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 일정으로 온천으로 잘 알려진 일본 규슈 구로카와를 여행했다. 우리 부부는 회갑 기념으로 사위와 딸이 권장해 주말 온천 여행을 떠났다. 13명의 일행 중에 회갑 여행을 온 부부가 3팀 더 있었다. 새벽녘의 온천 속 해오름 광경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한 여행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60대 남성의 여행 후기다.고령화 사회를 맞아 장수하는 사람이 늘면서 환갑잔치가 부쩍 줄었다. 대신 후기를 올린 위의 남성처럼 환갑 기념 여행을 떠나는 부부를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요즘에는 고희연도 하지 않고 여행으로 대체하는 사람이 많다. 칠순잔치를 해도 잔치와는 별개로 자녀들이 효도 여행을 보내드리기도 한다. 환갑·칠순 기념 여행은 서울과 수도권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국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장년·노년층 가운데에는 친구들과 ‘여행 계모임’을 하며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한다.1989년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뒤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비행기 탄다’고 하면 ‘돈 좀 있는 집’으로 생각됐다. 하지만 지난해 출국자가 1160만 명인 만큼 이제는 웬만한 세계 유명 관광지를 가보면 한국인으로 북적거린다.해외여행이 대중화되면서 여행 지역과 일정, 가격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상품에 따라 제주도보다 동남아 여행이 더 저렴할 정도다. 여행 비즈니스 또한 업그레이드되면서 주식시장에 상장된 여행사가 급증했다. 하나투어 모두투어 자유투어 롯데관광개발 세중나모여행 등이 상장 여행사다.여행 산업의 발달과 함께 마케팅 역량이 강화됐다. 같은 지역이더라도 배낭여행, 허니문, 골프투어, 크루즈 등 테마별로 상품을 따로 선보인다. 고객의 연령, 성별 등을 고려한 세그먼트(세분화) 마케팅도 활발하다. 이 가운데 최근 장년·노년층을 겨냥한 ‘실버 여행’이 또 하나의 메가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하나투어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어버이날이 있는 5월 달에만 실버 상품이 반짝했지만 요즘에는 연중 호황”이라면서 “지역과 일정, 숙소 등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같이 가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50대까지는 일반 패키지 상품에 섞여 가도 무리 없이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하지만 60대 이상은 일행 중에 젊은 층이 많으면 부담스럽고 불편해한다. ‘나 때문에 천천히 가는구나’는 생각이 들어 미안해하는 실버층이 적지 않다. 이런 이유로 여행사들은 실버 상품을 ‘효도 관광’ 등의 이름으로 따로 내놓는다. 하나투어 효도 관광 상품은 60대 이상을 대상으로 한다. 자녀가 보호자로 따라갈 수는 있지만 여행 일정은 60대 이상에 맞춘다.실버 여행은 낯선 여행지에서의 음식 걱정을 덜기 위해 노인들의 입맛에 맞는 한식 위주의 식단으로 준비된다. 또한 여행 기간 중 생일을 맞는 노인을 위해서 잔치를 열어주는 상품도 등장했다.출발 전에 여행사로 자녀가 사연을 적은 편지를 보내면 현지에서 인솔자가 대신 전해주기도 한다. 현지 도착 후 인솔자가 직접 한국의 자녀에게 무사 도착 전화를 해주는 서비스를 해주는 곳도 많다.동남아 시내 관광을 하면서 곳곳에서 만나는 한국산 자동차와 한국 기업의 간판에 가슴 뿌듯해하는 부모님이 적지 않다.태국의 방콕과 파타야를 묶은 상품은 ‘방타야’로 불릴 만큼 유명하다. 세중투어몰의 상품은 전 일정 초특급 호텔에서 투숙, 과일과 와인 바구니 서비스 등을 특징으로 한다. 코끼리 트레킹을 할 때에는 기념사진까지 알아서 촬영해 주고, 아로마 스파 2시간 30분, 전통 타이 마사지 2시간 등이 상품에 포함돼 있다. 방콕 최고 높이의 건물인 바이욕 타워 뷔페에서 방콕의 전경을 감상하는 식사도 시니어들이 좋아한다.다른 여행사에서는 옵션으로 진행하던 별도의 프로그램들을 모두 포함해 효도 관광을 보낸 자녀들은 용돈만 드리면 된다. 출발일은 매주 월~토요일, 항공기는 국적기인 대한항공이다. 풀옵션인 만큼 다른 방콕·파타야 상품에 비해 고가다. 112만9000원부터다. 상품 구성이 다소 다른 하나투어의 방콕·파타야 상품은 89만9000원부터 있다.동남아 상품 중 베트남도 인기다. 베트남전을 겪었던 세대에게 베트남은 보다 특별하게 와 닿는다. 지난 시절 얘기를 꺼내지 않는 분이 없을 정도다. 남부 베트남의 호찌민이 경제 중심지라면 하노이는 명실상부한 정치 중심지다. 시내 여기저기에서 구 소련의 영향과 사회주의 냄새가 느껴진다. 