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란 쉽게 말해 금융사에 많은 돈을 맡겨 놓은 ‘부유층’을 대상으로 ‘자산을 특별 관리해 주는 고객 서비스’를 말한다. 전담자인 프라이빗 뱅커가 자산가의 예금이나 주식은 물론, 부동산 세무 등을 일대일로 관리한다. 금융사는 자산가의 수가 고객에 비해 극히 적지만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기 때문에 ‘특별 관리’할 수밖에 없다.PB는 16~17세기 스위스에서 처음 시작됐다. 스위스에는 다양한 종류의 동전들이 유통됐고 이를 유통하는 환전상들이 PB의 전신이다. 당시 스위스에는 국가 간, 가문 간 전쟁이 빈번했다. 귀족들은 용병을 사서 전쟁을 치렀으며 이 과정에서 막대한 현금 자산을 축적해 나갔다. 전쟁터에서 귀족들의 개인 자산을 보관하고 운용해 주는 비즈니스가 필요했는데 이게 바로 PB였다. 이 때문에 국내에선 대부분 대형 금융사를 중심으로 PB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지만 해외의 경우 PB 서비스에만 특화한 중소형 금융사도 꽤 많다.국내 금융시장에 PB라는 용어가 등장한 건 지난 1990년대 초·중반의 일이다. 이론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1991년 한국씨티은행이 ‘씨티 골드’란 브랜드로 개인 대상 자산 관리 서비스를 최초로 도입한 게 효시다. 이후 하나은행에 합병된 보람은행이 1990년대 중반, 거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한 특화 금융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비교적 체계를 갖춘 PB 서비스가 등장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PB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금융사의 ‘공식 사업’으로 자리 매김한 건 2002년을 전후해서다. 그 사이 PB 시장 잠재 규모는 200조 원에서 450조 원대로 2배 이상 성장한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5억 원 이상 예금 계좌 수는 모두 8만8620개. 5억 원 이상 예금은 지난해에만 9.2%나 증가하며 거액 예금 가입자들이 급증했다. 이들의 계좌 총액도 300조 원에 육박하며 은행권 총수신의 30%를 넘고 있다. 금융권 전문가들은 이를 근거로 예금, 증권, 펀드, 보험 등을 포함한 PB 시장 규모가 45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이처럼 빠르게 PB 시장이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부동산 시장 급등에 따른 자산 가격 상승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아파트 가격 상승, 토지 보상금 지급 증가로 인해 생긴 부동산 자금이 금융자산으로 환원되기 시작한 것이다.스피드뱅크의 조사에 따르면 2003년 10월 25일 대비 2007년 10월 20일까지의 서울 아파트 값 상승률을 조사한 결과, 강남구 45.64%에 이어 송파구가 41.17% 상승했다. 또 이번 국정감사 중 건교부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참여정부 들어 수도권 2기 신도시 개발로 이미 풀리거나 풀릴 예정인 토지보상비가 총 38조8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지구 지정이 끝나지 않은 동탄2신도시까지 합치면 45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여기에 최근 주식시장이 폭등하면서 거액 금융자산가들의 숫자는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올해 초 1400대에서 시작했던 주가지수는 현재 2000선을 넘나들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웬만큼 유능한 은행 PB들이라면 수백억 원대의 신규 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뜨거워지고 있는 국내 PB 시장에 외국계 금융사와 보험사들이 가세하면서 기름을 붓고 있다. 국내 은행, 증권사가 나눠가졌던 PB 시장에 UBS,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이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보험사들도 단순한 보험 유치를 넘어 종합 재무 컨설팅을 도입해 고객 확보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메릴린치와 리먼브러더스까지 지점 설립을 위한 예비 인가를 신청해 한국의 ‘자산 관리 시장’을 노리고 있다.실제 국내 백만장자 증가율은 전 세계 선두권이다. 메릴린치와 캡제미니가 발표한 ‘세계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백만장자는 9만9000명으로 1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2004년부터 연평균 증가율은 무려 14%. 신흥 경제 국가 가운데는 싱가포르와 두바이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국내 PB 시장은 은행 증권 보험사로 나뉘어 있다. 은행권에는 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의 3파전 양상을 보인다. 특히 자산 순위에서 우리은행에 밀려 4위로 처진 하나은행은 PB 시장에서는 ‘전통의 강자’ 대접을 받는다. 실제 하나은행은 유로머니지가 선정하는 ‘최우수 PB 평가’에서 3년 연속 한국 최우수 프라이빗뱅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증권 업계에서는 삼성증권의 활약이 돋보인다. 증권 업계 최초로 ‘전 지점의 PB화’를 주창하며 ‘Fn 아너스’를 선보인 삼성증권은 현재 증권사 중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최근 급격한 성장세를 타고 있는 미래에셋증권이 자산 관리 시장의 왕좌를 노리고 있다. 또 종금사 시절부터 PB 업무를 해온 동양종금증권도 ‘조용한 강자’라고 할 수 있다.보험 부문에선 삼성생명보험이 선두주자다. 지난 2002년 보험 업계 최초로 강남구 삼성동에 FP센터 문을 열었다. 그 뒤 강북과 부산에 연달아 FP 센터를 개설 은행과 증권사에 맞서 PB 영업을 하고 있다. 지금은 ‘삼성어드바이저’라는 고유 브랜드로 PB 영업을 활성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교보생명과 대한생명도 각각 ‘재무설계센터’, ‘대한생명 FA(종합재무설계)센터’를 강남과 여의도 등에 오픈해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다. 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