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는 빌딩이나 집을 아름답고 실용적이게 디자인하는 사람. 그렇다면 건축구조기술사는?하나의 건설 프로젝트는 수많은 분야의 엔지니어가 힘을 합쳐 완성된다. 전 과정을 총괄하는 CM(건설관리)에서부터 잡일을 하는 노동인력에 이르기까지 분야와 역할이 모두 다르다. 특히 ‘안전’ 관련 엔지니어링은 건축물의 생명 줄을 쥔 핵심 분야. 대한민국 여성 1호 건축구조기술사인 서현주 건설기술네트워크 소장(45)이 바로 건축물의 안전을 책임지는 ‘건설닥터’다.“건축구조기술사는 건물의 뼈대를 설계하는 사람입니다. 중력, 지진, 바람 등 내외부의 어떤 힘에도 건물이 튼튼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골조를 설계하지요. 건축물의 건강, 즉 안전관리의 열쇠를 쥔 사람들이 건축구조기술사입니다.”건축가가 건축물의 아름다움과 실용성에 초점을 두고 설계에 임한다면, 건축구조기술사는 건축물의 뼈마디와 힘줄 등을 설계해 안전을 유지하도록 한다. 건축가가 성형외과 쪽이라면, 건축구조기술사는 정형외과 쪽인 셈. 분야의 조화를 통해 훌륭한 건축물이 탄생함은 말할 것도 없다.“건축가가 추구하는 건물 형상이 그대로 설립되려면 구조설계가 필수입니다. 군살 없이 균형 잡힌 몸매가 보기 좋고 건강하듯, 건물의 뼈대도 군살 없이 튼튼하고 안전해야 하지요. 구조 엔지니어가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이 많을수록 튼튼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 만들어집니다.”건축구조기술사는 구조기술에 대한 고도의 이해와 실무경험을 갖춰야만 딸 수 있는 자격이다. 건축기사 자격을 취득한 후 관련 분야에서 4년 이상의 경험을 쌓아야 응시자격이 생기고 이후 전공과목 필기시험과 면접을 통과해야 자격이 주어진다. 서소장이 시험을 보던 지난 1992년에는 응시자격이 경력 7년 이상으로 훨씬 더 엄격했다. 보통 10대1이 넘는 경쟁률에, 1년에 1~2명 정도만 뽑을 때도 있을 만큼 어려운 시험이다. 그토록 건축구조기술사의 역할과 책임이 막중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975년부터 배출된 건축구조기술사는 700여명 정도. 이 가운데 여성은 15명뿐이다.건축업의 여러 분야 중에서도 건축구조설계는 터프한 분야로 꼽힌다. 또 복잡한 수학과 세밀한 도면 작업이 필수다. ‘건설은 남성적인 일’이라는 선입관에서 보면, 가녀리고 부드러운 서소장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하지만 그는 여성 최초의 건축구조기술사요, 손꼽히는 건축구조 엔지니어링회사를 이끄는 당찬 CEO다. 서울 동대문 밀리오레(95년), 삼성동 아셈 오피스타워(97년), 여의도 트럼프월드Ⅰ(99년) 등 내로라하는 랜드마크의 구조설계가 그의 손을 거쳤다.“공대에 진학할 때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웃음) 그저 남자들의 영역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여성으로서, 전문가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열정만 가득했었지요. 그 생각이 건축디자이너가 아닌 엔지니어로 가게 만든 것 같아요. 수학을 좋아하고 논리적인 성향이라 구조역학이나 구조설계에 관심이 가기도 했고요.”줄곧 우수한 성적으로 남학생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던 서소장은 대학 3학년 때 전공을 건축구조로 정하고 본격 엔지니어로의 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TV드라마에 자주 나오듯 화려하고 멋져 보이는 건축디자이너에 아쉬움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졸업 후 경쟁력과 스스로의 재능을 생각해 미련 없이 포기했다고. 교수가 돼라는 권유도 많았지만 ‘정말 훌륭한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만 빠져 학창시절을 보냈다.“내가 가진 지식을 적용해서 건물로 세워지는 것이 보고 싶었어요. 또 사용자들로부터 냉정한 평가도 받고 싶었지요. 나의 지식과 판단에 의해 이뤄지는 일, 거기서 오는 성취감이 어떤 것일까 무척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부딪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더군요.”대학원을 마치면서 취직을 준비하던 그는 이때 한국 건축구조설계의 실태를 피부로 느꼈다. 구조설계회사가 많지 않은 것은 물론, 대형 건설사의 건축구조부도 규모가 작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성 엔지니어를 채용하려는 곳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때마침 대우그룹에서 공채를 실시, 어려움 끝에 대우엔지니어링에 여사원 공채 1기로 입사했다. 