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식(食)테크(tech)’가 각광받고 있다.‘잘 먹는 기술’을 뜻하는 식테크는 더 먹을 것은 더 먹고, 덜 먹을 것은 덜 먹자는의미를 담고 있다. 풍요로운 현대인에게도 칼슘, 무기질, 비타민 등은 의외로 부족하다.반면 소금, 설탕, 카페인, 지방은 넘쳐흐르는 것이 현실이다.식테크 붐은 소비자들이 주도한다. ‘건강을 최고’로 여기는 사람들이 크게늘어난 결과다. 덩달아 기업들도 바빠졌다. 경쟁적으로 저지방, 저당,저나트륨, 무카페인 제품을 선보이며 소비자를 유혹한다.출판가에도 식테크 관련 책이 베스트셀러로 떠오르고 있다.건강만능시대의 식테크, 어디까지 왔을까.직장인이자 주부인 한민아씨(30)는 ‘식테크의 달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날씬해서 건강에 별 이상 없어 보이는 한씨,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이른바 ‘마른 비만’ 판정을 받았다.마른 비만의 원인은 고칼로리 식생활과 운동부족이었다. 일종의 복부비만으로 복부 내장 사이에 지방이 축적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한씨는 “마른 비만이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 대사성질환을 야기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식테크를 시작했다”면서 “식사는 단백질 위주로 하고, 체지방을 줄이고 근육을 늘리기 위해 헬스클럽에 다닌다”고 말했다. 동시에 식품별 칼로리를 확인하고 이왕이면 저지방, 무카페인 식품을 사 먹게 되면서 ‘계획 있는 식사법’에 능통하게 됐다.예전에는 한씨와 같이 ‘따져가며 먹는’ 소비자가 기업의 기피 대상이었다. 식품별 함유성분을 밝히기를 요구하는 깐깐하고 피곤한 소비자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2000년대 이후 참살이 돌풍이 대한민국을 강타하면서, 기업은 이제 식테크 관련 제품으로 매출을 올린다. 신제품을 개발·출시할 때도, 새로운 마케팅을 선보일 때도 식테크를 우선시한다. 그만큼 식테크에 신경 쓰는 소비자가 늘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실제로 최근 AC닐슨은 아시아 13개 지역 9,485명 소비자를 대상으로 ‘체중감량에 대한 관심도’를 조사했다. 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홍콩 등 아시아 13개 지역 중에서 한국 소비자가 체중감량에 가장 관심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AC닐슨은 한국 소비자 총 500명을 대상으로 ‘체중감량을 위해 섭취를 줄이고자 하는 대표적인 성분’을 조사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지방(38%)을 1순위로, 설탕(26%)을 2순위로 꼽았다.소비자들의 이 같은 식테크에 대한 니즈를 파악한 기업들은 앞다퉈 ‘빼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빼 마케팅’이란 인체에 악영향을 주는 물질을 과감히 뺀 제품을 기획하고, 판매, 마케팅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 성분을 뺐다는 의미에서 ‘빼 마케팅’으로 불린다. 지방, 나트륨, 카페인 등을 첨가하지 않거나 적게 넣었다고 해서 ‘무첨가, 저첨가 마케팅’이라고도 불린다.식테크족 겨냥…기업 매출 ‘쑥쑥’‘빼 마케팅’을 진행하며 식테크를 원하는 소비자를 겨냥한 기업 중 하나는 한국코카콜라다. 지난 4월 아시아권에서는 처음으로 칼로리와 설탕을 없앤 ‘코카콜라 제로’를 내놓은 한국코카콜라는 이 제품으로 매출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미국과 호주 등 코카콜라 제로를 먼저 선보인 지역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지난해 7월 ‘코카콜라 제로’를 첫 출시한 미국에서는 2005년 12월 말 목표 대비 112%의 판매를 달성했다. 지난 1월 내놓은 호주에서는 출시 한 달 만에 250㎖ 캔 기준으로 약 1억개를 판매했다. 또 올 1~2월 기준 호주 코카콜라 제품군 전체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0% 성장하는 등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인 바 있다. 