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IT접목기술 등 산업화 ‘눈앞’…마케팅 응용, 기업 관심 ‘쑤~욱’

‘한국의 신경과학기술 발전속도는 혁명적이다.’김경진 뇌기능활용 및 뇌질환치료 기술개발연구 사업단장(BRC)은 신경과학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국제 심포지엄에서 만난 세계적인 석학들조차 놀라움을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실제로 국제적인 학술지에 실리는 한국 연구자들의 논문은 ‘수직상승’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91년 42건에 불과하던 것이 2004년 1,470건으로 무려 35배나 불어났다. 지난해의 경우 7월까지만 1,021건의 논문이 발표됐다. 같은 기간 세계적으로 발표된 논문은 4만1,846건에서 4만6,357건으로 소폭 증가했을 뿐이다.중요한 사실은 국내 신경과학의 발전이 학계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이다. 정부나 기업의 이렇다 할 도움 없이 세계 학계에 버젓이 이름을 올려놓은 것이다. 국내 학계에서 신경과학에 대한 관심은 엄청나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날로 심화되는 가운데에서 신경과학 관련 학과는 지원자들이 몰려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이와 관련, 김단장은 “국내의 신경과학 발전은 학계의 자발적인 의지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며 “최근 정부의 지원정책이 본격화되고 있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정부는 98년 ‘뇌연구촉진법’을 제정하고 2003년부터 2013년까지 3단계의 시행계획을 발표,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03년 BRC를 설립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지원규모도 증가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12.9% 증가한 474억원이 뇌연구에 투자될 예정이다.정부와 학계의 노력은 예상보다 빠른 결실을 맺고 있다. 신약 후보물질이 개발되는가 하면 뇌파를 이용해 컴퓨터나 기계를 움직이는 기술도 고안됐다. 특히 고무적인 것은 산업화의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벤처기업들을 중심으로 신경과학의 성과를 상용화하려는 시도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뉴로테크, 크리스털 지노믹스, 림스테크널러지 등 벤처기업들은 기술이전이나 공동개발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신경기술 산업화의 고삐를 단단히 당기고 있다.세계적 수준의 연구 인프라 확충에도 가속도가 붙고 있다. 우선 뇌연구에 필수적인 고가의 장비 도입이 크게 늘었다. MRI는 매년 60~90대씩 설치되고 있으며 PET는 2002년 8대에서 2004년 32대로 4배나 불어났다. 같은 기간 전세계 평균 증가율인 71%보다 몇 배 높은 수치다. 해외연구진과의 교류도 본격화되고 있어 기술 선진화를 앞당기고 있다. BRC는 영국의 셰필드대, 맨체스터대, 브리스톨대 3개 대학의 연구센터와 협정을 맺고 공동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가천의대의 뇌과학연구소는 독일 지멘스와 PET-MRI 공동개발에 나선 상태다.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것도 사실이다. 우선 보다 적극적인 투자가 절실하다. 현재 신경과학에 투입되는 투자금은 미국의 0.5%, 일본의 10%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 정도로는 도저히 선진국과 격차를 줄일 수 없다. 대기업의 투자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실용화 단계에 미치지 못한 기술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할 기업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연구인력 확충도 풀어야 한다. 학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한층 두터운 연구인력 풀이 필요하다고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산업화 동향미국의 경제월간지인 <비즈니스 2.0>은 지난 5월호에서 ‘세계를 바꿀 5개 발명품’을 선정, 발표했다. 이 가운데 하나가 한국의 연구진이 개발한 제품이다. ‘뉴로 헤드셋’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제품은 생각만으로 사물을 움직일 수 있다. 머리에 쓴 헤드셋이 사람의 뇌파와 눈동자의 움직임을 읽어 이를 무선라디오주파수(RF)로 전송해 헤드셋과 연결된 기계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뉴로 헤드셋’을 개발한 벤처 림스테크놀러지는 현재 미국에 ‘뉴로스카이’이라는 벤처회사를 설립, 북미진출을 노리고 있다. 