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해외에 나가면 ‘대접’을 받는다. 특히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 가면 더욱 그렇다. 상고출신으로 독학해 변호사가 됐다거나 인권문제에 투신한 민주화 경력을 중시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은 듯하다. 세계 10위권 안팎의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한 한국, 해외에 투자를 하고 때로는 원조도 할 수 있는 힘을 갖춘 한국의 대표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그만한 대우를 받는 것이다.일부 저개발국에서는 한국의 발전과정을 자국의 모델로 삼아 배우겠다며 한수 가르쳐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하고 있다. 자본이나 기술보다 한국식 경제개발 방식을 본뜨겠다는 요청이다.몽골이 ‘한국을 배우자’는 대표적인 저개발국이고 아제르바이잔도 같은 입장이다. 이들은 대개 권위주의적 정권이 통치하는 나라다.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경제발전에 나서겠다는 것이며, 공무원들과 기타 개발 프로그램 전문가를 한국에 보내 체험을 배우겠다는 자세다.이런 때 노대통령은 ‘폼’ 한번 잡는다. 5월7일부터 15일까지 몽골, 아제르바이잔, 아랍에미리트연합 방문에서 노대통령은 비슷한 체험을 했다. 한국식 개발, 특히 단기간의 경제적 발전에 누구의 기여가 컸는지 따져볼 만도 하지만 아무튼 노대통령으로서는 기분 좋은 방문이었다.몽골은 2021년까지로 잡은 국가개발계획에 한국의 도움을 요청했다. 엥흐바야르 몽골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장에서 “우리는 전문인력이 필요해 국가개발계획 수립에서 한국과 협력관계를 구축하기로 의논했다. 국가개발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들을 한국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요청했다. 한국은 우리가 개발하려는 길을 이미 지나온 나라이므로 우리가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노대통령은 한국으로 합법, 불법으로 취업 들어온 몽골인들에 대한 단속문제를 스스로 꺼내면서 “인권침해가 없도록 하고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서 살피겠다. 또 가급적 교육기회가 단절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를 하겠다. 우리 제도도 관대하게 만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몽골에서는 국회의장도, 총리도 모두 한국식 모델을 배우겠다며 협조를 구했다. 아제르바이잔도 상황은 비슷했다. 노대통령이 방문한 나라 중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알제리 등도 같은 부류다.이들 국가의 한국식 발전모델을 배우겠다는 것이 현 정부의 업적, 노대통령 스스로 공과 때문이라고 볼 수 없음을 노대통령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노대통령은 2005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APEC에서 주최국으로 각국 정상들을 초청해 연설을 하고 연속해 회의를 주재하면서 성대하게 행사를 치른 뒤 “정치인이라면 누구라도 부러워할 폼 나는 업무를 했다. 이게 모두 앞서 대통령이 뿌려놓은 씨를 내가 거둔 것이고, 그 노력에 대한 영광을 내가 누리는 것이다”는 요지로 보람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 회의를 유치했기에 자기가 결실을 누렸다는 솔직한 얘기다. 2004년 12월 영국을 국빈방문한 뒤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영국은 수많은 외국 정상을 초청하지만 최고의 예우를 하는 ‘국빈방문’은 1년에 2~4회선으로 제한하는 것이 전통으로 알려져 있다. 국력의 크기가 문제 아니라 외교관계, 국가별 순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영국 국빈방문을 무척이나 원했으나 그의 재임시 한국에 그런 계기가 주어지지 않았다. 한국 순서의 국빈방문은 노대통령 때 성사됐다.서울 용산에 새로 이전 건립된 국립중앙박물관 준공식 때도 노대통령은 “10년 전에 내려진 훌륭한 결정”이라며 영광을 누리는 것에 대한 감사와 미안함을 표시했었다. 다만 이때 용산의 미군기지 가운데서 터를 확보하고 이전 계획을 결정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새 박물관 준공에 초청하지 않는 것에 무척이나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아무튼 노대통령이 다수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에서 환영받고 대우받는 것은 대한민국이 출범한 후 압축성장을 이룬 결실을 누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몽골 등지로 노대통령을 따라간 이백만 홍보수석은 “국가개발컨설팅은 우리나라 최고의 전략상품”이라며 “개발의욕이 강한 자원부국에 경제한류가 확산될 것”이라고 귀국 후 청와대 홈페이지에다 썼다. 노대통령의 방문이 ‘국가개발전략 세일즈 외교’라는 홍보글이었다.정치 혹은 사회발전논리에 따르면 제3세계의 국가는 대개 20세기 전후해 서구열강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가 독립을 거치며 이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피폐해졌다. 이후 독립투쟁세력과 군(軍)부의 갈등, 군부집권, 군부의 내부갈등과 표출, 내부의 분란이나 권력투쟁, 군부집권에서 국가의 효율화를 위한 권위적 관료주의제도 육성과 그 반작용으로 노동조합주의나 민주화 투쟁의 심화, 그러면서 경제발전 시도 등으로 전형화된 모델이 나온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은 성공했고 다수 국가는 실패했다.허원순·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