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맞은 박병무 전 하나로텔레콤 사장

‘미다스의 손.’ 하나로텔레콤이 SK텔레콤에 팔려 지난 3월 주주총회를 끝으로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난 박병무 전 사장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박 전 사장은 지난 2000년 운영 자금이 10억 원 밖에 없던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현 CJ인터넷)를 맡아 2년 반 만에 매출 1300억 원, 순이익 160억 원 규모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그 후 미국계 사모 펀드인 뉴브리지캐피탈코리아 대표로 자리를 옮겨 제일은행(현 SC제일은행) 재매각 건을 성사시켰다.박 전 사장은 하나로텔레콤의 성공적인 매각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는 것처럼 보였다. 지난 2006년 초 뉴브리지캐피탈은 적자 투성이인 하나로텔레콤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마지막 카드로 박 전 사장을 투입했다. 그는 가장 먼저 사비를 털어 하나로텔레콤 주식 13만 주를 샀다.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인 하나TV가 87만 명의 가입자를 끌어 모으는 대박을 터뜨리며 ‘부활’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하나로텔레콤은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으며 1조877억 원이라는 거액의 몸값을 받고 SK텔레콤에 팔렸다.하지만 지난 4월 23일 고객 정보 불법 이용 혐의가 드러나면서 성공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이날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600만 명의 가입자 개인 정보를 전국 1000여 곳의 텔레마케팅 업체에 불법 제공한 혐의로 박 전 사장 등 전·현직 임직원 22명을 형사 입건했다. 이미 경찰에서 초고속인터넷 업체들의 개인 정보 불법 활용 문제를 1년 넘게 수사해 온 터라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지만, 실제 경찰의 발표 내용과 여론의 반응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때마침 터진 옥션과 LG텔레콤의 고객 정보 유출 사건과 맞물려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언론도 대형 통신 업체가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고객 정보를 돈벌이에 이용했다는 점을 집중 부각하며 ‘파렴치한 범죄’로 몰아갔다. 고객 정보를 팔아 번 돈으로 경영 성과를 부풀렸다는 비난도 쏟아졌다. 박 전 사장과 하나로텔레콤은 법정에 서기도 전에 이미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상태다. 박 전 사장의 측근은 “언론에 의해 일방적으로 매도당하고 있다”며 “일부에서는 마치 고객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가방에 담아서 한 명당 얼마씩 받고 팔았다는 식으로 보도하는데 명백한 오보”라고 말했다. 돈 받고 제3자에게 고객 정보를 판 적이 전혀 없다는 해명이다. 이 측근은 “경찰 잣대로 하면 텔레마케팅 아웃소싱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수사 결과에도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논란의 핵심은 하나로텔레콤이 자사의 고객 개인 정보를 취급할 수 있도록 업무를 위탁한 ‘취급 위탁’ 업체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로 요약된다. 현재 하나로텔레콤의 취급 위탁 수탁 업체는 전국 수백 곳에 달한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통망법)’은 취급 위탁 형태로 제3자에게 고객의 개인 정보를 제공할 경우 그 목적과 제공 범위, 수탁자 등을 가입자에게 명확하게 설명하고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으며, 다만 ‘계약의 이행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정통망법 25조 2항)’에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관련 사항을 게시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하나로텔레콤은 수탁 업체들이 모두 이 예외 조항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경찰은 좀 더 엄격한 기준을 내세운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사이버범죄수사대 장관승 경위는 “정통망법 25조2항의 예외조항은 온라인 쇼핑몰 업체가 상품 배송을 위해 택배 업체에 고객 정보를 제공하는 것처럼 서비스 제공에 필수적인 경우에만 해당된다”고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이제 이번 사건은 검찰이 재검토를 거쳐 기소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박 전 사장 측은 법정에서 억울함을 벗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뒤늦게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이번 사건으로 박 전 사장이 받은 상처는 회복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서울대 수석 입학과 법대 수석 졸업, 사법고시 최연소 합격, 국내 최초의 기업 인수·합병(M&A) 전문 변호사 등 화려한 성공 가도를 달려온 그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