현재 제품개발이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4년 처음 발표됐을 당시 완구용 제품만 선보였지만 게임, 교육, 로봇, 재활복지 등 응용분야는 무궁무진하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휠체어에 적용될 경우 손을 쓸 수 없는 장애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뇌파를 이용해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는 제품도 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가상현실팀은 ‘뇌파 키보드’를 선보였다. 이마 부위에 있는 전두엽에서 발생하는 뇌파 속의 잡파를 이용해 컴퓨터와 휠체어를 조작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두 명이 하는 볼링게임이나 미로게임 등도 할 수 있다.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원하는 사용자들에게 적합할 뿐만 아니라 손동작이 어려운 장애인들을 위한 응용제품에도 활용될 수 있어 산업화 가능성이 높다는 게 ETRI측의 설명이다.‘뉴로 헤드셋’이나 ‘뇌파 키보드’처럼 뇌와 기계를 연결하는 기술은 한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분야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한국의 IT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단장은 “뇌과학과 IT기술이 접목되는 이 분야는 세계적으로도 연구가 갓 시작돼 전문가가 많지 않다”며 “국내에도 전문가가 10여명 안팎에 불과하지만 IT기술이 워낙 뛰어나 전망은 밝다”고 말했다.신약 개발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 경기도 수원에 소재한 바이오벤처인 뉴로테크는 뇌질환 및 치매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치료제의 후보물질인 ‘AAD-2004’를 활용한 제품이다. 3~5년 후면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대형국가연구개발 실용화사업’으로 선정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신경진단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인 가운데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인물로 꼽히는 조장희 박사가 오랜 해외생활을 접고 국내 연구시설인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PET를 개발한 컴퓨터 단층촬영 분야의 권위자인 조박사는 현재 PET와 MRI를 결합한 새로운 두뇌영상장비를 개발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PET-MRI 융합시스템이 개발되면 암,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뇌출혈은 물론 정신분열증, 우울증, 자폐증 등 정신질환의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것”이라며 “2020년에는 세계적으로 뇌질환 환자들의 요양비가 3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돼 경제적 파급효과가 엄청날 것”이라고 기대했다.뉴로마케팅신경과학은 마케팅에도 응용되고 있다.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는 매년 수백개의 휴대전화 모델을 그려낸다. 그중 실제 제품화되는 것은 극소수이며, 히트상품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더욱 드물다. 수백개의 후보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기업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문제다. 소비자들의 반응을 정확하게 미리 알 수 있다면 판단은 한결 쉬워진다. 소비자 조사에 아낌없이 돈을 투자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그러나 전통적 조사방법은 정확성이 크게 떨어진다. 기업의 설문조사에 소비자들은 ‘거짓말’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다, 소비행위는 무의식적 차원에 의해서도 지배를 받는다. 소비자 스스로도 왜 특정 상품을 선호하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최근 뇌과학의 발전이 소비자의 숨겨진 심리를 읽는 데 골몰하는 기업들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고 있다. 바로 ‘기능성 자기공명 영상’(fMRI)이라는 첨단장비를 이용해 소비자의 무의식까지 들여다보는 것이다.지난 2월 LG텔레콤은 고려대 성영신 교수팀과 함께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소비자 45명에게 LG텔레콤과 경쟁사의 제품 및 브랜드 이미지를 보여주며 fMRI로 뇌영상을 촬영한 것이다. 성영신 교수는 “뇌의 각 부분별로 역할이 다르다”며 “제품을 보고 어느 부위가 활성화됐는지를 보면, 소비자가 그 제품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명품을 보면 ‘보상중추’인 뇌섬엽이 강한 자극을 받는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명품이 약속하는 부와 명성에 대한 기대를 자동반사적으로 갖게 되기 때문이다. 