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연휴는 유난히 길다. 길게는 9일이나 된다.몸을 추스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어디론가 멀리 떠나 즐기는육체적 휴식 대신 계절에 걸맞게 마음의 양식을 쌓는 시간으로활용하는 것은 어떨까. 책, 영화, 공연 관련 다양한 정보를 소개한다.더욱 알찬 연휴를 보내는 데 제격일 듯싶다.인간답게 사는 법에 대한 사색첫번째로 소개하는 책은 <이지 고잉(Easy Going)>(야마가와 겐이치, 해피니언)이다. 새해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달려왔지만 만족스럽기보다 실망스러운 일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 사람에게 저자는 “무리하지 마, 그대로도 괜찮아!”라고 위로를 하고 있다. 인생은 긴 마라톤이기 때문에 페이스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차라리 지혜가 아닐까. 운전하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상식. 후진은 실패가 아니라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다.혹시 편안한 휴식을 위해 잠자리에 들면서도 그날 했던 실수 때문에 괴로워한 적이 있는가. <과학사의 유쾌한 반란>(하인리히 찬클, 아침이슬)은 우연과 실수를 통해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과학자들의 유쾌한 에피소드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논리와 인과관계를 중요시하는 과학계에서조차 우연과 실수는 많은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실수란 넘어진 것이 아니라 같은 이유로 다시 넘어진 것이라는 말이 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멋진 기회로 바꾸는 지혜를 이번 기회에 배워보는 것이 어떨까.<다빈치 코드>와 함께 불어온 팩션(fact+fiction) 열풍은 ‘한국적인 팩션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작가들에게 던지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이정명, 밀리언하우스)는 조선 세종 시절 훈민정음 반포를 7일 앞두고 벌어지는 집현전 학사들의 연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 역사추리소설이다. 한글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개혁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는 정통 경학파의 대결은 급변하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너의 입장은 무엇이냐’며 커밍아웃을 강요당하는 현대인에게 의미 있는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15년 만에 다시 국경일로 지정된 올해 한글날은 훈민정음 반포 560돌을 기념할 예정이라고 한다.지난 8월25일은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정년퇴임식이 열렸던 날이다. 정치인을 포함해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정년퇴임을 할 수 있었던 선생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신영복 함께 읽기>(여럿이 함께 씀, 돌베개)는 선생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선생의 사상과 생애를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고 있는 책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더불어 숲>, <강의> 등도 이번 기회에 다시 읽으면서 인간답게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한 물음의 답을 추석연휴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찾아보면 좋겠다.외국인들도 알고 있는 ‘빨리빨리’라는 단어는 대한민국의 놀라운 성장과 그로 인한 문제점을 동시에 상징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단 2초면 양질의 순간판단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큰 유혹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싱크! 위대한 결단으로 이끄는 힘>(마이클 르고, 리더스북)은 오히려 블링크가 아닌 싱크가 필요한 시대라고 강조한다. 급히 마시는 물이 체하는 것처럼 순간적인 감정이나 느낌에 의존하는 경향 때문에 비판적·창조적 사고가 저하되고 있다고 저자는 안타까워한다. 좋은 것은 쉽게 얻을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 자만이 평평해진 세계에서 대체불가능한 인재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끝으로 인간관계에 관한 책 한 권을 소개하며 마치도록 하겠다. <더 가깝지도 더 멀지도 않게>(김홍식, 더난출판). 