식테크에 대한 관심이 전세계적이라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한국코카콜라의 한 관계자는 “건강과 웰빙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의 최근 성향을 반영해 칼로리와 맛에 대한 소비자의 니즈를 모두 충족시켜 주자는 취지로 코카콜라사의 오랜 연구에 의해 개발된 제품”이라면서 “기존 코카콜라의 맛을 좋아하면서도 칼로리 문제를 우려하던 소비자층을 새롭게 확보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이제 질세라 롯데칠성음료는 설탕과 칼로리를 없앤 무칼로리 청량음료 ‘펩시맥스’로 코카콜라에 맞서고 있다. 높은 칼로리로 콜라를 거부했던 젊은 소비자를 집중 공략한다는 전략이다.이밖에도 해태음료는 아미노산을 함유한 다이어트 기능성 음료 아미노업 라인 중 하나로 칼로리가 제로(0)인 ‘아미노업 칼로리 제로’를 개발했다. 커피도 칼로리를 낮춘 ‘테이스터스 초이스 블랙’, ‘맥심 웰빙 오리지널 1/2 칼로리 믹스’ 등 저칼로리 제품이 인기다.한국네슬레는 지난 1월 테이스터스 초이스 블랙 커피믹스 2종을 출시했다. 크리머 없이 커피와 설탕만 들어 있는 커피믹스 제품인 테이스터스 초이스 ‘부드러운 블랙 오리지날’과 ‘마일드 블랙 마일드 모카’를 선보인 것.테이스터스 초이스의 브랜드매니저 윤민수씨는 “테이스터스 초이스 블랙 커피믹스는 블랙커피 애호가와 함께 크리머 없이 깔끔하게 커피를 즐기고자 하는 기존의 커피믹스 소비자를 위해 출시됐다”며 “앞으로도 점점 다양해지는 소비자 기호에 맞춰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것”이라고 했다.아이스티 믹스제품에도 저칼로리 바람이 불고 있다. ‘립톤 제로 칼로리 피치’, ‘립톤 제로 칼로리 레몬’ 등의 제품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동아오스카의 ‘건강미인 건미차’는 무설탕·무칼로리·무착색을, 웅진식품의 ‘하늘보리차’는 무당·무카페인을, 한국야쿠르트의 ‘씨씨레몬’은 무설탕·저칼로리를 강조하며 ‘빼 마케팅’에 나섰다.칼로리를 모두 빼버린 제품 외에도 저지방 식용유, 저지방 마가린, 튀기지 않은 라면 등 지방함량을 줄인 제품도 다양한 모습으로 소비자와 만나고 있다. 식용유의 경우 칼로리를 낮춘 제품의 가격은 일반 식용유의 2배를 넘는다. 고가에도 불구하고 젊은 여성과 주부들이 많이 찾는다. 저지방 마가린 역시 볶음 등 다양한 요리에 이용되고 있다. 칼로리를 2분의 1로 낮춘 마요네즈 등도 인기만점이다. 튀기지 않은 라면도 지방함량이 낮아 식테크족의 관심을 끈다. 롯데마트는 최근 저칼로리 기능성 라면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6%나 더 팔았다.‘낮은 칼로리’를 마케팅 컨셉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라면도 적잖다. 오뚜기는 2004년 120㎉의 ‘컵누들’을 선보이며 라면을 좋아하는 식테크족을 노렸다. 최근에는 칼로리를 더 낮춰 50㎉ 이하로 만든 ‘컵곤약’ 3종을 내놓기에 이르렀다.과자에도 저칼로리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롯데제과는 아예 ‘S라인 100칼로리’라는, 이름부터 식테크 분위기가 풍겨 나오는 제품을 개발, 판매하고 있다. 이 제품 패키지 안에는 100㎉의 과자가 두 봉지씩 들어 있다. 과자는 손이 가는 대로 먹게 되기 마련이다. 식테크족이 이를 방지하며 칼로리를 계산해 먹을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덧붙였다.한국인은 음식을 너무 짜게 먹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짠 음식을 피하는 소비자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동시에 소금, 즉 염화나트륨을 줄인 저염식품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기업이 늘고 있다. CJ의 팬솔트 제품은 염화나트륨 함량을 일반 정제염보다 40% 줄인 제품이다. 가격은 일반 소금에 비해 3배 정도 비싸지만 식테크족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대상 또한 기존 나트륨 함량을 50% 줄인 ‘나트륨 2분의 1 솔트’를 팔고 있다.젓갈류의 경우, 올 설 무렵에 일반 젓갈 절반 수준의 염분을 함량한 선물세트가 시장에 등장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에 앞서 대상은 지난해 기존 제품보다 염도를 평균 5% 낮춘 제품으로 청정원 장류 제품의 염도를 리뉴얼한 바 있다. 장류 중에는 특히 간장 상품에 빼 마케팅이 활발히 도입됐다. ‘샘표 저염간장’의 염도는 12%로 일반 간장의 16%보다 낮다. 저염상품 붐은 젓갈과 간장, 고추장 외에도 버터, 과자 등 다채로운 먹을거리에도 일고 있다.유통업체도 저염 식품을 발굴해 소비자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말부터 자반고등어의 염도를 기존 4%에서 3%로 줄여 판매했다. 