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제 605호 (2007년 07월 09일)

철공소 근무 중학생, 나사 황제가 되다

기사입력 2007.07.03 오전 11:13

철공소 근무 중학생, 나사 황제가 되다
야간 중학교를 다니며 영등포 철공소에서 일하던 소년이 마침내 세계 최대 나사 업체 사장이 됐다.

시화공단에 있는 명화금속. 이 공장 안에 들어서면 ‘탁탁탁’ 하는 나사 제조 소리가 드럼 소리처럼 들린다. 나사는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자동차 선박 전자제품 항공기 등의 조립이나 건축 공정에 필수적인 제품이다. 더운 여름철인 데도 작업복 차림에 목장갑을 끼고 공장 안을 돌아다니는 70대 할아버지가 있다.

임정환 명화금속 사장(71). 사람들은 그를 ‘나사 박사’, ‘나사 황제’라고 부른다. 까닭이 있다. 그는 50년 넘게 나사만을 만들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기록을 세웠다.

우선 명화금속은 세계 최대 직결나사 생산 업체다. 월평균 5억 개, 연평균 60억 개를 만든다. 세계 인구만큼 나사를 만든다.

둘째, 최고 생산 속도의 나사 기계를 직접 만들어 가동하고 있다. 분당 700개의 나사를 만드는 자동화 설비는 임 사장이 직접 제작한 것이다. 일본이나 대만의 분당 180~200개 제조설비에 비해 생산성이 서너 배 높은 것이다. 오는 9월에는 분당 1000개를 만드는 설비를 선보일 예정이다.

셋째, 임 사장이 개발해 등록한 발명특허 등 지식재산권이 170여 건에 이른다. 대부분 나사나 나사 기계에 관련된 것이다. 개인이 이렇게 많이 발명한 것은 드문 일이다.

넷째, 이 회사가 만드는 나사 중에는 획기적인 제품들이 많다. 두꺼운 철제 H빔을 별도 장비 없이 뚫을 수 있는 나사도 있다. 직결나사(Self Drilling Screw)다. 전체 생산품의 90%가량이 직결나사다. 임 사장이 개발한 이 직결나사는 나사 끝을 특수 열처리해 마치 드릴 날이 붙어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 두께 12mm의 철판까지 뚫을 수 있어 별도의 매개물 없이 접합 작업을 단번에 끝낼 수 있다. 따라서 기존 공법에 비해 공기가 단축되고 비용이 적게 드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 나사는 나사 끝을 뒤틀리게 나선형으로 제작한 게 특징이다. 기존에 외국에서 생산해 온 직선형 직결나사의 경우 쇳밥이 외부로 제때 배출되지 않아 빠른 속도로 구멍을 뚫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뒤틀림 형태의 직결나사는 쇳밥이 끊어지지 않고 신속히 외부로 배출되는 게 특징이다. 따라서 철제 H빔에도 나사를 6~8초 만에 신속히 박을 수 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기계 선진국들도 이미 1970년대부터 직선형 직결나사를 개발, 사용해 왔지만 임 사장이 고안한 나선형 직결나사는 그것보다 훨씬 진보된 것이다.

또 이 회사가 만드는 블라인드 리벳은 리벳 가운데 못이 박혀 있는 특수 구조를 갖고 있다. 리벳을 구멍 속에 집어넣은 뒤 못을 잡아당기면 간편하게 두 개의 물체를 접착할 수 있다. 그는 안산에 있는 저수지에서 낚시를 하다 낚시찌를 보며 아이디어가 떠올라 이를 제품화했다. 낚시찌처럼 쉽게 박히면서 빠지지 않는 그런 나사를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 끝에 개발해 낸 것이다. ‘블라인드 리벳’은 시화공장에서 연간 4억 개씩 생산되고 있다. 이 제품은 성능과 정교성이 뛰어나 독일의 에조트, 영국의 에코파스트 등으로부터 주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이디어 메모 노트 수십권 ‘보물 1호’

철공소 근무 중학생, 나사 황제가 되다
이 회사가 만드는 나사는 건축용 가전제품용 자동차용에서 항공기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생산된 나사는 영국 독일 스웨덴 프랑스 미국 중동 호주 캐나다 일본 등 30여 개국으로 수출된다. 지난해 매출 272억 원 가운데 10%가 넘는 30억 원어치가 이들 지역으로 선적됐다.

