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제 609호 (2007년 08월 06일)

‘외국차도 우리 금형 볼트 쓰지요’

기사입력 2007.08.01 오후 02:22


서울 금천구 독산동. 지하철 1호선 독산역 부근엔 중소기업들이 많이 몰려 있다. 구로디지털밸리와 맞닿아 있어 일명 ‘구로 4공단’으로 불리는 곳이다.

아침과 저녁엔 많은 근로자들이 독산역을 통해 이 지역의 공장들로 출퇴근한다. 외국인 근로자들도 자주 볼 수 있다. 이곳엔 인쇄 출판 음식료 업체들도 있지만 기계 부품이나 금형 공구 등을 만드는 업체들이 많이 몰려 있다.

이들 가운데 SST(사장 최용식)라는 회사가 있다. 1978년 설립돼 내년이면 창업 30년을 맞는 업체다. 이 회사는 27년 동안 이곳에 본사 및 공장을 두고 초정밀 금형 제품을 생산해 왔다. 중소기업이 창업 후 10년 동안 생존할 확률이 13%라고 한다. 10개 중 1개 정도만이 살아남는 셈이다. 그런데 30년 동안, 그것도 한 우물을 파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회사의 공장 안에 들어서면 직원들이 선반 그라인더 밀링 등으로 열심히 금형 제품을 가공한다. 이들 장비 중에는 일본 미쓰비시의 CNC방전가공기와 테크노와시노의 CNC프로파일그라인더 스위스 샤밀 기술의 와어어커터 등 정밀 가공 장비도 있다. 이들 장비는 대당 가격이 30만~50만 달러에 이르는 고가 장비다.

첨단 설비·20년 숙련공들이 자산

종업원들은 금속 가운데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단단한 초경합금(텅스텐 카바이드)에 구멍을 뚫고 그 홈을 다양한 모양으로 가공한다. 다이아몬드의 강도가 100이라면 초경합금의 강도는 93 정도다. 일반 철이 20~30인 것과 비교해 얼마나 강한지 짐작할 수 있다.

홈의 입구와 마지막 부분은 넓지만 중간은 좁은 형태의 금형 등 각양각색의 금형을 만든다. 컴퓨터에 수치를 입력해 가공하는 CNC 장비들을 통해 대부분의 정밀 작업이 이뤄지지만 최종 공정은 숙련공들의 수작업에 의해 완성된다. 작업의 정밀도는 미크론 단위다. 보통 금형 분야의 기술자가 되려면 5~6년 정도 한 분야에서 일을 해야 하는데 이 회사의 숙련공들은 보통 20년 정도의 경력을 갖고 있다.

최용식 사장(61)은 “정밀 작업은 사람의 손에 의해 마무리돼야 가장 신뢰성이 높다”며 “따라서 숙련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금형의 80%는 자동차용 볼트를 만드는 업체에 공급된다. 자동차에는 수많은 볼트가 들어가는데 이 중 엔진이나 조향장치 바퀴 등 안전과 관련된 중요 부품을 연결하는 정밀 볼트를 만드는 데 이 회사의 금형이 사용된다. SST의 금형 제품은 대당 평균 80만~100만 개의 볼트를 가공할 수 있다.

국내 간판급 볼트 업체인 KPF(옛 한국볼트)나 선일다이파스 태양금속 등이 이 회사의 주요 고객이다. SST가 납품하는 금형으로 만들어진 자동차용 볼트는 전 세계 시장으로 수출된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지에서 생산되는 차들 가운데도 이 회사가 만든 금형으로 생산된 볼트가 많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이 밖에 반도체 장비용 금형과 프레스 금형도 만든다. 생산된 금형 제품을 일본의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지로 수출도 한다. SST는 직원 45명에 연간 매출 30억 원 안팎의 전형적인 중소기업이다. 그런데도 미크론 단위의 초정밀 금형을 가공하고 일본으로 수출할 수 있는 것은 한 우물 경영, 일본 기업과의 돈독한 기술 협력 관계에서 비롯된다.

