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경우에 변화는 그것을 불가피하게 하는 환경이 작용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최근 세계 자동차 산업의 중요한 이슈 3가지가 이미 글로벌 시장의 일부로 깊숙이 편입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에 주는 의미를 살펴보자.올 5월 투자 펀드인 서버러스가 다임러로부터 크라이슬러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또한 최근 포드 그룹은 자신들이 인수했던 유럽의 고급차 브랜드 재규어, 랜드로버, 볼보 등의 매각 의사를 밝혔다. 1990년대 세계적으로 불어 닥쳤던 자동차 업체 인수·합병(M&A)의 결말들이다. 당시 이루어졌던 거대 자동차 기업의 탄생은 이질적인 기업 간의 실질적 통합 실패와 유가 상승 등 외부적인 요인들로 인해 한순간에 악몽으로 변했다.특히 서버러스의 크라이슬러 인수는 금융자본에 의한 최초의 대형 자동차 업체 인수라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만약 서버러스가 강경한 노조를 설득하고 크라이슬러의 경영 정상화에 성공한다면 이번 사례는 금융자본에 의한 자동차 업체 M&A의 서곡이 될지 모른다.그동안 미국 자동차 산업 붕괴의 중요한 요인으로 강력한 전미자동차노조연맹(UAW)의 존재와 전·현직 근로자들에 대한 막대한 의료보험 부담이 거론돼 왔다. 이 문제에 대해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다가 이제 노사 양측이 적극적으로 협상을 진전시키고 있다.최근 델파이는 UAW와 임금 축소에 대한 합의에 성공했다. 시간당 임금을 대폭 삭감하는 대신 3년에 걸쳐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이 타결된 것이다. 이는 올 여름 미국 완성차 업체들과 UAW 간의 협상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역시 공존이냐 공멸이냐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되면서 변화가 나타나는 것 같다.향후 세계 자동차 산업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유지 가능한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유지 가능이란 자동차 보유 대수 증가에 따라 심각해지고 있는 사회문제들을 어떻게 자체적으로 해결해 나가느냐다. 오염물질 배출 규제는 이미 1990년대부터 꾸준히 추진돼 왔으며 최근에는 연비와 관련된 각국의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이에 대해 자동차 업계는 이른바 친환경차 개발로 대응하고 있다. 수소연료 전지차나 하이브리드차의 개발, 바이오 연료의 사용 확대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친환경차 기술은 아직 표준이 정착된 단계가 아니다. 따라서 막대한 투자자금과 폭 넓은 기반 기술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투자에 따른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10년 전의 환란 이후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은 큰 변혁을 겪으면서 많은 완성차 업체와 자동차 부품 업체들의 경영권이 외국계로 넘어갔다. 그 결과 완성차 부문에서는 유일하게 현대차와 기아차 등 현대차 그룹이 남게 됐다. GM대우의 경우 모회사인 GM의 경영난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독자적인 전략 수립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상황은 많은 외국계 투자 기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지금까지 현대차 그룹은 적극적인 품질 개선 노력과 해외 시장 진출로 좋은 성과를 거둬 왔다. 그러나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경 변화는 낙관적이지 않다. 특히 환율이나 해외 자동차 시장 여건 등을 감안하면 일순간에 경영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선진국 업체뿐만 아니라 신흥국 업체, 그리고 이제 금융자본까지 자동차 기업 인수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한순간의 위기도 용납되기 어려운 상황이다.지금과 같은 만성적인 노사분규나 낮은 생산성으로는 앞으로 벌어질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결국 공존이냐 공멸이냐 하는 기로에 서게 되면 노사관계에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가 일어나겠지만 그 이전에 슬기로운 대처가 절실하다. 또한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는 친환경차 개발에 있어서도 단지 ‘생산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경쟁력 있는 차’를 만들어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자동차 산업은 고용 창출 효과와 수출 산업으로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국가적 자존심이기도 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현대차 그룹을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미래에 대해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다.김철환BMR자동차산업연구센터 소장 chkim@gobmr.com약력: 1960년 경남 진해 출생. 1983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1998년 연세대 경제학 박사. 1990년 기아경제연구소 연구위원. 1998년 와이즈인포넷 이사. 2004년 BMR자동차산업연구센터 소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