이후 설계사무소 서울건축으로 전보되면서 본격적으로 건축구조설계 업무를 배웠다.“지식을 응용하고 효과적으로 적용시키는 기술을 닦으면서 점점 전문가가 돼 간다는 기분을 느꼈어요.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좀더 높고, 좀더 크고, 좀더 복잡한 건물의 구조설계를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요. 내가 구조설계한 대로 건물이 지어지고 완공되는 것을 보는 성취감과 자긍심은 대단한 겁니다.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안전불감증 여전…구조기술에 관심 필요‘열심히 하는 것이 곧 배우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 20년이 흐르는 동안 서소장은 건축구조 엔지니어로서 정상의 자리에 섰다. 국내 최초의 여성 건축구조기술사라는 꼬리표는 이 과정에서 성취한 더없이 값진, 어쩌면 당연한 성과였다. 이뿐 아니라 일하는 틈틈이 박사과정을 마쳐 현재는 모교에서 겸임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지난 2002년에는 남편인 김광만 건축시공기술사와 함께 지금의 건설기술네트워크를 설립, 통합 엔지니어링 회사로 도약을 진두지휘하고 있다.서소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 건물은 서울 삼성동 아셈 오피스타워와 여의도 트럼프월드Ⅰ. 워낙 고생한 프로젝트라 기억에 남지만, 그만큼 애착도 크기 때문이다. 그는 “근처를 지날 때마다 뿌듯함을 느낀다”면서 자신감과 긍지를 숨기지 않았다.하지만 건축구조설계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의 낮은 인지도, 안전불감증에는 걱정이 많다. 건물을 새로 짓고자 하는 건축주조차 건축구조기술사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한 까닭이다. 무엇보다 이런 인식이 인명피해를 비롯한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로 나타날 수 있어 문제라는 이야기다.“건축구조 엔지니어는 그 역할에 비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삼풍백화점 참사 같은 대형 사고가 일어난 지 10년이 지났어도 열악한 환경이 별로 나아지지 않았어요. 삼풍사고는 설계, 시공, 유지관리의 총체적 부실로 야기된 참사였지만 건축구조 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 근본적인 원인은 건축물 구조안전에 대한 건축주, 시공업체 및 행정기관의 인식부족과 제도·시스템의 부재였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아 화를 불렀고, 지금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았어요.”특히 서소장은 도면 없이 날림공사를 하기 십상인 다세대ㆍ다가구 주택이나 근린생활시설 태반이 지진 등의 재해에 무방비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쓰나미 참사 이후 3층 이상 건물의 내진설계를 강화하도록 규정이 바뀌었지만 이 역시 홍보부족 등으로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설명이다.불모의 영역을 홀로 헤쳐 온 서소장은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바람은 역시 ‘사회의 인식전환’. 건축구조 엔지니어가 제대로 대접을 받아 건축에 뜻을 둔 인재들의 진출이 활발해지길 바라고 있다. 더불어 건물을 지을 때는 꼭 구조설계 서비스를 받도록, 그래서 안전불감증이 치유됐으면 하는 바람도 크다.“적어도 건설현장에서만은 싸게 싸게, 빨리 빨리라는 고질적인 풍토를 바꿔야 합니다. 특히 전체 건축물량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중소규모 주택들은 지진 등에 대비해 구조설계를 필수화해야 합니다. 건축주들도 제대로 된 건물을 지으려면 기술용역에 대한 인식을 달리해야 하고요. 무엇보다 건축구조기술사의 역할을 제대로 인정, 많은 인재들이 도전하길 바랍니다. 그래야 구조설계 분야의 기술적 발전도 기대할 수 있어요.”약력 : 1961년 서울 출생. 84년 성균관대 건축공학과 졸업. 86년 성균관대 건축구조학 석사. 86~90년 서울건축 근무. 92년 건축구조기술사(여성 1호). 90~2001년 창ㆍ민우 구조컨설탄트 소장. 99년 성균관대 건축구조학 박사. 2002년 건설기술네트워크 소장 겸 공동대표(현). 성균관대 건축공학과 겸임교수(현). 한국여성건설인협회 부회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