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로봇산업의 ‘대부’로 불리는 김성권 박사(57)는 로봇산업 육성의 키워드로 ‘상품화’와 ‘산업화’를 꼽았다. 팔리지 않는, 효용가치가 떨어지는 로봇은 무용지물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특히 목적과 목표가 명확하지 않은 채 진행돼 온 수많은 연구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막대한 비용이 투자된 연구결과가 현실에 제대로 적용, 상품화가 됐다면 진즉에 로봇 선진국이 됐을 것이라는 이야기다.하지만 로봇산업에 거는 기대와 희망도 누구보다 크다. 로봇업체들과 산학협동을 시도하고 로봇산업포럼 등 활발한 활동을 펴면서 지능형 로봇 시대의 본격 개막을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는 “2010~2020년 로봇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을 할 때에 대비해야 한다”며 연구개발 및 생산기술 인력의 양성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만간 실버용 로봇을 비롯, 실생활에서 로봇과 생활하는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김박사는 삼성전자에서 로봇 관련 기술개발을 지휘하다 학교로 자리를 옮겨 후진양성과 산학협동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 로봇 발전사를 꿰뚫고 있는 그에게서 로봇산업 활성화의 조건과 과제를 들어봤다.최근 로봇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국내 로봇 기술의 수준을 어떻게 보십니까.로봇 기구 시스템 기술과 지능을 위한 단위 소프트웨어 등 기본기술은 선진국 수준에 뒤질 게 없습니다. 하지만 지능형 로봇을 위한 소프트웨어 인티그레이션 기술은 뒤처진 상태입니다. 특히 가장 중요한 로봇의 상품화 기술인 디자인, 신뢰성(품질), 원가경쟁력을 확보한 하기 위한 실용화 기술이 따라주지 않아 로봇산업이 생각만큼 성큼성큼 성장하지 못하는 겁니다.핵심부품인 센서와 구동전동기, 정밀부품에 대한 기술이 취약하고 수요가 적어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도 걸림돌입니다. 시장이 작다 보니 업체들이 뛰어들지 않기 때문이지요. ‘기술이 좋다’는 평가는 팔리는 물건, 즉 ‘상품’이 있어야 가능한데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는 말입니다. 아직 국내 로봇 기술력에 후한 점수를 주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로봇산업계 현황은 어떻습니까.한마디로 성장을 위해 줄달음치지만 제약이 많아 쉽지 않은 상태입니다. 제조업 로봇의 경우 주요부품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계속되는 로봇가격 하락에 따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요. 그럼 직접 핵심부품을 개발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수요가 적어 사업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기술개발을 하더라도 사업으로 이어지지 않거나 기술개발 자체가 어렵습니다.일반인들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서비스용 로봇은 벤처기업을 중심으로 연구, 교육, 오락, 홈서비스용으로 개발돼 제품으로 판매하고 있지만 이 또한 영세한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수요자의 요구가 현재의 기술 수준보다 월등히 높아 수요와 가격을 동시에 만족하는 제품을 내놓기 어렵기 때문이지요.인력부족도 심각합니다. 로봇전문가는 정부투자 연구기관을 선호하거나 인기가 좋은 정보통신 분야로의 취업을 선호하기 때문에 정작 전문업체에서는 인력난을 겪고 있어요. 향후 로봇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에 대비해 인력확보에 나서야 합니다. 산업계에서 생산을 담당할 기술인력 양성도 꼭 필요하고요.한편에서는 로봇산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대기업들이 늘고 있는데요.로봇기술은 종합기술입니다. 고급인력과 많은 연구개발 투자비가 소요됩니다. 하지만 매출규모가 작아 대기업이 로봇산업에 적극 뛰어들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로봇 종류는 다양하지만 생산수량이 적어 수익성을 담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지요. 일본 최대의 산업용 로봇 제조업체인 화낙도 로봇 관련 매출은 전체 매출의 30% 내외에 불과한 수준입니다.로봇산업은 매출규모에 있어서는 중소기업에 더 어울립니다. 소량 다품종을 요구하는 특성상 중소 전문업체에 적합한 산업이라는 판단입니다. 국가 차원에서 세계를 상대로 경쟁하는 전문성이 뛰어난 중견 중소기업을 키워야 합니다.대기업의 로봇산업 참여는 목적이 분명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능형 자동화 기술을 자체 확보하기 위해 로봇 연구개발에 뛰어든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등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생산효율을 높인다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지요.