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나 인생과 맞서라’

16년 만의 귀환이다. 아련한 추억의 영웅, 록키가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링 위에 섰다. 1976년, 투혼의 주먹이 처음 관객의 가슴을 후려쳤던 그때로부터는 무려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다시 글러브를 끼기엔 록키가, 예순을 넘긴 실베스터 스탤론이 너무 노쇠한 것은 아닐까. 오른손 주먹을 번쩍 치켜든 채, 포스터를 장식한 록키의 뒷모습에 반가움보다 안쓰러움을 먼저 느낀다 해도 나무랄 일은 아니다. 회를 거듭할수록 내리막길에 접어들어 시리즈 5편이 참담한 실패로 끝났을 때, 헝그리 복서의 운명은 완벽한 종언을 맞이한 듯 보였으니까. 실베스터 스탤론이 6편을 만들겠다는 ‘무모한’ 결심을 털어놓았을 때, 할리우드는 망설임 없이 그를 조롱거리로 삼았다. 차가운 세상 속으로 그는 지금 왜, 돌아온 것일까.은퇴한 복서 록키는 시내에서 자그마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식당을 찾은 손님들에게 무용담을 들려주고, 파이팅 포즈를 취해주며 생계를 잇는 그의 일상은 초라하다. 아내는 세상을 떠났고, 유일한 아들은 아버지의 존재를 부담스러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자극적인 이벤트를 궁리하던 복싱 프로모터들은 록키에게 현 헤비급 챔피언 딕슨(안토니오 타버)과의 친선 경기를 제안한다. 록키는 세상의 조롱과 만류를 무릅쓰고, 최후의 결전을 준비한다.〈록키 발보아〉는 섣부른 예측과는 달리, 잘 나가던 시절의 무용담에 대한 나태한 재탕이 아니다. 영화는 치고받는 혈투를 전시하는 대신, 퇴물 복서의 쓸쓸한 삶을 묘사하는데 절반 이상의 러닝 타임을 할애한다. 영광의 페이지를 뒤로 한 채, 인생의 뒤안길에 접어든 사나이. 록키가 다시 링 위에 오르기까지의 지난한 사투는 〈록키 발보아〉라는 영화가 왜 돌아왔느냐에 대한 대답과도 같다. “남들의 비웃음에 귀 기울일 것 없어. 세게 치는 건 중요하지 않아. 맞아도 쓰러지지 않고 나아가는 게 중요해”라고 말하는 록키의 대사가 평단과 관객을 향해 외치는 스탤론 자신의 목소리와 다르지 않음은 물론이다. 자신을 일약 스타의 자리에 등극시킨 주인공이자 끝끝내 떨쳐낼 수 없었던 굴레로 존재해 온 록키. 분신과도 같은 그를 보듬으며 담담히 삶의 그림자를 되짚는 스탤론의 시선에 옛 영광을 향한 집착이나 욕심은 엿보이지 않는다. 〈록키 발보아〉는 낮은 목소리로 익숙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교훈을 이야기한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것, 그리고 모든 힘을 다해 인생에 맞설 것.〈록키 발보아〉의 결말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챔피언과 도전자는 조용히 서로에게 경의를 표하고, 링 아래로 내려온 록키는 다시 본래의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어떤 형식적 기교도 없이 투박하고 우직하게 만들어진 〈록키 발보아〉는 스탤론이 자신을 향해 써 내린 지극히 사적인 편지인 동시에, 삶이라는 링 위에서 버텨온 모든 이들을 향해 보내는 헌사다. q최하나·씨네21 기자 raintree@cine21.com개봉영화▶아버지의 깃발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이오지마에 상륙한 미군 해병은 의례적으로 언덕에 성조기를 꽂는다. 그러나 이 순간을 담은 사진 한 장은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상징적인 이미지로 부상한다. 이러한 국민적 감정을 이용하려는 미국 정부는 사진 속에 등장한 위생병 브래들리(라이언 필립) 등을 불러들여 전쟁 보급품을 위한 기금 마련에 나서게 한다. 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출작.▶더 퀸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을 둘러싼 영국 왕실과 토니 블레어 총리 사이의 갈등을 그린 작품. 1997년 왕세자비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그녀를 애도하는 추모 행렬이 확산된다. 평소 다이애나와 사이가 소원한 것으로 알려진 시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며느리의 죽음에 대한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국민들로부터 원성을 사게 된다. 〈위험한 관계〉 〈그리프터스〉의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1번가의 기적재개발을 앞둔 마을을 밀어내기 위해 1번가에 도착한 건달 필제(임창정 분). 하지만 도착하자마자 맞닥뜨린 여자 복서 명란(하지원 분)과 엉뚱한 마을 사람들로 인해 그의 계획은 꼬이기 시작한다. 동양 챔피언을 꿈꾸며 트레이닝 중인 명란과 사사건건 얽히게 된 필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동네의 잡일을 도맡아 하게 되고, 급기야 아이들에게 슈퍼맨으로 환영받게 되는데. 〈두사부일체〉 〈색즉시공〉의 윤제균 감독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