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회사의 위기를 예방하고, 잘 수습할 수 있을까.’ 아무리 위기관리 시스템을 정비한다고 해도 예측하지 못한 위기들이 속출하기 때문에 위기를 사전에 100% 봉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때일수록 위기관리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상황은 변해도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원칙에 충실해 위기를 기회로 바꾼 위기관리 성공사례를 살펴보자.영유아식으로 유명한 미국 거버(Gerber)는 지난 2004년 7월 독극물 주입 사건에 휘말렸다. 거버의 바나나 요구르트를 먹이던 남성이 유리병 안쪽에 라이신이 들어 있음을 경고하는 메모가 랩에 싸여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이 내용은 연방수사국(FBI)이 수사를 벌이게 되면서 언론을 타고 퍼져나갔다.거버는 언론의 보도 직후 회사 웹사이트와 학부모 e메일을 통해 관계기관에 대한 수사 협조 의지와 밀폐포장이 훼손된 테러사건임을 분명히 밝혔고, 뚜껑을 열 때 ‘뻥’ 소리가 나는지 확인할 것을 당부했다. 그 결과 사건 보도 직후 5,000건이 넘던 문의전화를 일주일 만에 정상수준으로 되돌렸고 2004년 시장점유율에도 변동이 없었다. 사건을 은폐하지 않고 진상파악에 적극 협조한 거버의 태도는 9ㆍ11테러 이후 식품안전에 예민하던 시장 상황을 적절히 활용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일본의 안약전문회사인 산텐제약 역시 이와 비슷한 위기를 겪었으나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2,000만엔을 즉시 송금하지 않으면 벤젠을 넣은 안약을 무차별 살포하겠다는 협박장을 받았다. 산텐제약 CEO는 즉시 기자회견을 열어 협박사실을 공개하고, 협박범이 요구한 금액의 10배를 들여 전국에 배포된 자사 제품을 회수ㆍ폐기할 것을 지시했다. 전국 7만개 소매점에서 판매했던 가정용 안약 24종 250만개를 일주일 만에 모두 회수하는 동시에 TV광고를 중단했다. 그리고 사건 공개 10일 만에 오사카의 한 편의점에서 협박범을 체포했다.사건종료 뒤 산텐제약의 공개적이고 적극적인 사태수습에 대해 소비자들의 격려 전화와 전자메일이 쇄도하는 등 기업의 명성을 제고하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특히 이 사건은 경영진이 전면에 나서 사태수습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좋은 인상을 남겼다. 참고로 미국은 상장기업의 10% 정도가 CRO(Chief Risk Officer)를 임명해 놓고 있고, 유럽 제1의 석유화학회사 로열더치셸은 평상시에는 CRO가 위기관리를 책임지고 중대사태가 발생하면 CEO가 전면에 나선다.세계적 유통업체 월마트는 지난 8월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해지역에서 연방기상청이 태풍경보를 발령하기 12간 전에 이미 ‘물류배치계획’과 ‘손실예방팀’을 조직하고 위기관리체제에 돌입했다. 덕분에 허리케인이 뉴올리언스지역을 덮친 뒤에는 보름 만인 9월16일부터 재해지역 소재 126개 점포 중 13개를 제외한 모든 점포가 정상 가동됐으며 피해주민들에게 생필품을 공급할 수 있었다.또한 자사의 피해 예방에만 연연한 것이 아니라 연방재해대책기구(FEMA)나 적십자보다도 며칠 먼저 도착, 300만달러어치의 생필품과 1,700만달러의 성금을 피해주민에게 전달했다. 피해가 심했던 일부 재해지역에서는 월마트 직원들이 물류창고를 개방해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무상으로 나눠주었으며, 장비가 부족한 연방수비군과 경찰에게는 탄약까지 지원하며 월마트는 뉴올리언스 재해지역의 유일한 생명선 역할을 한 것이다.그런가 하면 피해를 입은 월마트 직원들의 소재를 파악하고, 이들을 전국 어디든 희망하는 지점에 재배치함으로써 대내외 위기관리를 훌륭하게 수행한 결과 <포춘>지를 비롯한 여러 언론으로부터 위기관리와 재난관리를 잘하는 기업으로 소개했다.지난 94년 보잉의 고든 베튠 사장이 콘티넨털항공 CEO로 취임했을 당시 회사는 직원간 불신풍조가 팽배하고, 권위적인 업무분위기로 인해 직원들의 조직만족도가 매우 낮았다. 부정적인 사내분위기는 작업능률과 소비자 서비스 품질, 실적이 모두 하락세로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미연방 교통부가 평가한 품질관리지표에서 미국 최악의 기업군, 최악의 항공사로 평가받았다.베튠 사장은 직원들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다양한 사내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또한 회사와 관련된 소식은 직원들이 가장 먼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에 따라 뉴스레터, 사내게시판, e메일, 음성메일, 전세계 작업장에 설치돼 있는 전자게시판을 통해 직원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사장실을 개방해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독려했다. 아울러 조종사, 사무직, 기술직간의 차별대우를 철폐하는 한편 직원 관리장부를 폐지하고 직원 개개인의 업무 판단을 존중했다.이 같은 사내분위기 개선을 통해 고객 서비스 품질이 향상됐고, 비즈니스석 고객이 급증했다. 96ㆍ97년 2년 연속 500마일 이상의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한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최고의 기업으로 선정되는 한편 97년 미국 항공 관련 잡지 <에어 트랜스포트 월드>가 선정한 ‘올해의 항공사’로 뽑히기도 했다.