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공헌 활동

SK그룹의 사회 공헌 활동 역사는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유학 중이던 최종현 회장은 형인 최종건 회장의 유고로 그룹을 대신 맡게 된다. 시카고대에서 미국의 우수한 인재들이 배출되는 것을 지켜봤던 최 회장은 “기업 경영에는 설비, 자금 등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며 “세계적 인재 없이는 세계적 기업을 만들지 못한다”며 인재 육성의 뜻을 품었다.처음 시작된 것이 ‘장학퀴즈’로, 지금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당시 선경(鮮京: SK의 전신)은 큰 기업이 아니었는데도 프로그램 제작비와 ‘장원’한 학생의 대학 장학금을 전액 지원했다. 이듬해에는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해 우수한 인재를 해외로 유학 보내는 것을 지원했다. ‘장학퀴즈’가 인재의 싹을 틔워주기 위한 것이라면 교육재단은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이었다.당시 미국에서의 1년 유학비용은 서울 시내 소형 아파트 값보다 더 비쌌던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지원했다. 졸업 후 SK그룹에 취업해야 한다는 조건도 내걸지 않았다. 장학생으로 유학을 마친 이들 중 상당수가 학계로 진출해 국내 인재 육성을 이끌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최 회장은 “인재를 길러야 국가가 살아나고 기업도 국제 경쟁력을 가진다. 나라와 사회에 인재가 넘치면 기업은 그 수혜를 받을 것”이라는 철학을 고수했다.올해 8월 26일 고 최종현 회장의 유고 10주기를 맞아 교육재단 장학생 대표로 추모사를 한 염재호 교수(고려대 행정학과)는 1975년 2기 장학생이었다. 지금까지 고려대 최장집 교수를 포함해 총 460명의 해외파 박사를 배출했다. 교육에 대한 중요성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옛날에는 나라를 이끌 핵심 인재 육성이 급했다면 엘리트 교육 여건이 갖춰진 지금은 교육 격차 해소에 주력하고 있다.최종현 회장의 관심은 교육 사업 외에도 ‘인재의 숲’ 조성을 통한 국토의 보존에까지 미쳤다. 1973년 당시 민둥산이었던 인등산(人登山: 충청북도 충주시 중원군 산척면) 1200만㎡를 매입해 38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지금까지 관리해 오고 있다. 당시 땅을 사려면 도로에 접한 땅을 사야 한다는 참모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최 회장은 “땅장사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재를 키우듯 나무를 기르자는 뜻이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좋다”는 뜻을 밝혔다. 당시 회사 내부에서 고려한 땅은 현재 신도시 개발이 한창인 용인도 검토됐다고 한다.최 회장은 1998년 화장(火葬)을 유언으로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내 저명인사들 중 화장을 한 선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매장을 하다 보면 언젠가 전 국토가 무덤으로 덮일 테니 자신부터 솔선수범해 장례 문화를 바꾸겠다는 것이 그가 생각한 이유였다.현재 SK그룹의 사회 공헌 활동은 ‘행복경영’을 화두로 한 세 가지 방향성을 가진다. 단순한 퍼 주기식 사회 공헌 활동의 한계를 벗어나기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내고(행복한 변화), 정부·지자체·NGO 등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하고(행복한 상생), 기업 구성원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행복한 참여)이다.일례로 2005년 5월 시작한 ‘행복도시락’ 사업은 일자리 창출, 결식아동에게 건강한 먹을거리 제공, 지자체의 참여라는 목적에서 시작됐다. 자활 근로 인력들에게 지급되는 급여는 월 90만 원. 기초생활수급자로 남아 있으면 80만 원을 받을 수 있지만 굳이 일을 하러 나선 이유에 대해 이들은 “내 아이가 부모가 노는 것을 보고 자라서 자립심이 없어질까봐 일을 한다”고 얘기한다. 