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울수록 힘차고 시원스런 분수도, 품 너른 나무 위에서 도시를 점령했던 매미소리도 이제는 철 지난 음성으로 우리에게 어색하게 다가온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정치의 계절임을 알리는 신호다. 황금빛 들녘의 넉넉한 가을걷이처럼 의정활동의 풍성한 결실을 수확하기 위해 여의도 정가가 분주해지는 요즘이다.지난 9월1일 마침내 정기국회가 문을 열었다. 올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내일을 준비해야 할 중차대한 시작인 셈이다. 그러나 2006년 9월 대한민국 국회의 모습은 어떤가? 괴연 국민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되돌아보고 반성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우리는 현재 헌정 사상 초유의 헌법재판소장 궐석사태를 맞이했다. 소장은 이미 퇴임했지만 후임은 없다. 임명절차상의 문제를 들어 청와대의 사과까지 이끌어낸 한나라당은 그것도 모자란지, 기어이 헌법재판소장의 공백상태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대한민국 제1야당의 대표는 한술 더 떠 한달 정도 헌법재판소장의 공백이 생기더라도 별문제가 없다는 말까지 공공연히 하고 있다.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도 탄핵발의해서 두 달간 국가원수의 공백이 생겼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은 전진하고 있다고 믿는 그들이었다. ‘그깟 헌법재판소장쯤이야..’라는 안이하고 오만한 인식에 사로잡힌 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든다. 국가 최고기관도 이렇게 쉽게 보는데 일반 국민들, 힘없는 서민들을 어떻게 볼 것인지는 명약관화하다.헌법재판소장은 대통령, 국무총리, 국회의장과 함께 국가 중요 4부 요인이다. 더군다나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서 헌법상 국가 최고기관이다. 국가 최고기관이 이런 대접을 받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국회 인사청문특위에 참여한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그보다 먼저 이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참으로 답답함을 금할 수가 없다.법률논리로 가장한 정치공세의 내면을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겠다. 먼저 코드인사 운운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명예와 관련된 문제다. 사법부에서 30여년간 양심에 따른 판결로 신뢰와 존경을 받던 후보자를 대통령과 사법시험 동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루아침에 코드인사라는 낙인을 찍어, 법률과 양심에 따른 판단을 하지 않았으리라고 단정짓는 것은 후보자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법부 전체에 대한 모독이다. 한마디로 정치공세에 다름 아닌가 하는 마음을 지울 수 없다.한발 더 나아가 임명절차상의 문제를 보자. 우리 헌법 111조는 헌법재판관 중에 헌법재판소장을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헌법 112조는 헌법재판관의 임기를 6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6년 임기로 임명된 재판관 중에서 소장을 임명하면 재판관이기도 한 소장은 언제나 임기가 6년이 될 수 없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헌법재판소장의 임기는 직접적 법률의 규정이 없다 하더라도 당연히 6년이다. 역대 소장들이 모두 그러했고, 헌법재판소장은 헌법재판관을 겸임하기에 또한 당연한 사실인 것이다.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임기제는 한나라당이 그렇게 신주단지 모시듯하는 ‘정치적 중립’, 다시 말해 각 기관의 독립성을 보장하라는 삼권분립의 핵심기제다.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의 꽃 아니겠는가.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시작한 정기국회는 그 시작부터 파행으로 얼룩지고 있다. 정기국회를 시작하면서 내실 있는 의정활동으로 민생을 챙기는 국회가 되겠다는 다짐을 벌써 잊은 건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정치공세가 난무하는 국회가 아니라 진정 국민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국회에서 우리 정치의 희망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필자의 의견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서갑원 국회의원 (열린 우리당)1962년 전남 순천 출생. 89년 국민대 법학과 졸업. 91년 국민대 대학원 법학과 졸업. 대통령비서실 의전비서관. 대통령비서실 정무1비서관. 17대 국회의원(전남 순천)(현).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