위기관리는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조직의 운용에서도 필요한 요소다.포르투갈은 관광, 선박, 조종술이나 항해술 등을 연상시키는 관광여행지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특히 국제투자가들 사이에서 유럽의 변두리 국가로 인식돼 해외투자를 유치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포르투갈 상무위원회(ICEP)는 지난 94년 해외기업 경영진을 대상으로 포르투갈에 대한 이미지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국가에 대한 지식이 많을수록 투자 관심이 높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포르투갈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투자에 부정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문제는 인지도가 아니라 국가의 이미지였던 것이다.이에 따라 ICEP는 ‘중장기 국제투자 캠페인’을 채택하고 포르투갈에 대한 미국기업들의 투자를 늘리기 위해 1만명이 넘는 잠재투자가들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개발했다. 또 미국기업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우편, 뉴스레터, 광고, 세미나 등 대대적인 관계구축에 나섰다.산업별로 타깃 기업을 나눠 캠페인을 진행하고, 특히 일대일 접촉을 통해 포르투갈에 대한 투자가 다른 나라보다 더 경쟁력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이후 여러 건의 투자유치를 성사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지난 2000년 미국이 쿠바 난민 소년 엘리언 곤살레스를 본국으로 송환한 사건은 미국의 대쿠바 정책에 있어 큰 의미를 갖는 사례다. 작은 사건으로 출발했지만 60년대의 외교분쟁과 같은 위기상황으로 번질 수 있었던 사건을 미국 행정부가 언론, 곤살레스의 친인척, 아버지, 그리고 쿠바 정부 등 주요 공중과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함으로써 오히려 양국간의 관계가 우호적으로 형성되는 계기로 만들었다.지난 59년 1월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공산혁명에 성공하면서부터 시작된 미국과 쿠바의 갈등은 80년 4월에는 미국이 쿠바 난민들에 대해 무조건적인 난민지위를 인정하면서 미국으로의 탈출을 유도해 양국의 갈등이 고조됐다가 곤살레스 사건을 통해 40년간의 냉랭한 관계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미국 행정부는 쿠바와의 갈등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쿠바 이민자들의 대규모 항의시위와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호한 자세를 유지했다. 또한 곤살레스의 양육권이 친부에게 있음을 인정하는 법원의 판결을 통해 시위대의 항의를 무력화시키며 미국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무엇보다 사건을 둘러싼 주요 공중을 파악해 곤살레스의 아버지를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핵심인물로 최대한 활용했다. 이처럼 핵심인물에 대한 관리는 여론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돋보기 실패사례애플사, 안이한 대책 탓 ‘낭패’지난 10월 대박을 터뜨린 애플의 아이포드(iPod) 나노 뮤직 플레이어를 구입한 일부 소비자들이 기기의 스크린이 너무 쉽게 긁힌다는 점에 불만을 품고 제조사인 애플을 상대로 캘리포니아주의 한 연방 지방법원에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은 애플사가 제품의 문제점을 알고도 출시했으며,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에게 교체비용과 불편함 등을 전가시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당초 애플 관계자는 스크린의 결함은 설계상의 잘못이 아니라 제조과정에서의 문제이며 제품은 판매된 전체 제품의 0.1%에도 못미친다고 설명하면서 불량품에 대한 환불 및 교환을 약속했다. 그러나 환불기간을 제한했을 뿐 아니라 25달러의 재고관리비를 지불하도록 해 이에 불만을 품은 소비자들의 집단소송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이번 사건은 문제 사안이 비교적 경미한 수준이고 소송비용도 그렇게 큰 규모가 아니지만 출시 직후 100만대 이상 팔린 나노 뮤직플레이어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끌었다. 성공적인 기업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시민단체의 주요 표적이 되기도 쉬운 것이다.또한 소비자들의 실망 등 심리적 문제를 간과하고 보증기간에 관한 규정을 고수해 민심을 거스른 것은 위기관리의 미숙함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비슷한 예로 2001년 컴팩은 0.00036%의 불량품 때문에 140만대의 노트북PC의 전원공급용 교류(AC) 어댑터를 전량 리콜한 바 있다. 당시 컴팩은 교류 어댑터의 결함으로 인한 화재위험성이 보고가 되자 99년 이후 판매된 자사 노트북 6개 모델에 부착된 AC어댑터 140만개를 모두 리콜한 것이다. 물론 컴팩의 경우 ‘화재위험’과 같이 중요한 사안이었다는 차이가 있지만 애플은 소비자들의 요구사항에 대해 좀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이혁ㆍ코콤포터노벨리 커뮤니케이션 전략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