우수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신한국인상’과 ‘기술혁신장려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도 신기술인증, 수출유망중소기업, 세계우수자본재, 우수품질인증제품상, 세계일류상품, 산업포장, 품질경쟁력우수기업 등 많은 상과 인증서를 받았다.

충남 홍성의 빈농에서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임 사장은 초등학교 졸업 후 상경했다. 자신도 먹고 살고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곧바로 공장에서 일했다.

서울 대방동 친척집에 기거하며 당산동에 있는 공장에 다녔다. 이곳에서 선반으로 나사 등을 깎으며 기술을 익혔다. 배움에 대한 갈증을 풀기 위해 야간에는 인근에 있는 영도중학교와 동양공고를 다녔다. 서울 문리사범대학(현 명지대) 수학과 역시 야간 과정을 다녔다. 초등학교를 제외하곤 낮에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다.

일하면서 공부하다 보니 줄일 수 있는 시간은 잠자는 시간밖에 없다고 판단, 10대 때부터 잠을 4시간만 잤다. 이런 수면 습관은 70대에 접어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는 일하면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메모지에 기록했다. 지금도 꼬깃꼬깃한 종이를 윗주머니에 항상 넣고 다닌다. 침대 머리맡에도 항상 메모지와 볼펜이 놓여 있다. 꿈속에서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기록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메모한 노트가 수십 권에 이른다. 임 사장의 보물 1호다.

임 사장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직접 제품으로 만들고 싶어 1961년 당산동에서 직원 6명으로 창업했다. 당시 사명은 범양금속이었다. 나사를 깎고 기계나 깡통도 생산했다. 선반 작업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했다. 인근의 천일곡산에 깡통을 납품하기도 했다. 나사는 처음엔 자전거용을, 그 다음엔 오토바이용을, 그 뒤엔 자동차용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만드는 나사는 건축 자동차 컴퓨터용에서 항공기용까지 8백여 가지에 이른다. 생산 설비의 90% 이상을 직접 설계하고 제작했다.

일에 몰두하면 다른 것은 모두 잊는 스타일인 임 사장은 약혼식 날도 잊어버리고 공장에서 일하다 직원이 ‘혹시 오늘 약혼하시기로 한 날이 아니냐’는 말을 듣고 혼비백산해 약혼식장으로 직행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블라인드 리벳을 국내 처음으로 자체 개발했고 1980년에는 직결나사를 개발했다.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직결나사가 건설 현장에서 인정받기까지는 4년 이상이 걸렸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직결나사 없는 건설 시공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됐다. 시공이 쉽고 튼튼하면서도 공기를 50% 이상 단축해 주기 때문이다.

서울 상암동 월드컵축구장이나 영종도 신공항 등도 명화금속의 직결나사가 사용됐다. 공사 관계자들은 직결나사가 건설 현장의 ‘작은 혁명’이라고까지 말한다. 직결나사의 인기는 국제 시장에서도 드높다.

명화금속의 제품은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 5% 이상을 기록, 그 이름만으로도 보증수표로 통한다. 독일과 일본 중국 영국 미국 등 30여 개국이 명화금속 제품을 사다 쓴다.

공장을 몇 군데 이전한 뒤 1988년에 법인으로 전환하고 사명도 명화금속으로 바꿨다. 이어 1992년 시화공단에 입주했다. 이 공장은 대지 약 2만7000㎡, 건축면적 1만2500㎡에 이른다. 신의주 건너편에 있는 중국 단둥 동항에 대지 약 2만㎡, 건축면적 5000㎡ 규모의 공장도 운영하고 있다.

임 사장은 나사를 자식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평생 연구하고 생산해 온 게 나사이고 나사로 인해 희망을 갖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동생들을 교육시킨 것도 나사 덕분이다. 그래서 그는 나사를 누구보다 사랑한다.

그는 나사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만일 나사 업체가 문을 닫으면 자동차 조선 가전 업체들의 생산 라인은 모두 멎게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나사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몫을 수행하는 소중한 존재지요.”

그러면서도 나사 하나가 잘못되면 완제품이 졸지에 불량품으로 변한다.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무더운 여름에도 현장을 누비는 까닭이다. 그는 한국 경제를 탄탄히 조이고 있는 ‘나사 같은’ 기업인이다.

약력:1936년 충남 홍성 출생. 59년 서울 문리사범대(현 명지대) 수학과 졸업. 61년 범양금속 창업 및 대표. 88년 명화금속으로 사명 변경. 수상: 신한국인상 기술혁신장려상 산업포장 우수품질인증상 등.

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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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7-07-03 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