 등 인기 있는 분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것이 한국공학한림원이 분석한 우리나라 로봇 싱크탱크(Think Tank)의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구소가 많을 턱이 없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비롯한 몇몇 대학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자력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정부출연 연구기관에 로봇연구소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환경이 열악하다고, 연구소 수가 적다고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특히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지능형 로봇 분야의 연구성과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2001년 KAIST의 양현승 교수는 인공지능 로봇 ‘아미’를 내놓았고 지난해에는 같은 대학의 오준호 교수가 일본과 기술격차를 현격히 줄인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를, KIST의 지능로봇연구센터는 세계 최초의 네트워크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 ‘마루’를 선보여 세계 로봇업계를 긴장시켰다. 작지만 강한 대한민국 대표 ‘로봇 산실’을 들여다봤다.

KAIST 인간친화 복지 로봇시스템 연구센터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은 타인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을 24시간 돌볼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 ‘인간친화 복지 로봇시스템 연구센터’(HWRSㆍ소장 변증남)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했다.

연구소는 지능형 주거공간, 수술로봇시스템, 작업보조로봇시스템, 요소 기술 등 모두 4가지의 총괄과제를 갖고 있으며 20여명의 교수들이 참여하고 있다. 지능형 주거공간은 침대, 휠체어, 식탁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간단한 손짓만으로 이들을 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또 모니터링 시스템이 있어 환자의 건강상태를 체크해 이를 병원으로 전송할 수 있다. 휠체어에는 장애물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가 있어 안전한 주행을 약속한다. 센터의 한 연구원은 “해외에도 비슷한 로봇들이 있지만 모든 로봇이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장치는 HWRS만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이라며 “지난 3년간은 시스템 개발에 주력했고 향후 3년간은 상용화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술로봇시스템은 보다 정확하고 부작용이 없는 수술을 위한 장치다. 현재 복강경 수술과 고관절 전치환 수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작업보조로봇시스템은 일터에서 장애인들이 일반인과 동일하게 일할 수 있게 한다.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손의 역할도 한다. 요소기술 과제는 다른 분야의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기반기술을 연구,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KAIST 지능로봇연구센터

‘지능로봇연구센터’(IRRCㆍ소장 김종환)는 2003년 정보통신부의 대학인력 양성사업의 일환으로 설립됐으며 KAIST, 고려대 등 4개 대학 22명의 교수와 100여명의 석ㆍ박사 연구원, 9개 연구소, 27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소장인 김종환 KAIST 교수는 ‘로봇 축구의 창시자’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로봇을 연구하고 있다. 두 발로 걷고 뛰는 휴머노이드 축구 로봇 ‘한사람’을 개발한 것이다. 현재 50cm 크기인 이 로봇을 140cm로 키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올 상반기 중에 발표할 계획이며 이미 ‘큰사람’이라는 애칭을 지어놓았다.

‘한사람’은 축구도 하지만 교육용으로 활용될 수 있다. 로봇에 컴퓨터를 내장해 정보를 입력하고 인터넷과 e메일을 할 수 있다. ‘걸어다니는 컴퓨터’인 셈이다. 김교수는 “한사람은 지금도 상용화가 가능하지만 가격이 문제”라면서 “그러나 킬러 애플리케이션만 나오면 상용화는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교수 연구팀은 석ㆍ박사 과정 11명이 참여하고 있다.

오준호 KAIST 교수팀

지난해 말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를 내놓아 화제를 불러일으킨 팀이다. 더욱이 개발기간이 3년, 연구비는 10억원에 불과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팀’이라 불린다. 박사과정 8명, 석사과정 8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휴보 개발에는 10명이 투입됐다.

오교수팀의 주요 과제는 휴머노이드 로봇 중에서도 기계적인 분야에 맞춰져 있다. 인공지능이나 네트워크 등의 부가적 기능보다는 잘 걷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로봇 본연의 기능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양현승 KAIST 교수팀

양현승 교수팀은 로봇의 기계학적 기능보다 인공지능 연구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2001년 국내최초의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로봇인 ‘아미’를 개발했다. 비록 다리 대신 바퀴로 이동하지만 팔을 이용해 춤을 출 수 있고 사람 얼굴을 알아보고 대화도 할 수 있어 당시로선 놀라운 성과로 여겨졌다.