최 사장이 금형과 인연을 맺은 것은 학교(동양공고) 졸업 후 초경공구 업체 신서공업의 영업사원으로 취직하면서부터다. 신서공업은 부산에 본사를 둔 업체로 이 분야의 효시를 이룬 기업이다. 최 사장은 이 회사의 서울 영업소에서 10년 동안 일하며 부지런히 뛰어 새로운 거래처를 속속 개척하는 등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그는 32세이던 1978년 서울 종로에서 신생상사를 창업해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금형 공구 유통업을 했다. 이어 1980년부터 제조업 분야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정밀 기술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몇 차례 일본을 드나들며 기술 제휴 업체를 찾았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다시 수소문한 끝에 아다이스사와 연결됐다. 아다이스는 오사카에 본사를, 히메지 등 몇 곳에 공장을 둔 굴지의 정밀 금형 업체였다. 아다이스의 아라키 다카노부 사장은 적극적인 성격의 최 사장을 좋아했다. 여러 차례 만나 술을 마시고 골프를 하는 동안 형제처럼 가까워졌다. 이를 계기로 아라키 다카노부 사장은 자사가 갖고 있는 모든 기술을 거저 주고 SST의 생산 제품 일부를 팔아주겠다고 파격적으로 제의했다.

이를 계기로 SST는 전 직원을 여러 차례 아다이스에 보내 연수를 시켰다. 아다이스사로부터의 기술 도입으로 SST는 생산 제품의 정밀도를 20미크론 수준에서 2미크론 수준으로 높이는 발판을 마련했다.

게다가 최 사장은 직원들에게 형님처럼 자상하게 대했다. 개인적인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도 했다. 최 사장은 “아무리 첨단 장비를 갖췄어도 제품을 완성하는 것은 사람의 손”이라고 믿고 있다. 이에 따라 종업원 숙련에 관심을 갖고 노력한 결과 직원 가운데 상당수가 장기 근속자가 됐다. 이제는 일본에 버금가는 기술력을 보유하게 됐고 국내 자동차용 볼트 너트 초경합금 금형의 90%를 공급하는 업체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SST가 설립되기 전 초경합금 금형 분야의 국내 시장은 대부분 일본 업체들이 장악하고 있었지만 SST가 이를 국산화하면서 국내 시장에서 일본 제품이 거의 사라졌다.

그는 정밀 금형의 외길을 걸으면서 “매출을 늘리는 것보다는 제대로 된 제품을 공급하는 게 중요하다”며 시설 확장을 꺼려 왔다. 품질 향상을 위해 요즘에도 외국의 베테랑 기술자를 초청해 기술 지도를 받고 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볼트 너트 분야의 품질 관리 1등급 기업으로 선정된 것을 비롯해 은탑산업훈장 산자부장관표창 중소기업대상(은상) 중소기업 유공자표창 등 수십 건의 표창을 받았다.

일본산 정밀 금형, 국산으로 대체

최 사장은 이제는 재도약을 꾀할 때가 왔다고 여기고 충주에 약 1만㎡의 부지를 확보해 조만간 제2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그는 10년째 공구조합의 이사장을 맡아 200여 국내 금형 공구 업체들의 애로사항 해결과 원부자재 공동 구매를 통한 경쟁력 확보에도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대형 전시회를 개최해 해외 바이어를 유치하고 국내 중소금형 공구 업체들의 판로를 개척하는 데 힘쓰고 있다. 오는 10월에도 서울 코엑스에서 대규모 금형 및 공구 전시회를 연다. 금년 초엔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으로 선임돼 그동안의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중소기업의 경영 환경 개선에도 나서고 있다.

최 사장은 “금형은 모든 금속 관련 산업의 기반이 되는 산업”이라고 강조한다. 금속은 크게 두드리거나(단조), 녹여서(주조) 원하는 모양으로 가공한다. 단조나 주조 모두 금속을 틀에 넣어 가공하는 데 이 틀이 바로 금형이다. 따라서 금형을 얼마나 정밀하게 제작하느냐가 금속 제품의 정밀도를 결정하고 국제경쟁력을 좌우한다.

최 사장은 “산업의 거의 모든 부문에 금속이 사용되는데 금형은 한마디로 금속 가공 분야에서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들 분야에서 일하려는 젊은이가 없어 점차 국내 금형 업체들이 사라지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이 분야에 관심과 애정을 가져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약력:1946년생. 67년 동양공고 졸업. 78년 신생상사(SST의 모체) 설립. 83년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수료. 90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국제경영자과정 이수. 98년 공구조합 이사장(현). 2007년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현). 수상;은탑산업훈장 석탑산업훈장 산업자원부장관 표창 등 다수.

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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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7-08-01 1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