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LG텔레콤이 이 같은 낯선 실험에 나선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객관적 통화품질은 경쟁사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는데도 소비자들은 LG텔레콤의 품질을 낮게 평가했다. LG텔레콤은 소비자들의 숨겨진 마음속 진실을 알고 싶었다. LG텔레콤의 마케팅 자문을 맡고 있는 플렌즈어헤드 이경원 부장은 “LG텔레콤에 대한 평가가 낮다고 막연하게 생각해 왔는데 실험결과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며 “기존 광고 효과와 관련해서도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고 말했다. LG텔레콤은 fMRI를 이용한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마케팅과 광고전략을 새롭게 짰다.태평양도 지난 3월 라네즈 등 화장품 브랜드를 대상으로 fMRI를 이용한 소비자 조사를 실시했다. 이해선 태평양 마케팅담당 부사장은 “샤넬 등 해외 명품브랜드와 비교해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알고 싶었다”며 “조사결과를 반영해 디자인과 광고 컨셉을 보완했고 신제품도 출시했다”고 말했다.그러나 뉴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은 아직은 많지 않다. 우선 비용이 큰 부담이다. fMRI를 찍으려면 1인당 수백만원이 든다. 뇌기능이 상당부분 밝혀졌지만 아직 100% 규명된 것은 아니다. 박재항 재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장은 “아직은 몇몇 기업이 도입하는 실험적 단계”라며 “하지만 기존의 소비자 조사기법이 안고 있는 한계를 보완해 줄 수 있는 만큼 기업들의 관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skjang@kbizweek.com·hjb@kbizweek.comINTERVIEW 성영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국내 뉴로마케팅 수준 미국에 버금’성영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53)는 뉴로 마케팅 분야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지난 2003년 소비자광고심리연구실을 만들어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활용, 소비자의 구매심리를 분석하는 연구작업을 해왔다. LG텔레콤과 태평양의 소비자 조사도 성교수가 수행했다. 그의 연구팀은 요즘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fMRI 장비를 빌려 쓰기 위해 한 달에 한 번 대전을 오간다. 대당 가격이 수십억원에 달해 자체 보유는 엄두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교수는 “21세기는 소비자의 미묘한 심리를 정확하게 읽어내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며 “뉴로 마케팅에 대한 기업들의 더 많은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뉴로 마케팅은 언제 등장했나.뇌의 기능을 밝히려면 살아 있는 뇌를 들여다봐야 하는데 그동안은 방법이 없었다. 최근 MRI의 성능이 발전하며 이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뇌과학적 방법론을 마케팅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께부터다. 미국에서도 막 시작한 단계이며 우리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뇌 분야 연구원이 매년 수십배씩 늘어나고 있다. 거의 모든 학문분야가 신경과학과 융합하면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기업들의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사실 일정 수준에 오른 대기업이 아니면 관심을 갖기 어렵다. 이들은 가격이나 품질로 승부하는 단계를 넘어서 있다. 소비자의 미묘한 감성, 무의식을 읽어야 한다. 고도의 심리전이 시작된 것이다. 문제는 소비자에게 단순히 질문을 해서는 진짜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브랜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면 모범답안밖에 안 나온다. fMRI를 이용하면 소비자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내면의 심리까지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업이 직면한 진짜 문제가 뭔지, 또 어떤 방향으로 풀어야 하는지 해법을 찾을 수 있다. 2년 전부터 국내에서도 뉴로 마케팅에 관심을 갖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이 분야는 산학연계가 필수적이다. 기업도 말로만 ‘디자인 경영’, ‘브랜드 가치’를 내세우지말고 이 분야의 투자를 늘려야 한다.소비자들이 기업의 ‘노예’가 되는 건가.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를테면 소비자들이 코카콜라를 왜 좋아하는지 알아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코카콜라를 좋아하게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정확한 소비자 정보를 알게 되면 기업은 거기에 맞는 대응전략을 짤 수 있다. 소비자들이 가격을 비싸다고 인식한다면, 비싸지만 더 가치 있다는 점을 강조하거나 실제로 가격을 내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