현재 아미의 겉모습은 최초 개발한 당시와 동일하지만 개선작업을 지속해 지능은 훨씬 높아졌다. 사람 얼굴 인식능력이 5배나 향상돼 200명을 구별해낸다. 인간의 지능에 육박하는 ‘똑똑한 로봇’이 이 팀의 연구 목표다. 현재 박사과정 13명과 석사과정 6명이 팀을 구성하고 있다.

KIST 지능로봇연구센터

KIST의 지능로봇연구센터(센터장 유범재)는 2003년 지능제어연구센터와 휴먼로봇연구센터가 합병돼 탄생했다. 네트워크에 기반한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이 주요 과제로 올 초 선보인 ‘마루’와 ‘아라’가 대표작이다. 이 로봇들은 로봇 외부의 서버와 네트워크로 연결된 새로운 개념의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로봇이 인식한 정보를 서버로 전송하면 서버가 이 정보를 판단해 적합한 명령을 내리고 로봇이 이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로봇 자체에 지능을 심어주는 것보다 비용이 저렴하고 운전시간이 길어지는데다 응용 콘텐츠를 얼마든지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휴보보다는 못하지만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

유범재 센터장은 “통상 새로운 로봇의 기획은 선진국에 비해 5년 정도 늦는데 네트워크 기반 로봇은 미국이나 일본과 비슷한 시기에 기획돼 먼저 개발됐다”며 “휴대전화처럼 로봇이 대중화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재 자연스러운 동작 구현을 위한 작업과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의 알고리듬을 다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석ㆍ박사급 연구원과 위촉연구원을 포함해 모두 60여명의 연구진이 참여하고 있다.

ETRI 지능형로봇연구단

지능형로봇연구단(단장 조용조)은 정보통신부의 네트워크 기반 서비스로봇(URC) 개발 사업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다. URC 개발을 위한 7대 과제 가운데 인프라 시스템 개발, 단말기 요소기술 개발과 표준화 등 핵심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휴대전화 같은 단말기로 언제 어디서나 로봇을 제어해 교육, 가사, 안내 등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로봇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로봇-인간 상호작용 등 7개팀, 77명(계약직 포함)의 연구원으로 구성돼 있다.

연구단의 1차 목표는 오는 10월 실시될 예정인 URC 시범사업의 성공이다. 총 120여세대에 시범적으로 URC를 적용한 후 2년 후에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이미 ‘웨버’라는 서비스 로봇과 단말기를 개발해 테스트를 거치고 있는 중이다. 확대사업에서는 콘텐츠의 양도 대폭 확대될 예정이다.

조영조 단장은 “사용자를 인식하고 자율적으로 주행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등 성능을 향상시킬 계획”이라며 “유비쿼터스 센서 네트워크(USN)와 연결돼 웹에서 데이터를 가져오는 데 무리가 없는 인프라 구축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원자력연구소 원자력로봇랩

원자력연구소의 원자력로봇랩(실장 김승호)은 사람 대신 원자력발전소의 장비를 점검하는 로봇을 개발하는 데 특화된 팀이다. 1988년 설립된 이래 원자로 내부검사 로봇, 원자력발전소 살수탱크 내부 검사로봇 등을 개발했고 최근에는 세계 최초로 중수로 칼란드리아 점검로봇을 선보였다. 이 분야의 신기술 개발이나 적용 면에서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13명의 내부 연구원을 두고 있으며 외부에 20여명의 연구원이 참여하고 있다.

이 연구소의 기술은 다른 분야에도 활용되고 있다. 환자의 재활훈련을 돕는 의료복지로봇인 ‘훈련사 로봇’과 상하수도관을 검사하는 로봇 등이 대표적이다. 이 연구소의 당면과제는 산업자원부의 원자력 중장기 과제인 내방사선 로봇, 지능형 로봇, 화재진압과 인명구조용 특수 로봇 개발 등이다. 2007년까지 개발을 완료할 방침이다.

