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양승득 편집장제13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11월18~19일 양일간 부산에서 개최된다. ‘하나의 공동체를 향한 도전과 변화’를 주제로 그간 성과를 점검하고 아태지역의 경제 공동체 건설이라는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다.“이번 APEC 정상회의에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21개 회원국의 정상이 참가합니다. 이뿐 아니라 기업인, 취재진 등 참석자는 5,000~6,0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향후 10년 내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행사 중 가장 큰 규모에 해당합니다. 이번 회의는 한국의 인지도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됩니다.”APEC 경제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는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58)은 2005 APEC 정상회의가 한국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APEC 회원국과의 교역량이 전체 수출입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의 경제 활성화는 APEC 회원국과의 교류 활성화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005 APEC이 부산시에서 개최될 예정입니다. 한국이 처음으로 의장국이 된 셈인데요. 이번 회의 개최의 의미를 말씀해 주십시오.크게 3가지 정도를 꼽을 수 있겠습니다. 우선 올해는 APEC이 정한 무역투자자유화 목표(보고르 목표, 선진국은 2010년까지, 개발도상국은 2020년까지 무역자유화를 이루자는 내용)의 중간점검 연도입니다. 현재 상황을 점검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로드맵을 제시할 계획입니다. 이번 회의에선 9ㆍ11사태 이후 APEC의 또 다른 핵심 화두가 된 휴먼 시큐리티(Human Security)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될 겁니다. 무역과 투자 위주였던 APEC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겠죠. 마지막으로 북한 핵문제에 대한 APEC 회원국 공동의 결의를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겁니다. 최근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6자 회담의 합의 정신을 지지하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할 수도 있을 겁니다.한국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도 적지 않을 텐데요.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관광수입 같은 직접적 효과가 3,000만달러, 국가 신인도와 인지도 향상을 통한 투자유치 효과가 1억6,620만달러, 국내산업에 대한 파급효과가 2억5,556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개최지인 부산시도 많은 경제적 혜택을 얻을 것으로 보입니다. 부산시의 자체 조사에 의하면 4,021억원의 생산유발효과와 6,100명의 취업유발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APEC 21개 회원국의 경제적 격차가 적지 않습니다. 이는 APEC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데 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회원국간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이 궁금합니다.이 문제는 APEC의 핵심과제 중 하나입니다. 격차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궁극적으로 무역자유화는 성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APEC은 경제기술협력(Ecotech)을 확대하는 등 저개발국의 역량강화를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한국의 국제사회 공헌도가 매우 미약하다는 사실입니다. 공적개발원조(ODA)가 GDP의 0.06%에 불과해 OECD의 ODA위원회 가입기준인 0.1%에 턱없이 모자랍니다.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았던 과거를 생각해서라도 ODA 규모를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ODA 증액 일부를 APEC의 개발도상국 능력배양사업에 할당한다면 APEC 역내의 위상강화에 큰 보탬이 될 겁니다.국제사회에 기여하기 위해서라도 경제가 살아나야 할 텐데,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재 한국경제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무엇입니까.무엇보다 소비와 투자 부진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는 IMF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한국경제의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새롭게 도입된 제도와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하면서 소비자와 기업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입니다.기업의 투자부진을 야기한 변화부터 설명해보죠. 외환위기 이전에 기업은 30%의 기회와 70%의 리스크가 있더라도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은행과 정부 등 사회가 기업의 리스크를 분담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하지만 이제 사회는 더 이상 기업의 리스크를 덜어주지 않습니다. 리스크는 100% 기업이 지게 됐습니다.외국인의 지분이 급속히 높아지는 등 기업, 특히 금융기업 지배구조의 변화도 투자부진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은행은 더 이상 리스크가 높은 사업이나 기업에 돈을 빌려주지 않게 됐습니다. 기업은 이윤이 불어났더라도 경영권 방어를 위해 투자를 하기보다 빚을 줄이는 데 골몰합니다. 안정 위주의 경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셈이죠.소비자들의 태도도 변했죠. 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졌지만 사회안전망은 여전히 부실하니까 개인들은 소비를 줄이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정말 문제는 과도기를 보낸 후일 겁니다. 기업이 기술력을 세계 수준으로 향상시키고 새로운 시장을 끊임없이 창출한다면 투자는 자연스레 늘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죠.한국경제는 개방이라는 거대한 변화 앞에 서 있습니다. 현재 한국 경제와 산업의 개방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평가하십니까.정책적 개방 정도는 선진국 수준에 근접해 있습니다. 관세를 일례로 들면 한국의 관세율이 6%대인데 선진국은 4% 내외로 차이가 없습니다. 도하개발아젠다(DDA)와 자유무역협정(FTA)이 본격적으로 타결되기 시작하면 5년 이내에 5%대로 내려앉을 겁니다. 관세는 더 이상 수입장벽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또 금융시장은 너무 개방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죠. 외국자본의 진출 수준이 선진국을 능가합니다. 하지만 교육, 의료, 법률 등 서비스 부문의 개방은 아직 미흡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개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개방이 되면 밥줄이 끊길 수 있다는 피해의식이 만연한 탓입니다. 하지만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개방을 해서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사례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80년대 수입자유화 조치에 따라 관세를 인하할 때도 ‘미국에 시장에 다 내줄 셈이냐’는 우려가 극심했지만 현실적으로 이렇다 할 피해는 없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한국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거뒀죠. 투자개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개방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외국인투자 유치를 위해 정부와 기업이 동분서주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은 세계 11위의 무역국가입니다. 한국보다 경제 수준이 낮은 국가들도 과감하게 시장을 개방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자신감을 갖고 개방에 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한ㆍ일간 FTA협상이 교착상태에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무엇보다 양국의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입니다. 한국은 일본의 농수산물시장 개방, 기술협력, 부품소재산업의 투자 유치, 비관세 장벽 해소를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기술협력은 정부의 몫이 아니라 개별기업의 문제이고 비관세 장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꾸하는 등 엇박자가 심합니다. 상대의 관심사에 좀더 주의를 기울여야 함에도 이것이 잘 안되고 있는 것이죠. 일본의 경우 정치적인 의지도 부족한 것으로 보여 우려됩니다. 한국으로선 협상의 묘를 살려 조속히 협정을 체결해야 합니다. 너무 오래 끌면 협상 모멘텀이 약해질 우려가 있습니다.이번 APEC 회의가 FTA 체결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그렇습니다. 이번 회의에선 한국ㆍ일본ㆍ미국ㆍ중국의 지도자들이 자리를 함께할 예정입니다. 여기서 한ㆍ미 FTA 추진 합의 등 FTA에 대한 정상들의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의의가 클 겁니다. 이를 위해선 철저한 사전준비가 필수적이지만 APEC 정상회의까지 두 달이 채 남지 않아 시간적 여유가 촉박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의의를 감안한다면 시간 여유가 없다고 포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각국의 관심사를 파악해 내부입장을 정리한 후 합의가 이뤄진다면 엄청난 효과가 있을 겁니다.약력: 1947년생. 66년 경기고 졸업. 70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74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수료. 83년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제학 박사. 73년 행정고시 합격. 재무부 이재국 근무. 88년 산업연구원 산업정책실장. 상공부 장관 자문관. 95년 산업연구원 부원장. 98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99년 한ㆍ일 FTA 공동연구 한국책임자. 2001년 주OECD 대표부 대사. 2005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현). APEC 경제위원회 의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