명절이라 많은 친인척들이 한자리에 모이다 보면 서로 정을 나누며 사랑을 키워도 모자란 시간에 얼굴을 붉히며 안 좋은 모습을 종종 보이기도 한다. 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사람들과 함께 자라고 지내왔지만 관계에 대해서 아직 배울 것이 더 남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랑의 거리를 이 책을 통해 배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타짜>부터 성룡까지… 풍성한 극장가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 극장 나들이라도 갈 때는 뭐니뭐니해도 한국영화가 제격일 터. 대대로 뜨거운 추석 극장가를 주름잡은 <가문의 영광>류의 완벽한 코미디 영화를 표방한 <가문의 부활>, <무도리> 등이 이미 9월21일 개봉해 분위기를 달궜다. 하지만 이번 본격 추석 시즌은 억지웃음을 자아내는 영화보다 다양한 장르와 소재의 수작들이 대거 선보이는 ‘황금시대’가 될 형국. 여름휴가 이후 찾아든 짧은 비수기를 끝낼 화제작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오래전부터 추석을 목표로, 감독이 식음을 전폐하고 완성했다는 <타짜>가 첫번째 주자. 충무로가 편애한 만화작가 허영만의 <타짜>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꽃의 전쟁, 화투를 소재로 한다. 평범한 청년 고니가 도박판의 승부사로 변모하는 과정과 인간의 욕망을 현실감을 살려 빠른 템포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고니 역의 조승우, 그의 인생과 도박판을 설계하는 팜므파탈 정마담 역의 김혜수, 고니의 스승 평경장 역의 백윤식, 그리고 수다스러운 타짜 고광렬 역의 유해진까지 배우들의 농익은 연기가 압권이며 화투 치는 인물로 카메오로 출연한 허영만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 <범죄의 재구성>으로 화려한 데뷔전을 치른 최동훈 감독이 인생 최대의 ‘한방’ 승부와 인간군상 이야기로 웰메이드 스타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이다.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의 차기작 <라디오 스타>는 그리움과 삶의 여운으로 관객을 유혹한다. 한물간 철없는 록스타와 그를 20년간 수행해 온 속 깊은 매니저에 관한 이야기. 한국영화계의 터줏대감 안성기, 박중훈이 오랜만에 호흡을 맞춰 제작 전부터 화제가 됐으며, 이감독은 특유의 솜씨로 조글조글한 눈가 주름만큼이나 강한 존재감에 여운을 녹인 버디 무비로 만들어냈다. 잊혀져 가는 모든 아름다움에 대한 헌사인 <라디오 스타>는 과거의 향수와 감성을 지키고 있어 ‘7080’세대들이 특히 환호할 만한 영화다.레트로 감성을 성에 접목시킨 유쾌한 코미디 <잘 살아보세>도 추석 극장가에 훈훈한 웃음을 불어넣는다. 70년대 새마을운동과 더불어 국책사업이었던 가족계획운동 시절, 수위 조절된 콘돔, 피임약, 정관수술 등의 소재들이 눈길을 끈다. 시골에 파견돼 피임과 산아제한 교육을 맡게 된 ‘가족계획요원’ 박현주(김정은)와 소작농인 석구(이범수)의 해프닝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진다. 성에 무지한 사람들에게 성교육을 하는 과거 어느 날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는 김정은, 이범수 등 코미디에 능한 배우들에 힘입어 세련된 코미디로 태어났다. <태극기 휘날리며>, <공동경비구역 JSA>의 제작사 MK픽쳐스의 야심작 <구미호 가족>도 충무로의 하반기 기대작 중 하나. 인간의 간을 노리는 구미호들이 도시로 숨어들고 인간들을 홀리기 위해 서커스장을 연 구미호들과 어리바리한 인간 기동의 이야기. 전형적 공포 무드를 뒤집은 구미호라는 소재와 한국에서는 희귀한 장르였던 뮤지컬이 이질적으로 조우한 독특한 장르영화로 눈길을 모은다.추석 극장가를 선점한 한국영화 틈바구니에서 해외에서 온 몇몇 수작들도 놓치긴 아깝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면 애니메이션 <앤트 불리>를 ‘강추’한다. 개미들의 세상, 인간과 개미의 전쟁을 알콩달콩 보여주는 솜씨와 니컬러스 케이지, 줄리아 로버츠, 메릴 스트립 등 할리우드 명배우들의 목소리 연기가 돋보인다. 최근 일본영화 인기 퍼레이드를 이어갈 <금발의 초원>은 일본의 차세대 연기파 청춘배우들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 <디아워스>의 진짜 주인공 댈러웨이 부인에 관한 이야기 <댈러웨이 부인>과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 <이사벨라>, 페넬로페 크루즈에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귀향>(9월21일 개봉)까지 아티스틱한 영화 취향을 가진 당신을 위해 대기 중이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추석의 히어로는 단연 성룡! 아날로그적 무술실력과 정직한 유머를 선보여온 성룡은 어김없이 이번에는 인간적인 아기유괴범으로 분한 로 추석을 공략한다. 보나마나 안방극장에서도 성룡 영화 한 편쯤은 방영되겠지만 올해는 아직도 건재한 성룡의 활약을 스크린에서 만나보는 건 어떨까.