INTERVIEW 오준호 KAIST 교수팀 탐방

‘휴보의 부모는 공학적 직관과 박력’

장안을 떠들썩하게 한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를 개발한 오준호 KAIST 교수팀은 여전히 분주했다. 연구도 연구려니와 밀려오는 행사 초대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다.

“부족한 작품에 관심이 끊이지 않아 고마울 뿐이죠. 원래는 좀더 주물러 보고 맘에 드는 단계에서 발표할 참이었는데 주위의 권유로 조기에 내놓았죠. 하지만 성에는 안차요. 생각하고 있는 것의 10% 수준에 불과합니다.”

오교수는 개선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 ‘엉터리’라고 하면서도 단기간에 휴보를 개발한 점만은 자랑스러워했다. 로봇 연구를 겨우 ‘취미’ 정도로 여기던 오교수가 로봇을 만든다니 모두가 말렸다. 하지만 오교수팀은 불과 3년 만에 10억원이라는 ‘푼돈’으로 보란 듯이 ‘휴보’를 출산했다. 효율적 연구전략과 ‘박력 있게 뚫고나가는’ 추진력이 비밀의 키워드였다.

“아웃소싱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만한 돈도 마음도 없었고 효율적이라고 생각되지도 않았죠. 자연히 로봇에 대한 광범위한 노하우가 축적됐습니다. 다만 도저히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미련 없이 구입해 썼습니다. 대신 예산은 없어도 최고의 제품을 고집했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적인 아이디어였다. 특히 로봇설계는 전통적인 접근을 전혀 참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공학적인 직관’이 연구팀을 이끌어나갔다.

“논문을 읽지 못하게 했습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해낼 시간도 예산도 없는데 자꾸 돌아가게 하니까요. 학생들이 들고 온 논문을 찢어버린 게 몇 번인지 모릅니다. 로봇 개발에는 천문학적 예산과 인력, 시간이 들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식의 ‘공포심’에서 탈피하는 게 초기의 가장 큰 과제였죠.”

오교수는 학교라는 공간을 사랑한다. 연구를 위해 이보다 좋은 환경은 없다는 설명이다. 젊고 참신한 두뇌들이 매년 유입되기 때문이다. 많은 노하우를 가진 학생들이 졸업을 해 아쉬울 때도 있지만 ‘젊은 피’가 들어오는 효과를 생각하면 감수할 만하다는 것이다. 오교수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사연이 있다. 휴보 개발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초기부터 참여해 온 한 학생이 졸업을 하게 됐다. 수많은 노하우를 갖고 있는 이 학생의 졸업은 개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였다. 잠도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후임 학생이 불과 3개월 만에 이전보다 훨씬 우수한 알고리듬을 발견한 것. 이 일은 연구원들의 동기부여에도 큰 역할을 했다. 저마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연구에 몰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다. 행사를 준비하느라 연구시간을 뺏기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를 위해 벗겨 놓았던 케이스를 씌우고 행사에 맞게 프로그래밍을 해야 하고 행사가 끝난 후에는 수리할 게 꼭 생기기 마련이다.

“정부지원금이 생겨서 6명 정도의 직원을 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학생들의 잡무가 줄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겠죠. 현재 4대인 휴보를 6대로 늘려 아예 행사 전용으로 쓸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나 네트워크 등 휴머노이드 로봇의 다른 분야를 연구하는 팀과 공동연구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 오교수는 단호하게 ‘NO’라고 답했다. 휴보가 아직 완전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분야의 기능을 결합하기 위해 고민할 여력도 시간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간 오히려 개발의 속도만 지연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휴보를 어디에나 내놓을 수 있는 수준으로 올려놓는 게 우선이라는 설명이다.

“당면한 과제는 휴보의 내실을 다지는 거죠. 더 빠르고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무거운 짐도 나를 수 있어야겠죠. 또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로봇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연료전지를 사용한 로봇 같은 거죠. 한창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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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6-09-04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