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남은 임기 중 2대 주력 과제라고 선언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 대한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의 반발이 만만찮다. 작정하고 나선 모습이다. 청와대 참모들도 “독기가 느껴진다”고 할 정도다. 청와대 비서진은 외형적으로는 “대꾸할 내용이 못된다. 원래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다”며 정면대응을 피하고 있지만 전직 비서관이 대통령에게 정면반발하는 것을 보면서 속마음은 “불쾌하고, 딱한 일”이라는 분위기다. 그러면서 “그는 한·미 FTA의 업무진행을 알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정 전 비서관은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인터넷 매체인 레디앙과 오마이뉴스, CBS라디오 등을 통해 노대통령의 한·미 FTA에 대해 격한 표현으로 비판했다. 단지 FTA 사안뿐만 아니라 노대통령 주변의 386참모, 재정경제부, 삼성 등까지 맹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다가 노대통령과 청와대에 대한 공개적인 ‘사과문’을 인터넷에 기고하기도 했다. “진의가 잘못 전달됐고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부처에 사과한다. 나를 자책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사과문을 낸 뒤에도 그의 FTA 반대 행보는 계속됐다.노무현 의원 시절부터 경제자문을 했고 대통령직 인수위원까지 지낸 그가 왜 이처럼 강력히 한·미 FTA를 성토하는 것일까.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노대통령의 집권 3주년 기념일인 지난 2월25일 오찬장에서 있었던 일을 전했다. 당시 노대통령은 ‘비공식 일정’으로 2002년 선거에 공로가 많았거나 취임 후 도움을 많이 받은 측근들 몇몇을 불러 오찬을 나눴다. 이정우 전 정책기회위원장, 이창동 전 문광부 장관, 배우 문성근씨, 측근 안희정씨 등이 초청됐다. 이 자리에 정 전 비서관도 있었다. 통상 청와대의 비공식 일정이 그렇듯이 당초 이 모임은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고 비서실은 “노대통령은 취임 3주년을 특별한 행사 없이 조용히 보냈다”고 설명했다.그런데 이 자리에서 일종의 격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특히 정 전 비서관은 한·미 FTA가 급하게 추진된다고 주장하면서 부정적인 의견을 길게, 강하게 개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자 그는 노대통령에게 “앞으로도 이 문제를 계속 제기하겠다”는 취지로 자신의 의지를 밝혔다는 것이다. 정 전 비서관은 “저는 지금 백수다. 당장 할일도 없고 앞으로 글을 써야 하는데 나가서 이 문제를 쓸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도 말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연구간사, 월간지 〈말〉 편집위원 등을 지낸 진보성향의 연구자로 자기 소신을 펴겠다는 셈이다. 아무튼 그가 행담도 개발 의혹건으로 2005년 6월 불명예스럽게 대통령의 비서관에서 중도 하차했던 점도 한·미간 FTA에 대한 자기 소신을 펴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참모들이 반기를 들기는 그가 처음은 아니다. 3월에는 청와대 인사비서관 출신의 열린우리당 권선택 의원이 여당을 탈당, 여권에 파문을 던졌었다. “열린우리당은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며 열린우리당을 떠난 그도 청와대 비서관에서 2004년 4월 총선에 출마해 국회에 진출한 인물이다.그는 특히 인사비서관 시절 직무와 관련돼 적지 않은 실수가 있었으나 구제된 적도 있어 청와대에서 오래 근무한 참모들은 “사람, 참 알 수 없는 존재”라며 씁쓸한 반응을 보였다. 권의원은 2003년 말쯤 개각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어느 장관의 업무성적이 좋고 누구는 나쁘다”며 장관들의 성적표를 일부 누출시킨 일이 있다. 노대통령은 이 일로 장관교체명단이 마구 불거지자 대로해 “누출자를 찾아 반드시 형사처벌까지 받도록 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발설자가 드러나자 당시 권비서관의 직속상관이었던 정찬용 전 인사수석이 “직원관리 부실 차원에서 내가 책임지겠다”며 두 차례나 자신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구명에 나서 노대통령의 격노를 풀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후 반탄핵 바람 등으로 금배지를 달았다가 완전히 다른 길을 택한 것이다. 정무비서관 출신인 문학진 의원도 2005년 10월 여당이 재선거에서 참패를 하자 청와대를 겨냥해 비난을 한 적이 있다.시위농민 사망 사건으로 옷을 벗었던 허준영 전 경찰청장도 청와대를 겨냥, 비난의 화살을 쏘았다. 그도 현 정부 들어 첫 치안비서관에서 서울경찰청장, 경찰청장으로 승승장구했으나 퇴직한 뒤에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섭섭함 이상의 감정을 드러냈다.권의원과 허 전 청장은 2003년 현 정부가 출범할 당시 50명에 달하는 청와대 비서관급의 진용을 짜면서 현직 공무원으로서는 유이(唯二)하게 비서관에 기용된 인사다. 당시 노대통령의 측근 참모들은 “변화의 바람을 위해 기존 공무원들은 배제하고 전원 외부전문가로 비서관급 이상을 임명하는데 인사와 치안비서관은 어쩔 수 없다”며 그들의 기용배경을 설명했었다.참모들의 반란, 레임덕 현상인가. 신념파들의 자기 길 찾기인가. 후반기 청와대의 또 다른 고민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