한편으로는 아시모를 만든 혼다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술의 혼다’를 보여주는 아시모는 측정하기 힘든 세계적 홍보효과를 발휘하고 있어요. 기술력을 집적화한 로봇 아시모를 통해 자동차 등에도 최고의 기술이 적용됐음을 만방에 알립니다. 아시모는 목적이 명확한 프로젝트인 셈이지요.어떤 분야보다 산학연 조화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그동안 로봇연구는 효율성 측면에서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학계와 정부투자 연구기관의 로봇 연구개발이 미래지향적 기술 확보를 목표로 하거나 수요자 중심이었다면 훨씬 활발한 산업화가 이뤄졌을 겁니다. 중복된 연구 프로젝트에 나눠주기 식으로 기금을 지원하거나 연구결과를 평가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지요. 산업화나 고용창출 등으로 이어지지도 못했습니다.정부가 지능형 로봇을 향후 한국을 부양할 10대 성장동력으로 선정해 집중 지원하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입니다. 또 학교와 연구기관, 업체의 유기적 결합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산업기술대학에도 대우조선해양 로봇연구소가 입주해 산학연 협력을 하고 있어요.앞으로는 좀더 효율적 측면에서 산학연 연구개발이 진행돼야 합니다. 로봇의 기초기술 연구개발과 산업화를 별개로 인식, 지원도 달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소기업의 전문성을 높여주고 이를 위해 연구개발에 지원을 집중시키는 결단도 필요하지요.그렇다면 로봇산업을 육성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기술의 첨단화라는 기본적인 환경변화 외에도 경제ㆍ사회적 변화를 들 수 있습니다. 로봇기술은 제조ㆍ장비산업의 기본이 됩니다. 제조업의 경우 갈수록 위상이 약화되고 비중이 줄어들고 있지만 산업간 균형을 위해선 제조업 기반이 튼튼해야 합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선진국에선 제조장비산업과 핵심부품산업 등은 로봇기술을 응용한 제조업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또 장비산업의 경우 갈수록 비중이 높아지지만 국내 사정은 기반이 약한 게 현실입니다. 소재부품산업의 발전도 장비가 받쳐줘야 가능한데 구미 선진국에 비해 경쟁력이 약하지요. 로봇기술이 확보되면 장비산업 기반도 강화됩니다. 전문업체들이 많이 생겨나 이런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경제ㆍ사회적으로는 서비스산업의 성장을 들 수 있습니다. 국방로봇이나 병원ㆍ농업ㆍ3D업종용 로봇은 물론 엔터테인먼트나 홈서비스용 로봇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특히 고령화 사회의 진척에 따라 의료ㆍ복지 서비스용 로봇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조만간 노인의 시중을 들거나 가정부 역할을 하는 실버용 로봇이 등장할 겁니다. 인구 노령화에 대비하는 정책이 강구되면 일상생활에서 가장 빨리 만나게 될 지능형 로봇은 ‘실버용’이 될 것 같습니다.로봇산업을 명실상부한 신성장동력으로 만들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는 무엇일까요.로봇산업은 수많은 응용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육성해야 할 분야입니다. 다양한 기술, 부품들의 종합 시스템이기 때문에 로봇산업의 추진전략 또한 종합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합니다.우선 로봇산업의 ‘목적’과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해야 합니다. 또 로봇과 로봇 핵심부품 전문업체를 적극 육성해야 합니다. 용도와 특성에 따라 지속 지원하는 것은 물론 로봇 전문업체와 로봇 관련 핵심부품업체, 로봇 응용 제조장비업체들을 균형 있게 육성해야 할 것입니다. 수입에 의존하는 로봇 핵심부품도 국산화해야 합니다. 이밖에도 △핵심기술 확보전략 수립 △요소 부품의 전문화 △산학연 협조 체제 구축 △로봇산업 육성 제도 정립 등이 필요합니다.특히 정부에 대해 몇가지 제언이 있습니다. 최소의 자원으로 로봇산업을 효율적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총괄조직이 필요합니다. 정부 산하에 로봇산업 관련 전문가 기구를 설치하는 등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겁니다. 또 정부의 로봇 관련 투자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봅니다. 로봇 전문업체, 요소부품 전문업체, 핵심기술 개발 연구기관을 선정해 투자가 중복되지 않고 산업화가 성공할 수 있도록 집중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약력: 1949년 경남 하동 출생. 72년 동아대 기계공학과 졸업. 74~76년 금성사. 76~84년 국방과학연구소 선임연구위원. 84~88년 미국 미네소타대 대학원 로봇전공(연구원). 88~2001년 삼성전자 자동화연구소장ㆍ생산기술센터장·메카트로닉스센터장(부사장). 2001년 한국산업기술대학 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현), 지식기반기술ㆍ에너지대학원 원장(현). 로봇산업포럼 회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