행복도시락 사업으로 현재 500명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또 자활공동체, 종교단체, 사회복지 법인과 공동으로 전국에 29개 센터를 설립했고 지자체의 협력을 이끌어냈다. SK텔레콤은 센터 설립비와 2년 동안의 도시락을 지원했다. SK의 역할은 이런 공동 사업의 틀을 초기에 세워 주는 역할이었다. 행복도시락 사업은 새로운 사회 공헌 활동의 모델을 제시한 점을 인정받아 2007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열린 ‘하버드 아시아 비즈니스 콘퍼런스’에 초청돼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1318해피존’ 사업은 법과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시작한 사업이다. 국내 2800여 개의 지역아동센터(공부방, 방과후학교 등의 시설)는 소외 계층의 학습 지원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초등학생에 맞춰져 있어 중고등학생들은 사실상 방치된 셈이다. 1318해피존은 청소년 센터에 대한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정부가 법과 제도를 바꿀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2006년 7월부터 2년 동안 30개 센터가 건립돼 1600여 명의 학생들이 이용하고 있다. 지금은 공감대가 형성돼 국회에서 이에 대한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사회 공헌 활동에 대한 경영진의 의지도 강하다. 2003년 7월 사회공헌팀을 발족했는데, 국내에서 사회 공헌만을 담당한 부서는 처음이었다. 이어 2004년 3월에는 SK텔레콤 20주년을 맞아 자원봉사단을 결성했다. 이후 각 관계사별로 자원봉사단을 구성해 ‘행복한 참여’의 근간을 마련했다.특히 최고경영진의 솔선수범은 그룹의 자발적인 자원 봉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대 자원봉사단장이었던 조정남 부회장은 봉사 활동에 나서면 얼굴만 비추는데 그치지 않고 말단 직원들과 함께 반나절 또는 하루 종일 똑같이 활동을 했다. 다른 대기업 총수들과 달리 자원 봉사하는 모습이 자주 언론에 보인 최태원 회장도 현장에서 사진만 찍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일반 봉사단들과 똑같은 활동을 소화해 내고 있다. 최 회장은 회사 차원에서의 자원 봉사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사회 공헌 활동도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윗선에서 자발성을 보여주면서 실무진이 일하기 쉬운 구조가 정착됐다. SK텔레콤 사회공헌팀 고창국 팀장은 “원칙도 실무자들끼리 만든 것이 아니라 경영진과 소통하면서 ‘그룹의 정체성은 뭘까’라는 고민 속에서 나온 것”이라며 경영진과 실무진의 파트너십을 설명했다.계열사들 전체의 활동은 ‘따로 또 같이’라는 경영 원칙을 통해 계열사의 특성을 살린 ‘1사 1대표 프로그램’과 ‘공동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SK에너지는 ‘사랑의 김장 나누기’ ‘사랑의 연탄 나눔’처럼 추운 겨울철을 테마로 했고, SK텔레콤은 모바일 미아찾기 같은 ‘모바일 공익사업’을, SK C&C는 ‘장애인 무료 IT 교육원’, SK건설은 ‘불우이웃 주거환경 개선활동’, SK해운은 ‘수상구조대’, SK증권은 ‘청소년 경제교실’ 등의 프로그램을 개발해 실시하고 있다. 공동 프로그램으로는 소외 계층 일자리 창출, 1318해피존, 한국고등교육재단, 수원해비타트-SK행복마을, SK자원봉사단 운영 등에 그룹 전체의 힘을 모을 수 있도록 했다.직원들의 참여율도 높은 편이다. 자원봉사단 발족 첫해는 참여율이 30%가량이었지만 올 상반기에는 93%에 달한다. 처음 봉사단 준비 때는 전 사원으로 구성하려고 했으나 경영진이 반대해 자발적으로 하도록 했다. “자발적이지 않으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열심히 하는 직원은 포상도 하고 근무시간 중 활동도 장려하고 있지만 인사고과에는 반영하지 않는다.전사적인 노력의 결과 SK그룹은 2007년 11월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Fortune)이 세계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매긴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평가에서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높은 44위를 차지하기도 했다.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