저염 제품을 내놓자 매출은 상승했다. 이마트는 이어 염도를 2%대로 낮춘 삼치도 내놓았다. 롯데마트 또한 저염 생선을 판매했다. ‘저염 가자미’부터 ‘저염 이면수’, ‘저염 삼치’까지 각종 생선에 염화나트륨 저첨가 전략이 도입됐다.현대백화점은 소금이 적게 들어간 젓갈 상품을 판매한다. 명란젓의 경우 저염 제품의 가격이 일반 제품보다 50% 정도 비싸지만 2배는 더 팔린다. 소금을 첨가하지 않은 무염 호박씨, 해바라기씨, 아몬드 등도 백화점 식품코너 인기 아이템이다.화학조미료를 줄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식테크족의 눈길을 사로잡는 제품도 있다. 농협의 ‘우리밀 청국장 라면’과 신동방의 ‘해표 감자라면’, ‘해표 현미라면’, ‘해표 보리라면’ 등이 무MSG(화학조미료)를 대대적으로 내세운다.식테크 열기는 출판가 또한 뜨겁게 달구웠다.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식테크 관련 음식문화 서적은 150종 정도다. 자녀를 둔 부모 사이에서 큰 화제를 낳았던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안병수 지음, 국일미디어)과 인기 상종가인 청국장을 다룬 <청국장 다이어트&건강법>(김한복 지음, 휴먼앤북스) 등이 있다. 그밖에 <먹어서 약이 되는 생활음식 100가지>(유태종 지음, 아카데미북), <몸에 좋은 색깔음식 50>(정경연 지음, 고려원북스)도 독자가 많이 찾는 책이다.식테크 관련 TV프로그램의 유명세를 출판계에 옮긴 서적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KBS 2TV 건강 프로그램 <비타민>의 ‘위대한 밥상’에 출연하는 한영실 교수가 엮은 <위대한 밥상>(현암사), 식문화에 큰 반향을 일으킨 SBS의 3부작 다큐멘터리 <잘 먹고 잘 사는 법>의 박정훈 PD가 쓴 <잘 먹고 잘 사는 법>(김영사) 등도 많이 팔린 식테크 서적이다.이효정 기자 jenny@kbizweek.comINTERVIEW 한영실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식품도 공부하고 먹어야 합니다’“무병장수하는 사람을 살펴보면 한 끼도 무작정 먹지 않습니다.”KBS 2TV <비타민>의 출연진으로 유명한 한영실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식테크에 큰 무게를 싣는다. 미리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재테크에 능한 것처럼 식테크도 마찬가지다.“한 푼, 두 푼 계획을 갖고 금전출납부를 써온 분들이 나중에 큰 부자가 된 것을 자주 보셨을 겁니다. 평소 습관과 관념이 큰 부를 일군 것이지요. 식테크도 예외는 아니어서 물 한 모금이라도 매일 철두철미하게 계산하고 마셔야 건강을 오래 지킬 수 있습니다.”한 교수는 국내에서 식테크가 더욱 중요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20세기 격동의 역사를 보낸 우리나라는 식테크가 필요 없는 시대를 겪었다. 풍요롭지 않던 시절, 아이로니컬하게도 성인병에 노출된 사람은 많지 않았다.“비만과 고혈압, 고지혈증, 동맥경화 모두 풍요에서 오는 병입니다. 못 먹어서가 아니라 경제수준 향상과 함께 잘 먹어서 생긴 병인 겁니다. 김치와 나물, 된장찌개, 소박한 보리밥 대신 패스트푸드와 육류를 즐겨 먹으면서 각종 성인병의 발병률이 높아졌습니다.”한 교수는 ‘관념 없는 식생활’을 성인병의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지금이라도 식테크에 부쩍 신경 써야, 더 이상 건강을 잃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식테크를 위해 소비자는 그 무엇보다 ‘공부’를 해야 한다.“운전, 컴퓨터, 운동까지도, 다른 것들은 미리 다 공부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생명을 좌우하는 식품에 대해서는 왜 공부를 안 하는지, 습관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 몸은 인내심 있게 만들어져서, 용량이 초과돼도 한없이 늘어나지, 자동차 오일탱크처럼 넘치지 않습니다.”식품마다 어떤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는지, 하루에 어느 정도의 영양분이 필요한지 계산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 교수는 “하루에 필요한 칼로리를 일상생활 속에서 알고 있어야 한다”면서 “가령 매일 500k㎈를 더 먹는다면 한 달 후에 몇 ㎏이 늘 것이라는 등의 계산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