활기가 넘치는 호찌민과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하노이를 여행하면서 이 도시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하노이에서 버스로 4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하롱베이 국립공원은 영화 <인도차이나>와 로빈 윌리엄스 주연 <굿모닝 베트남>의 배경이 된 곳이다. 호찌민에서는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수로를 따라 보트를 이용해 이동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된다. 하나투어의 베트남·하롱베이 상품은 109만9000원부터다.중국 여행은 부모님에게 지루해할 틈을 주지 않는다. 베이징 상하이 관광을 많이 가다가 최근에는 중국의 웅장한 자연경관을 대표하는 장가계가 화제가 되고 있다.자연의 걸작품으로 알려진 장가계는 ‘人生不到張家界, 百歲豈能稱老翁?(사람이 태어나서 장가계에 가보지 않았다면, 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인에게도 꼭 가봐야 하는 곳으로 알려졌다. 병풍처럼 뻗은 기암절벽과 오랜 기간 풍화와 침식에 의해 생긴 기이한 모습의 장가계와, 동진(東晉) 때 대시인 도연명이 도화원기에서 이상향으로 묘사했던 무릉도원인 도화원 등이 가볼 만한 곳이다. 하나투어의 베이징·장가계 5일 상품은 104만9000원부터다.베이징과 만리장성 위주로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체험하려면 베이징·만리장성 상품이 적합하다. 이 상품은 하나투어의 경우 74만9000원부터 있다.실버 층은 일본의 온천 여행을 특히 선호한다. 일본 4개의 큰 섬 중에 온천으로 가장 유명한 규슈(九州)의 후쿠오카, 구마모토, 벳부 지역이 인기다. 후쿠오카에는 다양한 쇼핑이 가능한 캐널시티가, 구마모토에는 일본의 3대 성 중 하나인 구마모토성이 있다. 특히 온천으로 유명한 벳부 지역에서는 온천 여행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나이가 지긋하신 부모님들에겐 부담 없는 거리에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관광하느라 지친 몸을 전망이 좋은 온천에서 녹이고 피로를 풀 수 있는 게 규슈 온천 여행의 특징이다. 하나투어의 규슈 온천 여행 4일은 79만9000원부터, 신일본 일주 5일은 119만9000원부터, 홋카이도 4일은 89만9000원부터다.모두투어에서는 규슈·구로카와 온천마을 3일 상품이 주말 여행 가운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모두투어 관계자는 “다녀온 고객의 만족도가 매우 높은 상품”이라면서 “짧은 일정 동안 규슈 최대 온천지 ‘벳부’와 ‘아소활화산, 주변 관광지를 다녀오는 알찬 일정”이라고 설명했다. 가격은 69만9000원부터다. 북규슈 일주 상품 가운데 쾌속선을 타고 가는 상품도 있다. 부산에서 출발해 2시간 55분만에 후쿠오카에 도착하게 된다. 경남 지역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전통 숙소인 료칸을 체험하는 상품도 있다. 세중투어몰은 하코네의 산과 호수, 그리고 아기자기한 오솔길 등 고즈넉한 자연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요시이케 료칸’을 내놨다. 이곳은 일본의 대표적인 전통 여관 중 하나다. 요시이케 료칸의 정원은 일본의 등록 문화재로 지정돼 있을 정도로 일본 정원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했다. 피로 해소, 근육통, 신경통 등 각종 질병에 좋은 자가 온천을 6개 보유해, 다채로운 노천 온천을 경험할 수 있다.요시이케 료칸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정갈한 음식. 매일 저녁이면 유카타 차림으로 먹기 아까울 정도로 멋스러운 일본 료칸의 전통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요코하마, 후지산, 하코네를 관광하는 이 상품은 259만 원부터다.빼어난 자연경관이나, 편안한 온천 여행보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부모님이라면 서유럽을 추천한다. 파리에서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유명한 예술작품들을 직접 감상할 수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궁전이라고 할 수 있는 베르사유 궁전의 안팎을 둘러볼 수 있다. 도시 전체가 커다란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는 로마는 옛 유적을 그대로 보전한 채 현대 문명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그리스도 교도들이 숨어 지냈던 지하무덤 카타콤베와 대형 원형 경기장인 콜로세움은 옛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스위스의 융프라우요흐는 유럽의 지붕이라 불리는 곳으로, 눈으로 덮인 산봉우리와 그림 같은 호수가 눈 시리게 아름답다. 하나투어의 유럽 완전 정복 8개국 15일 상품은 369만 원부터다.좋은 리조트에서 휴식하는 것보다는 여러 곳을 둘러보고 배우는 ‘문화 여행’을 선호하는 시니어도 적잖다. 