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란 아름다운 것일까, 슬픈 것일까. 언젠가부터 ‘아버지’라는 이름 속에는 마치 ‘과거’나 ‘추억’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나 보다.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빛바랜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마음 한쪽에 접어뒀던 아린 기억들이 먼저 떠오른다.돌이켜보면 나는 초등학생 시절 ‘포미콘’과 ‘브라보콘’을 마음대로 사 먹지 못하는 현실이 개탄스러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읽고 싶은 책을 못 읽어 한이 맺혔다(놀랍게도 당시에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 같은 책을 들고 있다 선생님께 들키면 부모님을 불러와야 했다). 고교 시절에는 적금을 깜빡 잊어버리고 가져오지 않았다고 담임에게 밀대자루로 엉덩이를 맞으면서 분루를 삼켜야 했다.그리고 이어진 대학 시절은 전두환과 노태우에 대한 분노와 길거리에 매캐하게 흩어진 최루탄 연기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던 순수한 젊음, 그리고 빨간 립스틱과 똥꼬치마를 입고 젊은 피를 유혹하는 막스와 유물론, 그리고 외세 배격이라는 매력적인 구호를 내세운 주체에 반쯤 넋을 빼앗긴 가운데 그것이 말단공직에 계시던 아버지의 난감한 입장과 충돌함으로써 작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의과대학 본과 1학년의 어느 날 나도 알지 못하는 새 정보기관측 사람이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는 세상에 아들 하나만 믿고 사시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 아들이 마이크를 들고 학생들을 선동하고 있다. 만약 이후에도 같은 일이 생기면 무사히 학교를 다닐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인 당신과 군에 있는 외삼촌, 그리고 모 기관에 근무하는 고종사촌까지 다칠 수 있다”고. 당시 아버지는 내게 그 말을 전하시며 많이 미안해하셨고, 나는 그때부터 발육을 멈췄다.그로부터 일주일을 고민하다 거리마다 호헌철폐, 직선쟁취의 구호로 가득하던 그해 내내 하숙집에 들어앉아 김용의 무협지와 고행석의 만화를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듬해 가을 아버지는 지방순시에 나선 전두환과 간접적으로 관련된 어떤 일로 과로사를 하게 됐다(이것이 나의 억지주장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최소한 그렇게 생각했고, 당시 법원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나는 그때부터 그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삼았다. 아버지가 쓰러지신 그날 내가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시간에 아버지는 앰블런스에 실려 대학병원으로 후송되고 있었다. 아들은 병원에서 집으로, 당신은 집에서 병원으로 서로 길이 엇갈리면서 내가 하늘 아래 가장 사랑했던 사람과 또 당신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했던 아들이 서로 눈짓 한 번 나누지 못한 채 영영 엇갈리는 순간을 맞이했다.그로부터 사흘간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아무런 의식 없이 인공호흡기를 달고 가느린 심장박동만 유지하다가 돌아가셨다. 하지만 나는 하필이면 그 순간에 혹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병원 앞 성 토마스 성당에서 아버지의 회생을 간구하는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난생 처음 텅 빈 성당에 꿇어앉아 혼자 기도를 했지만, 내가 다시 중환자실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누워계시던 자리는 비어 있었고, 당신이 몸을 누이던 침상에는 어느새 하얀 시트가 새로 깔려 있었다. 임종을 보지 못한 것이다. 태어나서 23년간을 보살피며 비바람을 막아주던 큰 우산을 그렇게 잃어버렸다.사실 부모에 대한 사랑이야 누구나 같겠지만, 내게 있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그래서 더 각별하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던 순간에 나를 맞아주셨지만, 나는 아버지가 떠나시던 순간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이 가시는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는 마지막 배려였을지도 모른다.나는 그래서 아버지란 이름이 더 간절하고 죄송하다. 비록 힘이 있거나 큰 부자는 아니셨지만….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오늘까지 당신의 아내에게, 그리고 아들에게 일생을 선비로 살아오신 자랑스러운 이름으로 남아 있는 아버지께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유일한 배려는 당신의 아들로서 부끄럽지 않겠다는 약속을 다지는 것만이 전부일지 모른다. 그래서 ‘아버지’라는 이름은 내가 더럽히지 말아야 할 특별한 규범이자 내 아이에게 전해줘야 할 자랑스러운 원형이기도 하다.글/박경철의학박사. 외과전문의 과정을 마친 후 서울ㆍ대전의 종합병원 외과전문의 근무. 현재 안동에서 ‘신세계병원’ 원장으로 재직 중. 동시에 ‘시골의사’란 필명의 증권가 최고의 재야고수로 꼽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