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부처가 밀집해 있는 과천 관가엔 오전 11시 40분부터 12시까지 특이한 광경이 펼쳐진다. ○○유치원, ○○학원 등의 이름이 붙은 미니버스와 봉고차가 청사 후문에 줄지어 늘어선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청사에서 나오는 공무원들을 태우기 위한 차들이다. 이 차들은 과천 인근의 식당들이 돈을 주고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다. 청사가 식당에서 멀리 떨어진 관악산 자락에 있다 보니 식당 측이 펼치는 서비스다. 식당들은 대신 점심 식사비를 다른 곳보다 약간 비싸게 받는다. 어떤 때는 공무원들을 모시러 온 차들이 수십 대에 이르러 빠져나오는 데만 10분 이상 걸리기도 한다.그런데 최근 들어 손님을 태우러 온 차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여름 휴가철에다 장마가 겹치는 바람에 청사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는 공무원들이 늘어난 게 한 원인이다. 여기에다 산업자원부가 7월 9일부터 실시하고 있는 ‘삼절운동’이 또 다른 원인이라고 설명하는 공무원들도 적지 않다.산자부의 ‘삼절(三絶)운동’이란 쉽게 말해 골프·밥·술 세 가지 접대를 받지 말자는 것. 특히 산하단체와 관련 단체, 협회 등으로부터 접대를 받지 않겠다는 자정 운동이다. 산자부는 업무상 필요한 경우엔 가급적 청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함께하기로 약속하되 밥값은 공무원들이 내기로 했다.산자부는 여기에다 ‘CEO운동’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CEO란 통상 기업체의 최고경영자를 뜻하는 말로 쓰이지만 산자부는 ‘클린 이피션트 오너십(Clean Efficient Ownership)’이란 의미로 채택했다. ‘깨끗하고 효율적인 주인의식’을 갖자는 얘기다. 산자부는 이를 위해 7월 9일 부처 내 공무원뿐만 아니라 산하단체 관계자 등 총 600명이 모인 가운데 ‘CEO 및 삼절운동’ 실천 다짐 대회도 열었다.산자부가 이처럼 불필요한 접대 문화 청산에 나서면서 다른 부처도 자극을 받는 모습이다. 재정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 건설교통부 등의 공무원들도 가급적 산하단체와의 점심 약속을 잡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과천 인근의 식당가에 손님이 대폭 줄어들고 손님을 모시는 봉고차도 급감했다는 얘기다.산자부의 ‘삼절운동’은 김영주 장관이 주창한 것으로 현재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대(對)국회 홍보 등 저녁 술자리가 불가피한 경우에도 ‘소주에 삼겹살 수준’을 넘지 말도록 했다. 돼지갈비는 괜찮지만 쇠갈비는 금물이다. 지난달 말 서기관급 이상 간부들이 중소기업연수원에서 워크숍을 갖고 직접 정한 행동 강령이다.시행 초기인 만큼 실천 의지를 다지기 위해 ‘연좌제’도 도입했다. 부하 직원이 ‘삼절’을 어기면 팀장(다른 부처의 과장)도 다음번 인사고과 때 동시에 최하위 평점을 받게 된다. 간부들이 점심값을 위해 돈을 보태기로 하는 등 솔선수범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국장 이상 간부들이 외부 강연료를 받으면 교통비 등 최소한의 필요 경비를 뗀 나머지를 펀드에 적립한다. 직원들도 성과급 일부를 출연하기로 했다. 적립금은 야근이 잦은 부서의 저녁 식사비 결제에 쓰인다.산자부가 이처럼 강도 높은 자정에 나선 것은 한 산하단체로부터 접대를 받았다는 혐의로 산자부 공무원들이 경찰 수사 선상에 오르내리는 등 산자부의 이미지가 실추됐기 때문이다. 김 장관은 이때 경찰청장에게 전화했다는 이유로 외압을 가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샀다.문제는 이로 인한 부작용과 지속성 여부. 산자부는 40여 개에 이르는 산하단체와 부처의 특성상 민간 기업과의 접촉도 많다. 술까지는 아니더라도 밥을 함께 먹으면서 토론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실무자는 “점심을 3000원 정도 하는 구내식당에서만 하라고 하는 것은 산하단체 관계자들과 아예 만나지 말라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산자부 내에서도 이 운동이 그다지 오래갈 것으로 보지 않는다. 한 간부는 “예전에도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접대 금지 등의 조치가 취해졌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부에선 올 가을 국정감사 이후엔 풀어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많다. 산하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밥 먹는 것까지 금지한 김 장관의 실험이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 주목된다. 박준동·한국경제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