이 가운데 최근 터키에도 실버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터키가 속한 소아시아는 동서양 문화의 접점 지역이다. 동서양의 수많은 왕조들의 흥망으로 다양한 유적과 역사가 살아 숨 쉰다. 성소피아 성당, 블루모스크, 돌마바흐체 궁전 등 크리스트교와 이슬람의 유적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이스탄불에서부터 터키 여행은 시작된다. 화산 폭발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풍화, 침식 작용으로 기암괴석들이 독특한 계곡 지대를 이루고 있는 카파도키아. 이곳은 <스타워즈>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목화의 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파묵칼레에서의 온천 또한 터키에서만 즐길 수 있는 매력 만점의 여행 코스다. 또한 성서에 나오는 ‘에베소’라는 명칭으로 익숙한 에페소에서는 로마시대의 유적을 만나볼 수 있다. 2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다는 거대한 대극장, 셀수스 도서관, 하드리아누스 신전, 사도 요한의 묘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사도 요한의 교회 등을 둘러볼 수 있다. 터키 전통식인 뵤렉전식, 피데, 도네르케밥, 항아리케밥 등의 특식도 맛볼 수 있다.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 해협에서는 전세선을 이용한 해협 크루즈 일정이 제공된다. 하나투어의 터키 8~9일 상품은 219만 원부터 있다.비행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을 견딜 수 있는 부모님이라면 호주와 뉴질랜드와 같은 장거리 지역도 매력적인 곳이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3시간 거리로 인접해 있어 한 번에 두 나라를 함께 여행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꼽히는 관광지인 데다 웅장한 자연 경치 또한 순수한 자연을 만끽하고 싶어 하는 실버 층의 취향에 적합하다. 효도 여행으로 구성된 일정에는 뉴질랜드 북섬에서 야외 유황 온천과 미네랄 온천이 추가돼 두 번의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풍요로운 자연에서 난 남섬의 연어회, 아름다운 로토루아 호수를 감상하며 즐기는 스카이 곤돌라의 아침식사까지 실버 층을 배려한 식사로 구성됐다. 세계 3대 미항인 시드니항과 그 유명한 오페라하우스 또한 부모님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하나투어의 호주·뉴질랜드 남북섬 10일 상품은 279만 원부터다.‘풀옵션’· ‘노팁’ 상품 골라야부모님에게는 여행을 가는 지역보다는 누구와 가는지가 더 중요하다. 효도 여행을 보내드릴 정도로 장성한 자녀는 출가한 경우가 많다. 평소 얼굴을 자주 못 보는 자녀와 함께 가는 곳이 부모님에게는 가장 좋은 여행지다. 함께 나서지 못한다면 최대한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 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를 고려해 여행지를 선택해야 한다.해외 경험이 풍부해 간단한 영어 회화 정도는 문제없는 부모님도 많아졌다. 하지만 언어 소통이 불편한 분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효도 관광은 대부분 여행사에서 미리 기획해 둔 패키지 여행 위주로 간다. 패키지 상품을 고를 때는 선택관광의 모든 내역이 다 포함돼 있는 ‘풀옵션’ ‘노팁’ 상품이 더 좋다. 불포함 내역이 많은 상품에는 쇼핑과 옵션이 많이 들어 있다. 현지 시세보다 비싼 물건을 판매하는 쇼핑센터에 자주 들르다 보면 바가지를 쓸 수 있다. 효도 여행 와서 불쾌한 경험을 하지 않도록 패키지 일정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마사지, 스페셜 만찬 등 옵션을 부모님이 선택해야 하는 경우 비용을 생각해 돈 꺼내기를 주저하는 부모님이 많다. 이런 이유로 불포함 내역이 많은 저렴한 상품보다는 풀옵션으로 마음 편하게 전 일정을 즐길 수 상품이 효도 관광에 적합하다.시차와 비행시간도 실버 관광의 중요한 요소다. 너무 많은 시차와 비행시간은 건강에 무리를 줄 수 있으므로 부모님의 연령과 건강을 고려해 선택해야 한다. 요즘에는 자녀보다 인터넷 서핑을 더 잘해, 해외 정보에 밝은 부모님도 늘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기후나 지역 특성 등을 고려해 여행 가방을 챙겨드리면 더 기뻐하신다. 3월에서 7월 초까지 해외여행 비수기를 이용하면 좀 더 한가하고 여유롭게 관광지를 둘러볼 수 있다. 성수기보다 좋은 조건으로 저렴한 여행이 가능하다. 마지막 팁 하나. 여행 가방 안에 슬며시 감사 편지라도 한 장 넣는다면 그동안 자녀 키운 보람을 듬뿍 느낄 것이다.이효정 기자 jenny@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