창작뮤지컬·전통예술무대 등 선택폭 넓어이번 연휴에 볼 만한 공연은 뮤지컬과 연극, 클래식뿐만 아니라 전통예술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먼저 뮤지컬은 국내 순수창작뮤지컬의 대표작 <사랑은 비를 타고>가 11주년을 맞아 10월31일까지 인켈아트홀에서 공연된다. 최근에는 마니아층 사이에서 <사·비·타>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사랑은 비를 타고>는 형제간의 사랑이라는 테마를 바탕으로 사회변화에 발맞춰 새로워지는 에피소드들과 대사, 공연이 거듭될수록 더욱 세련된 무대장치들로 언제나 신선함을 더한다. (10월2일 공연 없음·인켈아트홀 1관·02-764-7858~9)화려하고 세련된 무대와 의상, 정열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록으로 잘 알려진 뮤지컬 <햄릿 언플러그드 2006(Rock Hamlet)>이 대학로 세우아트센터에서 10월8일까지 공연된다. 이 작품은 짜임새 있는 각색을 통해 극을 압축시켜 빠르게 비극으로 치닫는 작품성을 보여준다. 선이 없는 악기와 록과 재즈의 환상적이고 힘 있는 음악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난타> 오리지널버전의 전훈이 연출을 맡았고 <은행나무침대>, <태극기 휘날리며>, <쉬리> 등 영화음악 작곡가 이동준이 참여한다. (02-3141-1345·1588-7890)지난해 ‘폐경’이라는 다소 심각한 주제를 솔직하고 유쾌하게 풀어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던 뮤지컬 <메노포즈>가 11월12일까지 연강홀 무대에 다시 오른다. 5년 만에 뮤지컬에 도전하는 개그우먼 이영자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뮤지컬배우 전수경이 98년 뮤지컬 <라이프> 이후 9년 만에 다시 뭉쳤고 이윤표, 이미라, 홍지민, 문희경, 양꽃님, 정영주, 김은영 등 모두 9명의 관록 있는 여배우들이 농익은 연기를 펼친다. (02-501-7888)클래식의 경우 현재 유럽 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지휘자 다니엘 하딩이 이끌고 있는 말러 챔버 오케스트라가 10월1일 한국을 방문, 첫 내한공연을 가진다. 다니엘 하딩은 현재 말러 챔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과 런던 심포니 객원수석을 맡고 있으며 2007년부터는 스웨덴 라디오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활동할 예정이다. 다니엘 하딩과 피아니스트 라르스 포그트, 그리고 말러 챔버가 만들어낼 환상적인 하모니가 관심을 모은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1588-7890)음악인생 30주년을 기념하는 히로타카 이즈미의 한국 단독 콘서트 역시 10월1일에 열린다. LG아트센터에서 열릴 이번 공연에서는 일본의 실력파 뮤지션들이 동행해 티 스퀘어 시절 그가 작곡했던 곡들과 한국에서 먼저 발매된 베스트음반에 실린 한국가요(임현정의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이규호의 ‘거짓말’)를 편곡한 곡들도 연주한다. (02-324-3824)한국적 상황이 녹아있는 한국형 보잉보잉으로 완전히 탈바꿈한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 <뉴보잉보잉>이 대학로 두레홀 2관에서 공연된다. 이 작품은 미모의 스튜어디스 애인을 셋씩이나 두고 있는 바람둥이 주인공 성기에게 우연히도 세 명의 애인이 한집에 오게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코믹하게 다루고 있다. (12월31일까지·02-741-5970)이밖에도 ‘늘휘’무용단 창단 10주년 기념공연이 9월30일 LG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지난해 최고의 예술가들이 완성시킨 화제작으로 꼽힌 <알.수.없.어.요>와 황병기의 70여분의 가야금 대곡에 맞춰 안무된 신작 <상상(想.想)>은 한 무대에서 각기 다른 색감으로 관객들 앞에 펼쳐진다. (1588-7890)국내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추석을 맞아 국민명창 김영임이 세종문화회관대극장에서 10월7일과 8일 이틀에 걸쳐 총 4회 공연을 갖는다. 올해로 데뷔 33주년을 맞는 김영임의 이번 공연에서 음악은 중앙국악관현악단이, 무용은 경희대 김말애 무용단이 맡았다. (02-548-4480)연휴기간에 가볼 만한 전시행사로는 전세계의 별난 물건과 신기한 과학완구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별난 물건 박물관>을 꼽을 수 있다.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리며 소리, 빛, 과학, 움직임, 생활의 다섯 가지 테마별로 350여가지의 전세계 별난 물건들과 신기한 과학완구들을 전시하게 된다. 직접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체험할 수 있으며 매월 전시물이 새롭게 바뀌는 이색체험 박물관이다. (12월31일까지·02-792-8500·1588-7890)권윤구·북코치 www.bookcoach.co.kr / 윤혜정·월간 보그(Vogue) 기자 kidult27@doosan.com / 최경만·티켓링크 홍보팀 대리 ckm7944@ticketlin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