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562호 (2006년 09월 11일)

고임금ㆍ강성노조 ‘너무 힘들어!’

기사입력 2006.09.07 오후 02:53

최근 외국계 기업들이 한국을 속속 떠나고 있다.

세계적인 유통업체들이 탈출러시를 주도하고 있다. 최근 매출규모로 세계 1·2위 유통기업인 월마트와 까르푸가 잇따라 철수했다. 1998년 네덜란드 합작법인 한국마크로 점포를 인수하면서 아시아에서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시장에 진출했던 월마트는 인천점, 일산점, 구성점, 강남점 등 전국에 16개 매장을 운영해오다가 이번에 손을 털고 나갔다. 앞서 4월에는 지난 96년 한국시장에 진출해 국내 시장점유율 8%를 차지하면서 업계 4위를 달리던 까르푸가 32개 매장을 이랜드에 넘기며 한국영업을 포기했다.

다국적 제약업체들은 몇 년 전부터 줄지어 한국공장을 매각하며 본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올 들어 스위스 제약회사인 로슈는 안성공장을 철수하기로 했다. 지난 85년 설립된 한국로슈는 65명의 직원이 25개 의약품을 생산해 2005년 1,250억원의 매출과 130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로슈측은 스위스 본사의 글로벌 생산시설에 대한 구조조정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노바티스, 한국릴리,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등 세계적인 제약사들이 국내공장을 매각했으며, 백신업체인 한국와이어스도 끝내 공장 문을 닫고 말았다.

또한 세계 1위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핀란드의 노키아는 경남 마산에 있는 생산시설 일부를 중국과 인도로 옮기기로 했고, 미국 휴대전화업체인 모토로라도 지난해 말 경기도 이천에 있는 생산라인을 폐쇄했다. 대신 아시아에서의 생산은 중국 톈진공장에 집중하기로 했다.

통계상으로도 외국기업들의 탈출행렬이 감지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외국인직접투자(FDI) 동향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가 2004년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순위도 OECD 회원국 중 22위로 전년도보다 자그마치 10계단이나 추락했다. OECD의 FDI 통계는 신고액이 아니라 유입된 금액을 기준으로 한다. 2005년 한국 FDI 실적은 신고기준으로 115억6,000만달러이나 실제로 도입된 금액은 43억달러에 불과했다. 산자부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신고기준으로 투자규모는 늘었지만 M&A형이 52.5%로 공장이나 사업장을 국내에 직접 설립하는 그린필드(Green-field)형(47.5%)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외국인직접투자가 국내에 공장이나 사업장을 설립하기보다 국내기업의 주식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은 글로벌 브랜드의 무덤이 되고 있다.’ 프랑스에서 발간되는 영자 일간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월마트가 한국을 떠난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이같이 표현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을 떠나는 진짜 이유는 뭘까.

우선 전문가들은 월마트, 까르푸 등 할인점의 경우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국에서 성공한 방식을 고집하려 했다는 점을 꼽았다. 예를 들어 토종 할인점들이 소비자들의 입맛을 파악해 신선식품 비중을 늘리고 매장을 고급화하는 한편 편의시설을 강화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동안 외국계 할인점은 자신들만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세계 최대의 식품회사인 네슬레가 모유를 중시하는 한국 엄마들의 트렌드를 읽지 못해 분유·이유식 시장에서 ‘세레락’을 접은 적이 있다. 한국외국기업협회의 김선재 상근대표는 “한국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지는 기업들이 떠나는 것은 말릴 수 없는 일”이라면서 “한국을 떠나는 대부분의 기업이 단지 한국을 싸구려 시장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여기에다 한국의 내수시장 침체와 원화가치 상승 등과 맞물리면서 외국기업들의 경영난이 심화됐다는 설명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시장환경이 경쟁국에 비해 낙후됐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만만찮다. 높은 인건비 부담에다 파업을 일삼는 노조가 있는 한국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각종 규제와 외국인학교 등 부족한 생활환경도 외국기업들이 한국을 꺼리는 이유 중의 하나로 꼽힌다. 지난 7월 삼성전자는 독일 반도체 원자재 회사인 질트로니크와 세우는 합작법인의 생산공장을 싱가포르에 짓기로 했다. 삼성전자측은 합작법인의 생산공장을 당초 한국에 지으려 했으나 질트로니크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고 밝혔다. 질트로니크측은 외국기업이 경영활동을 펼치기 어려운 한국의 열악한 인프라에 큰 불만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한국의 반기업 정서와 외국기업 홀대 정책 등도 투자환경의 걸림돌로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국의 국제학교 부족 등 외국인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가장 우려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8월 한국공장을 폐쇄한 다국적 완구업체 레고코리아도 한국의 열악한 투자환경을 지적했다. 레고는 외환위기 직후였던 99년에 경기도 이천에 세계 4번째로 테마파크를 조성하려다 각종 규제와 노사문제 등으로 포기하고 독일로 발걸음을 돌린 적이 있다. 회사측 관계자는 “지난해 공장철수는 덴마크 본사의 글로벌 구조조정의 일환”이라면서도 굳이 한국공장의 문을 닫은 것에 대해 “노사관계와 고임금 등이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밖에 로슈는 지난 2003년 노사갈등으로 석 달 넘는 장기파업을 경험한 바 있다. 한국와이어스는 인건비 부담이 공장 문을 닫은 주이유다.

다국적기업들의 공장철수가 초래하는 후유증은 크다. 무엇보다 외국기업들이 한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중국 등 경쟁국으로 옮겨가면서 한국에 대한 투자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 당연히 무역수지도 손해다. 일례로 2004년 16억달러였던 의약품의 무역수지는 지난해 20억달러로 25%나 늘었다. 일자리가 줄어들어 우리의 미래 성장동력이 둔화되는 것도 걱정스러운 일이다. 그럼 대책은 없을까. 장윤종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국기업들이 한국진출을 꺼리는 이유로 내수시장 침체와 노사문제, 외국투자가에 대한 반감 등을 꼽았다. 따라서 외국기업들이 한국에서 가격경쟁에 버틸 수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반외국기업 정서를 해소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장연구위원은 “정부의 경영환경 개선과 더불어 전 국민적인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전략적 투자유인책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코트라(KOTRA)의 투자유치 전담조직인 인베스트코리아는 최근 한국, 싱가포르, 대만 등 3국의 투자환경을 비교한 <한국, 싱가포르, 대만 투자환경 비교조사>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에 따르면 싱가포르는 투자유치기관과 투자인센티브가 강점으로 꼽힌다.

싱가포르의 투자유치기관인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은 경제발전 업무를 총괄해 왔으며 전략적 분야의 외국인직접투자 유치에 집중적으로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싱가포르 경제개발청은 인허가 관련 행정서비스 외 조세감면, 보조금, 지분투자, 저리대출 등 다양한 방법으로 투자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대만도 조세감면, 보조금, 지분투자, 저리대출 등 투자인센티브를 다양하게 제공하고 있으며 기술도입, 연구개발 등 기술발전 효과를 낼 수 있는 분야에 인센티브를 집중하는 등 전략적 투자유치활동을 벌이고 있다.

jun@kbizweek.com



당사의 허락 없이 본 글과 사진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입력일시 : 2006-09-07 1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